뇌 건강을 위해 필요한 5가지 요인(SEEDS) 중 세 번째 알파벳 E는 바로 ‘교육(education)’이다. 왜 교육이 뇌 건강에 그렇게 중요할까?
‘뇌는 쓰지 않으면 녹슨다.’는 말처럼 계속해서 자극을 주고 학습을 해야 건강하게 유지된다. 교육은 단순히 학교에서 학위를 받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교육이다.
배우는 과정은 같은 생각을 반복하며 우울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 학습을 통해 뇌는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덕분에 삶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신경과학이 말하는 ‘교육의 힘’
지속적인 교육은 뇌에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들어낸다. 이는 단순히 지식이 늘어난다는 의미를 넘어, 뇌의 회복탄력성과 생존력을 키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치매 증상의 발현률이 낮고, 질병이 오더라도 신경회로가 더 풍부해 손상을 덜 느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쉽게 말해, 학습은 뇌를 튼튼하게 하고, 뇌질환에 대한 방어막을 두껍게 만들어주는 작업인 것이다.
뇌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를 ‘신경가소성’이라고 한다. 학습은 다양한 신경화학물질의 균형과 작용을 통해 뇌 기능을 조절한다.
에스트로겐은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옥시토신은 긍정적인 사회적 기억을 강화하며, 반면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은 해마를 위축시켜 학습을 방해한다. 도파민은 즐거운 기대만으로도 방출되어 집중력과 기억력을 돕는다. 즉, 우리가 기쁨을 느끼며 배우는 습관을 만들면, 뇌는 훨씬 더 건강하고 생기 있게 작동하게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학습 루틴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배우는 삶을 선택한다면, 뇌는 더 오랫동안 젊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배움은 학문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다.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도, 생소한 길을 걸으며 방향을 익히는 것도 모두 교육이다. 교육은 우리 뇌에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는 내비게이션이자, 낡은 길을 복원하는 재생 도구이다.
교육이 만드는 마음의 면역력,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
나이가 들면 누구나 기억력이 떨어지고, 반응이 느려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80세가 넘어도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60대부터 인지기능이 눈에 띄게 약해지기도 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이 차이를 설명해주는 과학적 개념이 바로 ‘예비력(reserve)’이다. 우리 뇌도 몸처럼 ‘버티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이 예비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뇌 예비력(brain reserve)’과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이다.
뇌 예비력(Brain Reserve)은 말 그대로 뇌의 물리적인 크기나 두께, 신경세포의 수, 해마나 대뇌피질의 부피 같은 구조적인 여유를 의미한다. 뇌가 크고, 신경세포가 많을수록 병에 맞설 여유 자원이 많다는 개념이다. 마치 자동차의 연료탱크가 크면 더 멀리 갈 수 있듯이, 뇌의 크기나 건강 상태가 좋으면 더 오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반면, 인지 예비력은 뇌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정보를 처리하는가, 즉 뇌의 작동 방식 자체의 지능과 전략을 의미한다. 단순히 뇌가 크고 튼튼한 것이 아니라, 뇌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우회하거나, 더 똑똑하게 작동하면서 병을 견디는 능력을 말한다.
이 예비력은 선천적인 재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교육 수준, 직업 경험, 독서와 학습, 사회적 관계, 문화·예술 활동 등 평생의 뇌 사용 습관을 통해 키워진다. 예를 들어, 같은 뇌졸중을 겪었어도 어떤 사람은 금방 회복해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어떤 사람은 오래 고통받는다. 이 차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인지 예비력이다.
인지 예비력 개념은 1980년대 한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연구자들은 생전엔 멀쩡했던 노인들의 뇌에서 사후 검사 시 알츠하이머 병리가 뚜렷하게 발견되는 사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분들은 이렇게 심각한 병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았을까?”
그 해답은, 그들이 충분한 인지 예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병리적 손상이 있었지만 뇌가 이를 대체할 전략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fMRI(기능적 뇌영상) 연구들을 보면 인지 예비력이 높은 사람들은 더 많은 뇌 부위를 동원하거나, 더 효율적인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즉,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덜 지치고, 덜 손상되는 뇌를 가졌다는 뜻이다.
그럼 인지 예비력은 타고나는 걸까, 아니면 기를 수 있는 걸까? 정답은 ‘충분히 기를 수 있다’이다.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활동들이 인지 예비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나이와 상관없이 책을 읽고 공부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은 ‘배움의 즐거움’을 통해 뇌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외국어 공부, 악기 연주, 글쓰기, 퍼즐, 보드게임 등 다양한 ‘지적인 활동’은 사고의 유연성을 키워준다. 친구와의 대화, 모임 참석, 가족과의 정서적 연결 같은 ‘사회적 교류’는 뇌에 복합적인 자극을 준다. 걷기, 자전거 타기, 요가, 수영 등 꾸준한 유산소 운동은 ‘신체 활동’을 통해 뇌혈류를 개선하고 전반적인 뇌 건강을 돕는다.
또한 명상, 스트레스 관리, 긍정적 정서 유지 같은 ‘감정 조절’은 뇌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다시 말해, 인지 예비력은 우리의 일상 속 활동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는 정신적 저축통장인 셈이다.
인지 예비력이 높은 사람은 뇌 질환이나 노화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수술, 외상, 환경 독소 노출, 만성 스트레스 같은 일상 속 어려움에도 더 잘 대처한다. 즉, 인지 예비력은 단순히 ‘치매 예방’의 수준을 넘어서, 우리의 인지적 회복력과 적응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임상에서는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심지어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환자들까지도 인지 예비력 수준에 따라 치료 예후가 달라지는 경우를 자주 관찰한다.
‘어릴 때 공부 안 한 게 후회된다’는 말을 종종 상담현장에서 듣는다. 하지만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부터가 진짜입니다.” 인지 예비력은 정해진 게 아니라 축적되는 것이다. 오늘 읽은 책 한 권, 친구와의 깊은 대화 한 번, 공원에서의 30분 산책이 바로 뇌를 위한 투자이다.
나의 뇌가 얼마나 유연하고 회복력 있는지, 그 비밀은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당신의 뇌에 투자를 시작해보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니, 지금이 가장 좋은 시작이다.
글. 오주원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뇌기반심리상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