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두 창세이야기 마고신화와 에덴신화 12번째 글에서는 잠시 신화이야기는 접어두고 ‘하느님(하나님)’이란 용어에 관해 쓰려고 합니다. 그동안 이 용어에 관해 정리하지 않고 썼습니다. 이 칼럼에서 자주 나오는 중요한 단어인데,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하느님’과 ‘하나님’을 같이 쓰고, 다음 글부터는 ‘하느님’으로 통일하고자 합니다.
이승훈이 영세를 받아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천주교인이 된 1784년, 또는 선교사 알렌이 입국한 1884년 이전에는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하느님)’이란 말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용어는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 수천 년간 사용해오던 우리 한민족 고유의 ‘신에 대한 호칭’입니다. 선도의 핵심경전인 《천부경》의 ‘일一’, 즉 ‘한’이며 하늘, 하느님, 하나님, 한얼님, 상제上帝, 천제天帝, 일신一神과 같은 개념입니다.
다음은 조선 선조 때 시인 박인로(1561~1642)가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시시로 머리드러 북진北辰을 바라보고/ 남모라난 눈물을 천일방天一方에 디이나다/ 일생一生에 품은 뜻을 비옵나다 하나님아." 여기에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는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순수한 훈민정음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둘째 음절 홀소리는 ‘ㅏ’가 아닌 ‘아래 아(․)’인데 표기할 수 없어서 ‘하나님’으로 적었습니다.
풀이하면 “때때로 머리를 들어 북쪽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남모르는 눈물을 하늘 한쪽에 떨어뜨리는도다/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이시여!”입니다. 이 시는 선교사 알렌이 입국하기 250년 전쯤에 쓴 것으로, 기독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 이미 우리 민족이 ‘하나님(하느님)’이란 용어를 쓰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 우리 민족 고유의 신 호칭이 어쩌다가 야훼신을 부르는 이름이 되었을까요? 1882년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는 성경을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번역한 성경은 누가복음이었고, 야훼는 ‘하느님’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는 선교보고서에 ‘하늘(heaven)’과 ‘님’의 합성어인 ‘하느님’이 가장 적합한 번역일 것이라 적었습니다.
다음 해 번역을 고쳐 다시 펴내는 과정에서 ‘아래 아’가 홀소리 ‘ㅏ’로 일괄 변경되면서 ‘하나님’이 됩니다. 일설에 의하면 기독교가 처음 번성하던 곳은 평양이었는데 그 곳 사투리가 ‘하나님’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교육 수준이 낮은 민중과 특히 어눌한 미국선교사들이 발음하기가 쉬워 빨리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1887년 서울에 있던 선교사 5명- 언더우드, 아펜젤러, 알렌, 스크랜튼, 헤론이 성서번역위원회를 발족합니다. 연세대학교를 세운 선교사 언더우드는 야훼를 한국인들이 숭배하는 ‘하느님’으로 번역하여 포교하는 것은 야훼에 대한 신성모독이라 여겨 반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자회는 1894년 신의 명칭을 표결에 부쳤고, 결과는 천주(텬주):하느님이 4:1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서양 선교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천 년간 숭배해 온 ‘하느님’으로 번역하면 포교하는 것이 아주 쉬울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언더우드는 선교사와 성서번역위원장직을 박탈당하는 위기에 처해 야훼를 하느님으로 번역하는 데 동의하고 맙니다. 그래서 번역위원회의 표결 결과는 유명무실해지고, ‘천주’와 ‘하느님’은 한동안 공존하다가 1906년 ‘하느님’이 채택되어 ‘천주’는 더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기독교는 우리 민족 정서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던 하느님 신앙을 타고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기 시작합니다. 현재는 가톨릭과 성공회, 개신교 한 종파에서 ‘하느님’ 호칭을, 대부분의 개신교는 ‘하나님’ 호칭을 씁니다. ‘하나님’이란 명칭이 유일신의 개념에 더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1992년 11월11일 정근철이라는 사람이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합니다. 그는 불교미륵종의 한 분파인 ‘한세계인류성도종’ 종파의 대표였습니다. 원래 ‘하느님’이란 명칭은 한민족의 것인데 그 동안 기독교에서 허락도 없이, 로열티도 내지 않고 무단으로 써왔기 때문에 보상금으로 1억을 내라고 재판을 신청한 것입니다. 죄목은 ‘한민족 하느님 도용죄’였습니다. 이것이 일명 ‘하느님 이름 도용사건’입니다.
