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 기반 심리상담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뇌의 시대, 부모의 새로운 역할
오늘날 우리는 ‘뇌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 의학, 교육 그리고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뇌는 핵심적인 연구 대상이자 설명의 중심이 되고 있다. 뇌에 대한 이해는 더 이상 과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닐뿐더러,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뇌를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도와야 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뇌과학은 인간 행동과 감정, 그리고 학습과 성장의 비밀을 밝혀내며 학문적, 실용적으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특히 뇌가 ‘가소성(plasticity)’을 가진다는 사실은 교육과 심리치료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뇌는 어린 시절뿐 아니라 평생에 걸쳐 경험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경험하는 모든 순간이 뇌 발달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이해하고, 아이들에게 긍정적이고 통합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단순히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의 두뇌가 건강하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부모의 역할이다.
혼돈이나 경직에 치우치지 않고 웰빙의 강에 머무는 능력
뇌기반 심리상담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개념 중 하나가 통합이다. 통합이란 뇌의 각 영역과 좌우반구가 서로 연결되고 협력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뇌가 통합될 때 아이는 더 안정적이고 유연하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다.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대니얼 시겔Daniel Siegel 박사는 그의 저서 《The Whole-Brain Child》(국내 번역서 제목은 《아직도 내 아이를 모른다》)에서 통합의 중요성을 ‘강의 두 둑’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시겔 박사는 정신건강을 ‘웰빙의 강(river of well-being)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는데, 이 강이 ‘혼돈의 둑’과 ‘경직의 둑’ 사이를 흘러야 한다고 말한다.
시골을 가로지르는 평화로운 강을 상상해보자. 이 강에서 배를 타고 평화롭게 물 위를 떠다닐 때, 우리는 주변 세상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느낌을 갖는다. 이때는 우리의 상황이 변화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으며, 안정적이고 평화롭다.
그러나 강을 따라 헤엄치다 보면 양쪽의 강둑 중 하나에 너무 가까이 다가갈 때가 있다. 어느 둑에 접근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한쪽은 ‘혼돈의 둑’이고 다른 쪽은 ‘경직의 둑’이다. 혼돈의 둑은 감정과 반응이 통제되지 않고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상태에서는 아이가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균형을 잃기 쉽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작은 문제에도 큰 소리로 울부짖거나 화를 낸다면, 이는 혼돈의 둑에 너무 가까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경직의 둑은 지나치게 통제되고 유연성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 이는 경직의 둑에 가까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시겔 박사는 통합을 통해 이 두 둑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통합상태의 뇌는 혼돈과 경직의 극단을 피하고, 웰빙의 강을 따라 유연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부모가 일상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혼돈의 순간이나 경직된 태도를 발견할 때, 이를 통합의 기회로 인식한다면 매우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면 먼저 아이의 감정에 공감(우뇌 연결)해 준 이후에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명(좌뇌 연결)해 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뇌 통합은 아이가 정서적 탄력성을 기르고, 나아가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기르게 한다. 부모가 뇌 통합의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한다면 아이가 ‘웰빙의 강’에서 더욱 조화롭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좌뇌와 우뇌의 조화로운 통합
부모는 늘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반응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아이가 감정적으로 흥분하거나 불안정하다면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더욱 당황하게 된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는 아이들이 감정을 느끼는 방식과 그 감정이 뇌의 어느 부분에서 처리되는지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이가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 부모가 어떻게 통합적 방식으로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이는 태어날 때 뇌가 완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뇌의 두 주요 영역인 좌뇌와 우뇌는 아이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많은 부모가 이 같은 뇌의 구조와 기능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아이의 감정을 다루기 어렵다고만 한다.
좌뇌는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능력을 제공하며, 사고를 정리하고 순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어떤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때는 좌뇌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좌뇌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는 좌뇌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뇌는 감정과 직관, 그리고 비언어적 소통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다. 우뇌는 사람들의 감정을 인식하고, 사회적 신호를 읽으며, 신체적인 감각을 처리한다. 아이들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감정을 즉각적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때는 우뇌가 활발하게 기능하는 순간이다. 아이가 두려움,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느끼는 때에도 우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아이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우뇌의 역할이다.
