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캐니언과 자이언 캐니언의 환상적인 여행을 마치고 다음은 파월 호수에서 야영하며 저녁을 보내는 코스이다. 자이언 협곡의 멋에 취해 사진 찍고 잠시 명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두어 시간 늦어졌다.
파월 호 야영장까지는 2시간이 걸린다. 이대로 간다면 7시 반쯤 도착하게 되는데, 동쪽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걱정이 앞선다. 컴컴한 곳에서 텐트를 쳐야 하고 저녁을 해 먹어야 한다. 한 시간 반쯤 지나서 저녁에 쓸 음식을 장만하니 온통 컴컴해진다. 그런데 놀랍게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 번개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오늘 야영을 할 수 있으려나 걱정되어 안내자에게 대책을 물어보니, "걱정하지 마세요. 날씨 예보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며 태연하다.
"음, 내가 천기를 보니 분명 우리는 비를 맞고 텐트를 칠 것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가이드가 내기를 건다. 내기를 이기는 것보다는 비를 안 맞기를 기원했다. 파월 호 야영장에 7시 50분쯤 도착을 하니 어둠이 내린 파월 호 앞에서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빨리 텐트라도 칩시다."
텐트를 옮기는데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우비를 챙겨입고 부지런히 텐트를 치고 나니 안심이 되지만 이후 달빛 별빛 수련부터 저녁 식사까지, 닥쳐올 사건에 머리가 복잡하다. 일행을 다시 버스에 옮겨 타게 하고 비를 피하게 하였다. 가만히 있자니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 우비를 입고 차에서 내려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파월레이크 천지신명이여! 한 판 잘 놀려고 왔는데 이렇게 구박을 하십니까?"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
"밝고 맑게 살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말을 안 듣고 이렇게 시커멓게 왔는데 신성한 장소에서 내가 재워줄 것 같으냐? 때를 벗겨라. 이곳에서 마음의 때를 벗기려고 온 거 아니냐, 검은 먹물 뿌리고 있는 것이 마음이 안 들어 내가 비를 뿌리니, 화내지 말고 버스에서 내려 비를 맞으라…."
"하늘이여! 잠시 비 맞아 몸과 마음을 씻으면 달빛과 별빛을 주시렵니까?"
"그렇다."
"자, 모두 버스에서 내려 신성한 비나 흠뻑 맞아봅시다."
하나 둘 버스에 내린다.
"모두 소리치세요."
"비야! 물러가라!"
세 번 소리를 지르니 갑자기 비가 멈추고 달빛이 비쳐온다.
주위 탁자를 모으고 앉자 미국에서 제일 맛있다는 LA 갈비가 나온다. 젖은 몸에 바비큐를 먹고, 와인을 두어 잔 마시니 온몸이 따듯해지고 기운이 솟구친다. 저 멀리 호수에 비친 달빛은 내 마음에 밝은 달과 하나가 되어 황홀감이 더해간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자 이야기 꽃을 피운다. 돌아가면서 이번 여행을 오게 된 사연과 앞으로 여행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는 사이 밤이 깊어간다. 모두가 달빛과 별빛 모닥불에 취해 간다. 와인 한 잔을 곁들이니, 기운에 취한 몇몇 회원에게서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오더니 노래가 시작된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시키지 않아도 노래하고 춤추고 풍류를 즐긴다. 모닥불이 서서히 사그라지면서 캠프장의 놀이판은 끝이 났다.
▲ 파월 호에 아침 해가 떠오른다. 붉은 빛의 바위와 호수의 어울림은 신비에 가깝다.
파월 레이크는 그랜드 캐니언 댐이 콜로라도 강을 막아 생긴 인공 호수지만, 그 규모가 워낙 크고 아름다워 인공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투명한 옥빛 물결이 약 296킬로미터에 걸쳐 사막을 유유히 가로지른다.
십오 년 전 처음 이곳을 방문한 후 호수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형형색색의 기암들, 석양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바위들, 밤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 레인보우 브리지가 품어내는 신령한 분위기가 좋아 매년 여름 순례하듯 파월 호를 찾는다. 우주의 신비가 담겨 있는 세도나와 파월 레이크.
태양도 달도 오래 머무는 곳을 허락하지 않는 곳
지구의 원시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
지구의 속살을 마냥 드러내놓고 만 년 전, 십만 년 전
그리고 수천 만 년, 수십 억 년의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곳
레인보우 브리지에 내가 있다. (세도나 스토리 115쪽)
아침 식사를 마치고 파월레이크와 레인보우 브리지를 방문하려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가이드의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한다.
"레인보우 브리지 선착장이 부서져서 배를 댈 수가 없어 갈 수 없다."
모든 회원이 한숨을 쉰다. 나는 그곳으로 가려고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어제 건방지게 하늘에 대고 소리쳤더니 하나는 주고 하나는 잃게 하시나 보다.
회원들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파월 호의 아름다운 곳으로 안내했다.
▲ 파월 호 선착장. 파월 레이크는 그랜드 캐니언 댐이 콜로라도 강을 막아 생긴 인공호수지만, 그 규모가 워낙 크고 아름다워 '인공'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쉬워하는 회원들과 함께 벤치에 앉아 피리로 한 곡조를 불렀다.
파월 호의 아름다운 곳을 3시간쯤 배를 타고 둘러보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아쉽고 아쉽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레인보우 브리지에 가려는 우리에게 더 준비해서 오라는 뜻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레인보우 브리지는 자연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다리이다. 마치 무지개처럼 강을 가로질러 반원 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데, 폭이 약 84미터, 높이가 290미터가 된다.
▲ 레인보우 브리지
처음 그곳에 서 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이었으며, 하나는 병들어가는 지구를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는 지구의 영혼, 땅의 마음이었다.
명상여행단과 함께 방문할 때는 다리가 바라다보이는 너른 바위에 앉아 명상했다. 이곳에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두 가지의 화두를 던지고 혼자서 그 주제로 명상한 다음, 다 같이 모여서 그 화두를 들고 명상할 때 자기 마음에 들어찼던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한다. 그러는 가운데서 느껴지는 것이 많다.
글, 사진. 선풍 신현욱 일지아트홀 관장 pungrd@hanmail.net
■ [1편] 선풍 신현욱의 힐링 명상 여행기: 화려한 라스베이거스(기사 바로가기 클릭)
■ [2편] 선풍 신현욱의 힐링 명상 여행기: 브라이스 캐니언(기사 바로가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