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찰스 다윈, 지그문트 프로이트, 에드바르 뭉크(위키피디아)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공공장소에 혼자 가면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그는 불안 증세로 두근거림, 두통, 소화장애를 겪었다. 그러나 1859년에 펴낸 <종의 기원>은 세상은 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믿던 사람들에겐 혁명과도 같은 충격을 주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불안장애 환자가 세상을 바꾼 역작을 낸 것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공황장애를 비롯한 불안장애를 앓았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공포를 표현한 인상적인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는 성격장애였다. 어머니는 다섯 살 때 결핵으로 죽었다. 여동생은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다녔다. 뭉크 또한 몸이 약해서 죽음에 대한 불안에 떨었다. 심지어 우울증, 알코올중독까지 앓았다고 한다. 이는 1984년 <불안>을 비롯해서 여러 작품으로 승화됐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독일 괴팅겐대학교 정신의학과 보르빈 반델로브 교수는 “유명한 예술가 중에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불안이 완벽주의자로 하여금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연구결과로도 뒷받침된다. 20세기 초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와 그의 제자 존 도슨은 적당한 불안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시험이나 강연을 앞두면 긴장한다. 그러나 너무 심한 불안이 아니라면 최고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더 많은 연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브르빈 반델로브 교수는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은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씀으로써 불안감을 잊을 수 있다”라며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감성이 풍부하고 감정적이고 열정적인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절규(자료=예술의 전당)
유명인들이 불안을 피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유태인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이 제안한 역설적 의도(Paradoxical intention)가 있다.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던 환자가 있었다. 프랭클은 이 환자에게 또 땀이 나려고 할 때는 “그래, 내가 땀을 얼마나 많이 흘릴 수 있는지 보여주자”고 마음을 먹어보라고 했다. 1주일 뒤에 찾아온 환자는 4년 동안 고생했던 땀 공포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불안하면 인정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긴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종종 과민한 상태에 빠지면 문제다. 이 박사는 “떨릴지도 모른다. 실수할지도 모른다고 솔직히 자신부터 인정하라”며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증이 신경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는 환자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떤 신체감각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런, 큰일 났네”라고 하면서 걱정하기 시작하는데 실제로 공황발작을 겪는다고 한다. 심리학 박사인 마거릿 워렌버그는 “공황발작이 오지 않았는데도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믿음이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이라며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느낌은 느낌일 뿐”이라고 조언했다.
인지행동치료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번스 박사는 불안장애를 치료하는 데 약물사용이 먼저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그 또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불안장애의 근본적인 치유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괴롭히는 불안도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삶의 조건”이라고 말한 것처럼. 불안을 질병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끝>
■ 참고문헌
데이비드 번스, <패닉에서 벗어나기>, 끌레마 2013.
마거릿 워렌버그, <왜 나는 늘 불안한 걸까>, 소울메이트 2014.
보르빈 반델로브, <불안 그 두 얼굴의 심리학>, 뿌리와이파리 2008.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 2005.
알랭 드 보통, <불안> 은행나무 2011.
이시형, <둔하게 삽시다>, 한국경제신문 2015.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