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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이 젊어지고 있다. 문턱이 낮아지고 넓어졌다. 유연해졌고 재미나졌다.헌책방에 들어서면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할 수도 있다. 막혀 있던 생각을 뚫어줄 책 한 권을 만나고,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헌책방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너, 헌책방 맞아?
인터넷으로 헌책을 사고파는 일이 흔해졌다. 대학교재, 동화책, 베스트셀러 등 분야도 다양하다.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 요즘 같은 세상에 종로, 신촌에는 대규모 중고서점까지 생겼다. 헌책방이 장사가 되다니? 일반 서점도 문을 닫는판에! 더욱이 잘나가던 온·오프라인 헌책방 ‘고구마’는 경기도 화성으로 옮겨가면서 그 규모를 대폭 키웠다.
우리나라 첫 인터넷 헌책방이자 국내 최대 헌책방으로 꼽히는 ‘고구마’의 이범순 사장은 책이라는 한정된 상품으로 사업을 유지해선 헌책방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고구마’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변화에 언론의 관심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월문리. 오고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곳에 세워진 ‘고구마’에서 추억의 북카페, 음악감상실, 세미나실을 이용할 수 있다. 문화 불모지 화성에서 일구는 고구마의 새로운 계획이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 매장을 두고 온라인 판매를 하던 새한서점은 충북으로 내려가 ‘숲 속의 헌책방’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폐교를 활용해 만든 넉넉한 공간에 손님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해놓았다. 이른바 문화관광서점이다.

새 책에 가까운 헌책만이 ‘득템’은 아니다
북스 리브로는 서점 안에 중고서점 코너를 만들었고, 알라딘은 종로에 이어 최근 신촌에 중고서점을 열었다. 몇 달 만에 찾아가면 정든 가게가 사라지고 처음 보는 가게가 생기는 시내 중심가,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장소에 중고서점이란 큰 글자가 이색적이다. 대중들이 선호하는 소설, 외국 문학, 자기계발서들이 매대를 꽉 채우고 있다.
중고 동화책 코너도 마련되었다. 보물찾기하듯 읽고 싶은 책을 찾다 보면 ‘이거 헌책 맞아?’ 라고 갸우뚱거리게 될 정도의 신간이 많고 책 상태도 상당히 양호하다. 그러나 헌책의 가치를 얼마나 새 책에 가까운가에 둔다면 서운한 일. 고구마 이범순 사장은 말한다.
“헌책방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고서 희귀본의 발굴 및 평가 작업, 절판본의 확보 노력 등이죠. 이런 기능은 시대가 빠르게 변해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역사를 지키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일제시대 때 헌책방이 있었다면 우리의 소중한 책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30년간 헌책 속에 파묻혀 살아온 그는 우리나라 역사를 알고 그 정신을 지키는 길을 헌책에서 보았다. 한편 대기업의 헌책방 진출을 두고 작은 헌책방들의 운영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헌책 유통이 더욱 활발해진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헌책방에 가면 즐거운 일이 생긴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평범한 헌책방이 아니다. 동네 산책을 나왔다 무심코 들러 차 한 잔 마시며 책 보기 좋은 곳, 전시회와 공연을 볼 수도 있는 동네 사랑방을 자청한다. 또 재활용 수익금으로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가게’는 최근 이태원에 헌책방 7호점을 열었다. 자원의 재활용 측면에서도 헌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곳에서도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위탁판매가 활발히 이뤄지는 종로구 ‘가가린’은 회원제로 운영되며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신촌이 헌책방이 모이는 거리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것은 몇 년 안팎의 일이다. 이미 자리 잡은 30년 된 ‘공씨책방’과 ‘정은서점’, ‘숨어 있는 책’ 외에 일본 책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북오프’가 들어섰고 ‘도토리’, ‘글벗’, ‘알라딘’도 자리를 잡았다. 고물가에 책값을 아끼려는 대학생들의 발걸음이 잦아진 것도 한 이유로 보인다.
그렇다고 헌책만 사보는 것도 아쉽다. 새 책 없이는 헌책도 없기 때문이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을 쓴 최종규 씨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헌책방에 가더라도 반갑고 살뜰한 책이 넘실넘실 넘치려면 무엇보다 우리들이 좋은 책을 ‘새 책’으로 꾸준히 즐기고 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애써 읽은 좋은 책에서 얻은 슬기와 지식’을 세상에 널리 나누고 펼치면서 살아야 해요.”
요즘은 새 책을 사서 읽은 후 그 책을 팔아 다시 책을 사는 순환형 독서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돌고 도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책도 돌고 돌아야 제 역할을 다한다.
글·김보희 kakai23@hanmail.net | 사진·김성용
사진 제공·화성시문화재단, 신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