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말 사용과 뇌 활용

[칼럼] 우리말 사용과 뇌 활용

한눈에 읽는 뇌교육과 철학 이야기-11

언어학자인 스티븐 로저 피셔(Steven Roger Fischer)는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가장 효율적인 서체 가운데 하나’라고 평하였다. 또한 한글의 가장 빛나는 아름다움은 자음 글자의 모양이 그것을 발음하는 방식을 도해적으로 묘사한 것에 있고 모음 글자에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모음의 형이상학적 개념이란 바로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사람(人) 즉 천지인 사상을 의미한다. 천지인 사상은 『천부경』에 잘 나타나 있다. 한글의 기원에 대한 여러 설이 있지만, 피셔는 체로키 족의 음절 문자나 이스터 섬의 문자처럼 서양에서 비롯된 발명품과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Geoffrey Sampson)은 한글이 ‘가장 독창적이고도 훌륭한 음성문자’이면서 ‘의문의 여지없이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지적 산물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특이하게 샘슨 교수는 한글을 세계에서 유일한 ‘자질문자(資質文字, feature system)’라고 주장한다. 또한 피셔는 자질문자란 ‘변별자질’을 재생할 수 있는 문자이며, 한글이 출현하기 전에는 자질문자체계의 선례가 없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양의 알파벳은 자음과 모음에 일대일로 대응되는 음소 문자 체계인데 반해, 한글은 일대일 대응뿐만 아니라 거기에 내재하는 음성적 자질(phonetic feature)까지도 함께 표현할 수 있다. ‘ㄱ, ㄷ, ㅂ, ㅅ’과 같은 예사소리, ‘ㄲ, ㄸ, ㅃ, ㅉ’의 된소리, ‘ㅋ, ㅌ, ㅍ, ㅊ’의 거센소리는 음성 자질이 서로 다르다.

예를 들면, ‘ㄱ’에서 획을 추가하면 ‘ㅋ’이 되고, ‘ㄷ>ㅌ, ㅂ>ㅍ, ㅈ>ㅊ, o>ㅎ’처럼 예사소리에 획을 더해서 거센소리가 만들어지므로 ‘예사’나 ‘거센’과 같은 음성 자질이 획이라는 문자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반영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한글은 보다 많은 음성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각(sensation)에 대한 다양한 질적인(qualitative) 표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솔솔’, ‘술술’, ‘쏠쏠’이나 ‘졸졸’, ‘줄줄’, ‘쫄쫄’ 등은 각각 그 어감이 다르다. 세계 어느 나라 언어도 이렇게 많은 자질을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말은 ‘감각질(qualia)’이 풍부한 언어적 특징을 갖고 있기에, 이러한 감각질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한글은 자질문자의 특징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감각질이 풍부하다는 것은 신경과학(Neuroscience)의 관점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풍부한 감각질은 대상에 대한, 앞에서 피셔가 언급한 변별자질의 기능 즉, 인식의 기능을 높여준다는 의미와 같다. 

미국 신경과학자인 제럴드 에덜먼(Gerald M. Edelman)의 ‘뇌기반인식론(brain-based epistemology)’에 따르면, 인간이 다른 포유류와 다른 점은 ‘의식하고 있음을 의식할 수 있다는 것’과 ‘주관적인 감각질(qualia)’을 갖고 있다는 것이며, 감각질은 고등한 분별의 결과물이며 의식의 구성 요소라고 한다. 

에덜먼은 의식이란 척추동물의 진화과정에서 시상피질계(thalmocortical system)의 재유입(reentry) 회로가 가치평가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억시스템과 지각을 담당하는 후두엽의 피질시스템을 연결함으로써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역동적 핵심부(dynamic core)를 구성하는 재유입회로에서 수많은 통합이 이루어지고 자극들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진화론적으로 크게 증가했고, 신경세포의 이러한 상호작용에 수반되는 감각질은 다양하게 식별할 수 있는 신경학적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발달한 시상피질계에서 피질과 피질들 간의 그물망 같은 재유입회로의 상호 연결에 의해 인간은 고도의 식별 기능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다른 포유류들에 비해 고도로 발달한 식별 기능을 갖고 있는 이유는 대뇌피질을 비롯한 기타 여러 뇌영역의 발달에 따른 것이다.

조금 더 쉬운 예로 인간이 어떻게 사물을 인지하는지를 살펴보자. 눈의 망막에서는 3가지 정도의 색과 아주 기초적인 형태만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다양한 색깔과 질감을 느끼는 것은 망막에 들어온 기본적인 감각을 뇌에서 아주 복잡한 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찬란한 색감을 느끼는 것은 복잡하게 진화한 뇌 덕택인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고도의 식별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진화의 정점에 있는 인간의 뇌 기능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한글이 발달한 자질문자로서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른 포유류와 구별되는 고도의 식별기능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뇌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말과 글이 갖고 있는 의미는 남다르다할 수 있다.

 


 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이승호 교수 
 magoship@ub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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