그런데 정근철 대표는 패소합니다. 법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하느님(하나님)’이 기독교의 것이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고유명사여서 기독교에서도 쓸 수 있다고, 그래서 보상금 1억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재판을 통해 ‘하느님(하나님)’이 기독교의 고유 이름이 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민족이 써왔으며, 기독교에서 1906년부터 야훼를 ‘하느님(하나님)’으로 번역하여 부르기 시작했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연유로 ‘하느님(하나님)’이란 신의 호칭을 같이 쓰게 되었지만 두 ‘신’의 한자는 다릅니다. 신神은 ‘귀신 신神’으로 지신地神, 목신木神, 수신水神, 용왕신 등 크고 작은 여러 신과 온갖 잡신을 표현하는 글자입니다. 또다른 ‘신’은 대일항쟁기 대종교도이자 저명한 독립운동가인 서일徐一은《회삼경會三經》자해字解에서“‘신’은 신神의 옛 글자로 대주재大主宰를 지칭한다”고 풀이하였습니다.
《천부경》에서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모든 존재가 그것에서 나와 그것으로 돌아가는 존재의 근원을 ‘일一’이라 하였습니다. 이 ‘하나’, ‘일一’이 《삼일신고》에서는 ‘신’(한울님, 하나님, 하느님)으로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선도에서는 위의 글자를 '하느님 신’자로 쓰고 있습니다.
현대선도에서도 두 신을 구별하여 ‘神’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의 믿음에 의해 그 생명이 유지되는 정보이고 관념으로, 지금까지 인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지역신, 민족신들의 실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신’은 종교로 정의할 수 없고 종교에 속박되지 않은 ‘홀로 스스로 존재하는 영원한 생명’이라 하였습니다.
이 신은 모든 생명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마음껏 실현하도록 허락하는 하느님, 우주 전체가 한 울타리인 하느님, 우주에 그 어디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우주 만물 품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모든 것 속에 존재하는 하느님, 우리의 생명현상 속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입니다. 이 신은 누구를 지배하려고 하지도 않고 누구의 섬김을 받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출애굽기>의 야훼하느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알리는 장면을 보시겠습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고 말하면 그들이 ‘그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출애굽기> 3장13절, 15절) 또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 한다…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출애굽기> 20장 3절, 5절)라고 하였습니다.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에 의하면 다른 신을 향한 이런 적개심은 사실, 당시에는 전혀 생소한 종교적 태도였다고 합니다. 그 시대 메소포타미아지방은 전반적으로 다신교를 믿고 있었습니다.(메소포타미아는 400여 신, 이집트에는 240여 신) 그래서 다른 민족의 신들이 합쳐져 신의 숫자가 늘어나기도 하고, 그리스의 제우스신이 로마의 주피터신이 되는 것처럼, 같은 신이 이름을 바꿔 그대로 존속되기도 하는 것이 추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신은 다른 신들을 다 배척하고 자신만을 유일한 신으로 모시라고 요구합니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구약성서 전통의 중심 흐름은 야훼라는 한 종족의 신과 세계의 다른 모든 신들-자연신들과 다른 모든 민족신들-과의 투쟁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종교가 다르다고 전쟁을 많이 합니다. 그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 아이들이 불행하고 비참함 삶을 삽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가 함께 있으면서도 종교로 인한 유혈 사태가 안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 외국인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밑바탕에 선조때부터 숭배해왔던 모든 것을 포용하는 '하느님 신'의 넉넉한 품이 있기에 가능하다 여겨집니다.
▲ 김윤숙 기고가/ 국민인성교육 강사, 찬란한 우리 역사이야기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