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다이버 나탈리아 아브세옌코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흰돌고래들과 친해지기 위해 얼음이 둥둥 뜬 북극해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전 세계에 화제가 됐다. 보통사람들에겐 불가능한 미션을 거뜬히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꾸준히 훈련해온 호흡과 명상 덕분이다.
강연차 한국을 찾은 아브세옌코의 특별한 호흡법을 공개한다.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어느 날 공항에서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도둑맞는 바람에 장비 없이 바다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산소통에 의지해 호흡을 하는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프리다이빙은 온전히 다이버의 호흡조절만으로 물속에 머물러야 한다. 당연히 호흡조절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물속에서 호흡을 오래 참으면 체내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서 숨을 쉬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프리다이버는 물속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저산소증으로 정신을 잃지 않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2006년, 2008년 세계프리다이빙대회 우승자이기도 한 아브세옌코는 호흡과 명상을 통해 물속에 오래 머물면서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그녀가 물속에서 참을 수 있는 최대 호흡 길이는 약 7분 30초. 호흡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훨씬 많은 산소를 소비할 때까지 숨을 참을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까지만 잠수를 하기 때문에 아직 자신의 한계까지 가본 적은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호흡은 프리다이버인 그녀의 생명을 지켜주는 안전장치일 뿐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도구인 셈이다.
다른 호흡을 하면 다른 차원이 열린다
바다를 사랑하고 생물과 교감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가 흰돌고래를 만난 것은 지난해 3월. 러시아 무르만스크 오블라스트 지역 북극해는 희귀종인 흰돌고래 보호지역이다. 그녀는 돌고래들과 교감하기 위해 얼음이 둥둥 뜬 차가운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들었다. 맨몸으로 뛰어든 이유는 단순하다.
돌고래들이 인위적인 다이빙 복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다의 온도는 영하 1.5도. 장비를 갖춘 성인 남성도 5분 이상 버티면 뇌사가 진행되는 온도에서 그녀는 11분 가까이 머물면서 흰돌고래 두 마리와 장난을 치고, 평화롭게 유영하면서 교감을 나눴다.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상은 곧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개봉할 예정이다. 호흡 훈련을 꾸준히 했다지만, 영하의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것이 겁나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물에 다가갔다고 말했다.
“처음 시도할 때는 과연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2분 동안 물속에 있다 나왔을 때 담당의사는 저에게 미친 짓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기에 매일매일 단계를 밟아가며 물속에 머무는 시간을 천천히 늘려갔어요.”
영하의 바다에서 보낸 11분. 보통 사람의 한계를 훌쩍 넘어 바다 속에 머물 수 있었던 비결을 그녀는 주저 없이 ‘호흡’에서 찾는다. 모스크바주립대학에서 국제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다 프리다이빙에 매료돼 현재 모스크바에서 프리다이빙 및 요가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오랜 요가와 명상을 통해 자기만의 호흡법을 개발했다.
일반적으로 프리다이버들은 저산소증을 이겨내기 위해 의학적 지식에 기초한 호흡 훈련을 한다. 그녀처럼 요가와 명상을 통해 내적인 조화를 이루는 호흡법을 추구하는 이는 드물다. 그녀는 프리다이빙에서 신체훈련이 20%라면 정신수양은 80%에 이른다고 강조한다. 그만큼 프리다이빙을 하는 마음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오랜 요가와 명상을 통해 터득한 호흡법에서 그녀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내면의 미소를 짓는 것’이다. ‘내면의 미소를 짓는다’는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이는 물속에 들어설 때 유연하고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며 공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물이 가진 원리와 질서를 편견 없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물과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다이빙은 내적인 조화를 이루는 수행의 한 방편
실은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물속에서 내면의 미소를 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번은 프리다이빙을 하다가 너무 깊이 들어간 나머지 오른쪽 폐에 압착증이 일어나는 부상을 당했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했고, 폐용량도 평소의 50%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녀는 물에 들어갈 때의 마음상태가 문제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내면의 미소를 지으면서 물과 교감하려 하기보다 결과에 집착해 너무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고 깊이 잠수한 탓이었다. 그녀는 “물이 나에게 ‘그건 네가 아니야’라고 교훈을 준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녀는 두 달 반 동안 물속에서 호흡 훈련을 한 끝에 증상을 완전히 치유할 수 있었다. 폐활량은 전보다 더 커졌고 6개월 후 프리다이빙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프리다이빙은 그녀에게 단순한 취미나 기록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다. 신기록을 세우겠다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다이빙을 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둔다. 실제로 그녀는 프리다이빙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한계를 깨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기록에 도전할 때마다 사람들은 저에게 불가능할 거라고 말해요. 하지만 호흡을 통해서 어느 순간 고비를 넘어가면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어떤 차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속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의 내면으로도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을 느껴요.”
그녀는 물속으로 깊이 들어갈 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목소리, 내면 깊숙이 잠재된 장애들을 만나게 된다. 더 깊이 잠수하려면 감정적으로 막혀 있는 부분들, 정서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녀에게 프리다이빙은 요가와 같은 수행의 한 방편이다.
아무 장애 없이 물속으로 깊이 잠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생각을 멈추고 비어 있는 상태가 되는 것. 지금 이 순간, 여기에만 집중하는 것. 그러고 나면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깊고 고요한 물속에서 어떤 압력도, 저항감도 느끼지 않은 채 생명의 무한함 속에 홀로 존재하는 본연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고, 그녀는 꿈꾸듯 말했다.
사진·박여선 Pys0310@hanmail.net
아브세옌코의 호흡 강좌는 브레인엑스포 공식 지정 포털인 브레인월드가 운영하는 생명전자방송국(www.lifeparticletv.kr)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