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손상 환자들로부터 뇌과학적 통찰 얻은 뇌과학자들 이야기

뇌 손상 환자들로부터 뇌과학적 통찰 얻은 뇌과학자들 이야기

[신간] '뇌과학자들'(해나무 간)

1559630일 프랑스 왕 앙리 2세가 마상창시합에서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을 잃었다. 왕을 돌본 의사들 중 앙브루아즈 파레가 있었다. 머리 부상에 관한 한 탁월한 전문가이긴 했지만, 파레는 왕을 담당한 의사들보다 지위가 낮았다. 마상창시합 사고 직후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의견을 따라야 했다. 왕을 돌본 의사들은 오른쪽 눈 외에는 별로 다친 데가 없다고 낙관했다.

앙리 2세 머리 부상 소식이 에스파냐에 전달되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프랑스로 출발했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뇌에 관한 전문 지식으로는 파레와 필적할 만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앙리 2세의 침실에서 만났다. 당대의 두 거장이 만난 것이다.

많은 궁정 의사들은 앙리 2세의 머리뼈에서 골절 부위가 전혀 발견되지 않자 앙리 2세가 죽지 않고 살 것이라고 선포했다. 하지만 베살리우스와 파레의 생각은 달랐다. 두 사람은 근거는 달랐지만 앙리 2세가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프랑스 왕 앙리 2세는 결국 710일 오후 1시 머릿속 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불길한 정적 속에서 베살리우스와 파레는 그 유명한 부검을 시작했다. 앙리 2세의 뇌는 앞쪽과 양 옆쪽은 정상으로 보였지만, 뒤쪽, 그러니까 충격을 직접 받은 곳의 반대쪽에서 베살리우스와 파레는 뇌막 아래에 검게 변한 체액이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물집처럼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머리뼈 골절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뇌가 입은 외상만으로 충분히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파레는 앙리 2세의 부검에서 영감을 얻어 머리 부상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그 후 400년 동안 신경과학의 표준 방식으로 참조되었다. 앙리 2세의 죽음은 신경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접근 방법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베살리우스는 새로운 뇌 지도를 유산으로 남겼고, 파레는 새로운 진단법과 외과 수술 기술을 물려주었다. 앙리 2세의 부검 이후 부검은 곧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부검이 확산되면서 특정 뇌 손상을 특정 행동의 변화와 연결 짓기가 더 쉬워졌으며, 새로운 부검이 이루어질 때마다 신경과학자들은 사람들의 증상을 더 정확하게 집어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샘 킨의 뇌과학자들-뇌의 사소한 결함이 몰고 온 기묘하고도 놀라운 이야기(해나무 간)는 뇌가 손상된 환자들로부터 뇌과학적 통찰을 얻은 뇌과학자들의 이야기들을 풀어냄으로써 뇌과학의 역사를 관통해 나가는 책이다.

샘 킨은 왕, 암살자, 식인종, 난쟁이, 탐험가의 일화를 늘어놓으며 뇌과학의 역사에 이야기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골지, 카할, 펜필드, 브로카, 스페리 등의 뇌과학자들은 환자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뇌 영역들이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를 하나하나 밝혀냈다. 뇌졸중, 발작, 수술 실패, 사고 등을 겪게 된 환자들의 삶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기억에 갇히거나, 몸에 팔이 세 개가 달렸다고 착각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가짜라고 믿었다.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색정증 환자가 되거나, 실어증에 걸렸다. 이 책에는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 암살자, 글은 쓰지만 글을 읽을 수 없는 환자, 사물은 알아보지만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는 환자 등이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샘 킨은 우리의 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명료하면서도 실감나게 그려낸다. 여러 가닥의 실로 페르시아 융단을 짜듯, 샘 킨은 광기, 거짓말, 외상, 기억상실, 망상과 관련된 각각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뇌 전체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샘 킨은 우선 자신의 수면마비 이야기부터 꺼낸다. 자신은 똑바로 누워 잠을 자지 못하는데, 그런 자세로 자면 잠에서 깨도 몸은 여전히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에 빠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수면마비 상태에 놓이면, 숨 쉬기가 힘들어져서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저자가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이런 수면마비는 뇌 속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뇌는 꿈을 꿀 때 근육을 축 늘어뜨리는 화학물질을 분비하게 하는데, 화학적 불균형 등으로 문제가 생기면 꿈에서 깼는데도 화학물질이 계속 분비되어 근육 마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수면마비가 뇌 속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면, 기억상실증, 실어증, 망상, 병적 거짓말, 조현병 등은 어디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까? 저자 샘 킨은 뇌에 생긴 작은 결함이 항상 기묘하고도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주목하고는, 뇌의 각 영역들이 수행하는 기능을 소개하면서 어떤 연유로 기묘한 환자들이 생기는지를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함께 풀어낸다.

