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뇌교육,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뇌교육의 학문론(2)

[칼럼]뇌교육,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뇌교육의 학문론(2)

한눈에 읽는 뇌교육과 철학 이야기-9

뇌교육에 ‘체율체득(體律體得)’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체득’이란 다른 말로 ‘체화(體化)’ 혹은 ‘신체화’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요즘 인지과학에서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embodiment’ 정도가 될 것이다. 

체득의 사전적 의미는 ‘몸소 체험하고 알게 되고 그 뜻을 깊이 이해하며 실천으로 본뜬 것’이다. 이때 ‘체험’이라는 말은 ‘몸의 경험’으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앞의 칼럼에서 말한 칸트의 감성 즉 외부세계에 대한 감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국의 경험론이나 과학적 세계관도 크게 보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내면세계에 대한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한민족 경전 중의 하나인 『삼일신고』에서는 오감을 멈추고(지감, 止感), 숨을 고르게 쉬고(조식, 調息), 부딪힘을 금해야(금촉, 禁觸) 한다고 한다. 이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명상(meditation)의 한국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감, 조식, 금촉이라는 수행을 통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속성인 신성(神性)과 영혼 그리고 밝은 마음인 양심(陽心)을 느낌으로 체험할 수 있다. 신성이나 양심, 영혼 등은 어느 특정한 사람 즉, 깨달은 사람이나 성직자와 같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기에 존재론적으로 보편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존재를 인간 누구나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뇌교육의 인식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체험은 그냥 정신적인 체험 즉 깨달음으로만 단정될 수 없다. 깨달음이 선택을 통해 실천 즉 행동(action)으로 해질 때야 비로소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이 되고, 지식은 단순히 앎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실천을 ‘홍익(弘益)’이라고 한다.  

이러한 홍익의 의미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469~399)가 죽음을 무릅쓰고 주장했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돈과 명예나 권력에만 집착하고 있는 소피스트(Sophist)들에게 인간의 가치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영혼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홍익하는 마음이 대중에게 전달되어 깨달음이 대중화될 때에야 비로소 ‘재세이화(在世理化)’가 이루어진다. 대중에게 전달은 일반적으로 말과 글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개념화 작업이 필요하기에 학문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부도지』에서는 ‘인성이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워 배우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환웅이 순행(巡行)을 마치고 돌아와서 언어, 역법, 의약술, 천문과 지리 등을 저술하여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였고 이로부터 학문을 하는 풍조가 일어났다.’라고 한다. 이러한 『부도지』의 내용은 우리가 왜 학문을 해야 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내면의 경험을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한계성이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내면 깨달음의 경험은 사변적 경향으로 경도되거나 언어에 갇히기 쉽다. 내면의 경험은 생명 현상에 대한 경험이다.

그리고 모든 생명 현상은 변화하는 항상성을 갖고 있기에, 메두사의 시선처럼 일정한 개념으로 갇히게 되면 그 생명력은 화석화되고 만다. 그렇기에 학문은 수행과 함께 병행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아 숨 쉬는 학문’이 가능하게 된다고 뇌교육은 주장한다.      

 


 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이승호 교수 
 magoship@ub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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