감정적 상황에 빠진 아이와 대화하는 법
아이가 학교에서 친한 친구와 다투고 집으로 돌아온 상황을 가정하고, 이때 부모가 아이의 좌우뇌를 어떻게 통합하는지 살펴보자. 감정적으로 격해 있는 아이를 다룰 때, 부모는 우선 아이의 우뇌와 연결을 시도해야 한다. 감정이 고조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가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감정을 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친구가 나한테 나쁜 말을 했어”라며 울거나 화를 낼 때, “그런 말을 들어서 슬프고 화났겠구나” 또는 “너무 속상했겠다”라는 말로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이 단계에서 부모는 언어보다는 몸짓과 목소리 톤 그리고 안쓰러운 표정 등을 사용하여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유도하고, 감정을 안전하게 풀어내도록 돕는다. 즉, 부모의 온몸을 사용하여 아이를 수용한다는 사인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의 고조된 감정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한다.
아이의 감정이 조금 안정되면 좌뇌 연결을 시도한다. 아이에게 친구와 다툰 이유를 묻고, 아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하면서 차츰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또는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으며 아이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돕는다.
아이가 자신이 겪은 상황을 말로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은 아이의 좌뇌와 우뇌가 통합적으로 기능하는 순간이다. 아이는 이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부모는 아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은 다음 “친구가 다툰 다음에 느낌이 어땠어?” 또는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질문은 아이를 감정적으로 안정되게 하고 상황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뇌 통합의 기준에서 부모는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정서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부모와 아이의 우뇌 연결이 중요한 이유
우리는 많은 것을 감각적으로 또는 비언어적으로 느끼며 이해한다. 특히 어린아이는 아직 언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엄마와의 정서적 연결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다. 부모의 뇌와 아이의 뇌가 연결되는 과정이 아동 발달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력을 밝힌 연구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대니얼 시겔과 앨런 쇼어Alan Shore의 연구는 엄마의 우뇌와 아이의 우뇌가 연결되는 과정이 아이의 정서적, 사회적, 인지적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는 엄마와 감정적으로 연결되려는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대니얼 시겔은 “엄마와 아기의 뇌는 정서적으로 조율된다”며, 엄마와 아이의 우뇌가 연결될 때 아이의 뇌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고, 그 감정에 맞게 반응함으로써 아이의 우뇌가 발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가 아이의 불안, 슬픔, 기쁨 등을 인식하고 이에 맞는 표정과 목소리 톤, 몸짓 등의 비언어적 신호를 보내면, 아이의 우뇌는 이를 이해하고 반응하면서 감정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은 뇌의 정서적 조율(emotional attunemen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서적 조율이란 두 사람의 뇌가 서로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으로, 부모가 아이의 정서 상태에 맞춰 적절히 반응할 때 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에 대한 정서적 토대를 이룬다.
앨런 쇼어 또한 ‘감정 중심의 우뇌 중심 치료’에서 부모와 아이 간의 우뇌 연결이 아동 발달에 미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뇌가 감정을 처리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며,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 그는 우뇌 간의 상호작용이 아이의 뇌 발달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부모와 아이가 우뇌로 연결되는 방법은 주로 정서적 조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그 감정에 맞는 비언어적 신호(표정, 목소리 톤, 몸짓 등)로 반응하는 것을 주요하게 포함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불안해할 때 부모가 이를 즉각적으로 인식하고 아이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뇌는 안정된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모는 아이가 세상과 안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자의식을 형성하도록 돕고, 나아가 감정 조절 능력과 사회성을 기르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서적 안정감은 인지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안정적인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면 다양한 상황에서 감정을 잘 조절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정서적 안정감은 사회적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관련된다. 부모와의 우뇌 연결을 통해 아이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사회적 상황에 적절히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또래 관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감정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사회적 규범을 더 잘 익히고, 건강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정서적 안정감은 인지발달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아이가 감정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때 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고, 새로운 경험도 더 효과적으로 학습한다.
정서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하면 아이는 감정적·사회적 발달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동기의 정서적 문제는 성인기에도 감정적 상처와 불안정한 감정적 유대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이는 결국 심리치료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심리치료사와 내담자의 우뇌 연결
심리치료는 치료사와 내담자의 우뇌가 깊이 연결되는 과정이다. 치료사는 내담자의 감정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이를 정확히 반영함으로써 내담자가 감정적 안정감을 느끼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치료사는 내담자가 과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내담자는 자신이 겪은 고통과 상처를 직면하고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렇게 볼 때 대부분의 심리치료는 내담자가 자신의 부모와 이루지 못한 우뇌의 감정적 연결을 치료사가 대신 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치료사는 부모를 대신해 내담자가 어린 시절에 필요로 했던 감정적 유대를 치료적 환경에서 이루어 내며, 이를 통해 내담자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서적으로 더 건강해질 수 있다.
부모가 아이와 감정적 유대를 잘 형성하는 것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더없이 중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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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오주원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뇌기반심리상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