뇌졸중, 발작, 수술, 사고, 영양소 결핍 등으로 뇌의 일부가 손상된 환자들은, 손상된 뇌 부위에 따라 각기 다른 증상을 보인다. 가령, 뇌의 방추 얼굴 영역이 손상되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편도가 손상되면 죽음에 두려움이 사라지며, 관자엽뇌전증은 종종 초자연적인 환상을 보게 하고, 이마엽이 손상되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변연계 관자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과잉구강증과 색정증, 소아성애, 동물성애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렇게 뇌의 일부가 오작동하기 시작하면,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짜라고 믿거나, 말을 할 수는 없어도 노래는 부를 수 있거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자신의 글을 읽을 수 없거나, 자신에게 세 번째 팔이 달렸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이 죽었다고 말한다. 물론 뇌의 결함이 질환이 아니라 특이한 재능으로 나타난 경우도 있다. 어떤 이들은 여러 감각이 기묘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냄새에서 소리를 듣거나 질감에서 색을 본다. 어떤 시각 장애인은 소리가 어딘가에 부딪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통해 세상을 탁월한 방식으로 본다.

뇌 손상 환자들 이야기가 하나의 축이라면, 또 다른 하나의 축은 뇌과학자들 이야기다. 뇌과학자들은 기이한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관찰하고, 실험하고, 부검을 함으로써, 뇌과학적 지식을 확장시키거나 뇌의 실체에 한 발짝씩 다가간다. 르네상스 시대의 의학자 베살리우스는 한밤중 무덤가에서 시체를 훔쳐 해부했고, 하비 쿠싱은 제자 윌리엄 샤프를 시켜 사망한 거인 환자의 뇌분비샘을 가족의 동의 없이 훔쳤으며, 와일더 펜필드는 전기가 통하는 전선으로 뇌 표면을 자극함으로써 뇌의 운동 중추와 촉각 중추의 지도를 상세하게 작성했다. 폴 브로카는 실어증에 걸린 환자의 뇌를 관찰한 후, 뇌에는 각각의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지역이 따로 있다는 국재화이론을 주장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는데, 뇌 영역별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지만 뇌에서 그 어떤 것도 그 장소가 엄격하게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뇌가 하는 일은 모두 여러 부분들이 서로 협력하여 일어난다. 그러니까 언어 장소’, ‘기억 장소’, ‘두려움 장소같은 것은 없다.

이처럼 샘 킨은 뇌 손상 환자들의 이야기와 뇌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엮어내는데, 뇌진탕을 입은 프랑스 왕, 뇌를 먹는 식인종, 시각 장애인 탐험가, 모든 것을 기억하는 기억술사 등 환자들의 삶이 이 책의 씨줄이라면, 그들의 뇌를 들여다보고는 뇌과학적 통찰을 얻는 뇌과학자들의 삶은 이 책의 날줄이다.

덧붙여, 저자는 장이 시작될 때마다 명사로 된 단어(혹은 어구)를 맞추는 수수께끼를 내놓았는데, 뇌과학 용어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이 수수께끼는 맞추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끼게 할 것이다. 수수께끼는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섞여 있다.

이 책 전체는 5부로 나누어 1섬뜩한 해부학은 뇌와 머리뼈에 친숙해지게 함으로써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지도를 제공한다. 2세포, 감각, 회로에서는 궁극적으로 생각의 기반을 이루는 미시적 현상, 예컨대 신경전달물질과 전기 펄스 같은 것을 살펴본다. 3몸과 뇌에서는 그렇게 미세한 구조들을 바탕으로 뇌가 몸을 어떻게 제어하고 움직임을 지시하는지 보여준다. 또한 감정 같은 몸의 신호가 거꾸로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살펴본다. 4믿음과 망상에서는 수면마비 같은 증상이 어떻게 지속적이고 치명적인 망상을 야기하는지 보여주면서 몸과 정신의 연결 관계를 살펴본다.

이 모든 이야기는 5의식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기억과 언어와 그 밖의 고등 능력을 살펴본다. 그런 능력 중에는 자신, 즉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내면의 자신을 인식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 책을 다 읽게 되면 뇌의 각 부분이 어떻게 작용하며 서로 어떻게 협력하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다른 신경과학 책에서 읽은 내용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고, 앞으로 일어난 발전 양상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뇌의 한 부분만 따로 떼어내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각 장을 하나의 이야기로 서술했다.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하다. 사람의 뇌는 이야기 형식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가장 잘 기억한다. 저자가 이야기 형식을 택한 이유이다. 매력적인 각각의 이야기 속 깊숙한 곳에는 여러 가닥의 실이 숨어 있는데, 이 실들은 나머지 모든 장으로 뻗어나가면서 모두 연결된다. 이렇게 각각의 장은 전체 융단에 장식을 조금씩 추가하는 방식을 취하여 앞에서 다룬 모티프와 주제가 뒤에서 반복되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서로 복잡하게 얽힌 뇌의 패턴이 더 자세히 그리고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점이 독자를 빨아들여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이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던 뇌의 능력에 관한 지식을 확장시키고 마음 일부가 고장 났을 때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한 어떤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도서정보

서명 : 뇌과학자들-뇌의 사소한 결함이 몰고 온 기묘하고도 놀라운 이야기

 저자와 역자 : 샘 킨Sam Kean 지음 | 이충호 옮김

발행일 201677| 536쪽 | 20,000


글. 정유철 기자 npns@naver.com    사진.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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