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철학적 질문에 뇌과학은 어떻게 답할까?

‘나는 누구인가?’ 철학적 질문에 뇌과학은 어떻게 답할까?

휴넷 골드명사특강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초청 강연

"세상은 분명 존재하지만 세상은 결코 내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뇌가 계산해낸 결과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뇌가 바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까? 당연하다."

뇌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전기 및 전자과) 교수는 지난 20일 직장인 교육전문기업 휴넷(대표 조영탁)에서 주최한 ‘제126회 골드명사특강’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라는 철학적 주제를 뇌과학으로 설명하는 흥미로운 강의를 펼쳤다.

김대식 교수는 독일 막스플랑크뇌과학연구소에서 뇌과학으로 석ㆍ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MIT대학 박사후 과정, 일본 이화학(RIKEN)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뒤 미국 미네소타대, 보스턴대 교수를 거쳤다. 최근 《김대식의 빅퀘스천》을 출간해 뇌 분야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역사 등을 통해 뇌과학과 인간의 존재 이유를 풀어냈다.

▲ 직장인 교육전문기업 휴넷은 지난 20일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를 초청해 '뇌, 나 그리고 현실'을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사진=조해리 기자)

인간 뇌의 무게는 1.4kg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능력은 무한하다. 우리 인체의 모든 부분에는 예민한 감각 센서가 있지만 유일하게 뇌에는 그 센서가 없다. 뇌는 오로지 눈, 코, 귀, 피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감이 정확해야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진 않다. 사람은 외부 정보의 70%가량을 눈을 통해 받아들인다. 그런데 진화과정 중 무슨 일이 있어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눈이 공학적으로 본다면 설계가 완벽하지 않다. 

물체에 반사된 빛은 각막과 수정체를 통과해 카메라 렌즈에 해당하는 망막에 맺힌다. 빛은 망막의 신경을 자극해 빛의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어 뇌에 전달한다. 효율적으로 본다면 빛에 반응하는 세포가 빛에 가장 가까이 있어야 했지만 인간의 망막은 뒤집힌 상태로 눈 깊숙이 들어갔다. 인간의 눈은 물체를 정밀하게 인지할 만큼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뇌는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차이 값만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 해석한다. 그래서 착오가 생기기 시작한다.

몇 년 전 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동일한 커피를 두 잔의 컵에 따른 뒤 하나의 커피잔에는 2천원, 다른 커피잔에는 4천원이라고 썼다. 많은 사람이 4천원짜리 커피가 맛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쓴맛이 덜하다", "내가 좋아하는 향이다"등 나름의 이유를 붙여 4천원짜리 커피가 맛있다고 설명했다.

▲ 맥도날드 커피 실험 (사진=광고 영상 캡처)

실제로 혀는 두 개의 커피가 똑같은 맛이라고 정보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뇌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롭게 해석했다.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 교육을 통해 뇌는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확한 혀가 보내는 데이터는 무시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보를 선택한 후,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또 다른 정보를 끄집어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내 눈에 보이고 느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내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지만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정당화할 뿐이다."

▲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사진=조해리 기자)

뇌과학과 뇌공학, 인공지능 등을 연구하는 김 교수는 최근 과학계에서 크게 주목하고 있는 '딥 러닝(Deep Learning)'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딥 러닝은 인간의 뇌가 경험을 통해 정보를 인지하고 학습을 하는 과정에 착안하여 탄생한 기계학습 방법이다. 즉,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고 패턴을 찾아내 분류하는 기술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컴퓨터는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의 뇌는 생김새와 크기가 달라도 개와 고양이를 구분할 수 있다. 이처럼 딥 러닝은 많은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해주면 비슷한 것들끼리 분류해서 개를 개로, 고양이를 고양이로 판독하도록 훈련하는 방식이다.

"최근 구글, 페이스북, 바이두와 같은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딥 러닝'의 권위자를 스카우트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학생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물으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답했다. 그러나 20~30년 후 인간은 기계와 일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 교수의 강의를 들으니 지난해 컴퓨터의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 '그녀(Her)'가 현실화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한국과학기술회관(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열린 이번 특강은 매월 휴넷의 골드클래스 회원을 대상으로 열리는 무료 강의로 250여 명이 참석했다. 2003년에 시작해 이명박 전 대통령, 이어령 교수, 고은 시인, 박경철 원장, 유홍준 교수, 배우 최불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휴넷 골드클래스는 비즈니스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평생 멤버십 프로그램으로, 경영 특강과 회원들 간의 네트워크를 지원하며 현재 약 10만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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