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시대 생존기술은 '회화적 책 읽기 방법'이 기본

정보 시대 생존기술은 '회화적 책 읽기 방법'이 기본

무조건 많이 읽기에서 뇌활용 독서법으로 ⑥

일본 수상을 지낸 다나카 가구에이, 일본 공산당,  임사(臨死)체험, 뇌사, 원숭이학, 우주, 뇌과학 동향, 전위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의 최첨단을 걷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희대의 독서가로 일본에서 평판이 높다. 다치바나는 1940년 태어나 도쿄대학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하고 문예춘춘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2년 간 일하다가 퇴사하고 도쿄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퇴사한 이유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 놓고 읽을 수 없어서였다.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소재론을 집약한 책이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1.)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하고 먼저 부끄러웠다. 모든 관련 자료를 철저하게 읽고 취재에 임하는 다치바나의 모습에 같은 기자로서 불성실한 내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도 챙겨보지 않고 만나 대충 서너가지 물어보고 사부자기 기사를 쓰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또 어느 한 분야에서도 전문가의 반열과는 거리가 먼 반거충이인데도 전문가인양 했던 게 아프게 다가왔다. 반성을 하면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런 감정과는 별도로 하고  이 책은 '독서론'으로 아주 도움이 되는 책이다. 나중에 후배 기자들에게 기자의 자세, 독서의 중요성,  독서법을 안내하는 좋은 책으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권하곤 했다. 

다치바나는 취재하고 읽고 집필하는 데 모든 시간을 쏟는데 테마 하나를 잡으면 500권 정도를 읽는다. 그는 왜 이렇게 독서를 하는가? 간단하다. "그저 알고 싶어서요." 그는 스스로 지적 욕구가 필요이상으로  강한 이상 지적 욕구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40여권이 넘는 저서를 펴냈고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하여 최첨단의 지식을 소개한다. 그는 전문가를 인터뷰하기 전에 그가 펴낸 책을 모두 읽을 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 서적, 논문을 맹렬하게 읽고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왜 그렇게 하는가?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인터뷰를 통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불문과 졸업 철학과 중퇴라는 학력으로 뇌과학자를 인터뷰하여 최첨단 뇌연구 동향을 제대로 쓰려면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런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문외한이 최첨단 분야를 공부하여 그 분야 전문가와 대등하게 때로는 능가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치바나가 제시하는 책을 고르는 방법과 책을 읽는 방법에 그 해법이 있다.

먼저 서점가로 간다. 거금을 들고. 책은 한꺼번에 구입해 놓다는 것이 다치바나의 책 구매 버릇이다. 만만찮은 돈을 지불하고 나면 원금이라도 회수하고 싶어 공부를 계속하게 된다. 서점가에 가서 할 일ㅡ배우고 싶은 분야와 관련된 신간 서적을 하나도 빠짐없이 살펴보는 것이다. 적어도 세 군데 정도는 돌아보아야 한다. 일본 도쿄에는 서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니 서점 순례가 가능하다.

책은 건축물, 전체상을 먼저 파악하라

다치바나는 책을 읽을 때 전체의 모습, 전체상(全體像)의 파악을 강조한다.  진열대에 가서 책 제목 하나하나 읽어가면 대략 그 분야의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체상이 그려진다. 그 책 중에서 입문서를 하나하나 펼쳐보면서 내용을 훑어본다. 책을 훑어볼 때는 머리말, 맺음말, 목차, 판권장 정도는 반드시 보아야 한다. 머리말, 맺음말을 통해 저자가 어떤 의도로 그 책을 썼는지 알 수 있다. 번역서는 역자 서문을 통해 그 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엿볼 수 있다. 머리말과 맺음말을 잘 읽어보면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이 된다. 판권장에 판을 거듭하여 발행된 표시가 있다면 그 책은 정평이 난 교과서다. 다음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참고문헌 안내와 색인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 명성을 보고 책을 골랐다가 실망한 적이 있다. 다치바나가 말한 것과 같이 책을 골랐다면 그런 일이 적을게다.

이런 입문서 세 권 정도 골라 구입하는 것이 좋다. 물론 세 권 모두 경향이 다른 책을 구입해야 한다. 입문서 한 권 겨우 읽고 다 아는 것처럼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최소한 3권이다.  입문서는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한 책을 여러 권 구입하는 것이 좋고 이렇게 구입한 책들은 쉬지 않고 연달아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문서를 선택하는 방법은 양질의 이런 저런 내용을 두루 모아 정리해 놓은 것을 고르는 일이다. 다음은 각자의 입장을 정리해놓은 고전적인 입문서를 찾아 구입한다. 이때 목차를 잘 보고 가끔 다른 책들과 전혀 다른 구성을 한 목차로 된 책을 고른다.

구입한 입문서의 참고문헌을 대충 서서 통독한다. 그러면 거의 모든 입문서에 참고문헌으로 나와 있는 그 분야의 명저가 어떤 것인지 몇 가지 정도는 알 수 있게 된다. 이 명저도 구입 목록에 추가한다.

다음으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 학문의 역사, 학설사, 사상사이다. 그 학문 분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가 이 물음은 어떤 학문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더라도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다.  하나의 학문 세계로 들어갈 때 우선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 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밑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머리 속에 그리는 일이다. 학문의 역사를 아는 것이 그 지름길이다. 이를 가장 잘 가르쳐 주는 책이 바로 학문사, 학설사이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각론을 설명한 책이다. 가장 흥미를 끄는 테마를 다룬 책을 펼쳐 내용을 살펴본 뒤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 책을 한 권 찾아 놓는다. 이밖에 그 장르의 전문 사전, 연감 종류를 한 권 정도 갖춰 놓으면 좋다.

개설서→ 입문서 →전문서 순으로 읽는다

책 구입이 끝나면 이제 읽는 일만 남는다. 우선 가벼운 개설서부터 읽는다. 교과서적 입문서를 읽는다. 한 권을 읽고 나면 대략 윤곽이 잡히면서 두 권째부터는 읽기가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정독할 필요는 없다. 메모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입문서는 한 권을 정독하기보다는 입문서 다섯 권을 가볍게 읽어치우는 편이 낫다. 메모하지 않아도 중요한 부분은 대부분 다른 책에서도 반복하여 언급하므로 자연스럽게 머리 속으로 들어온다. 대신 밑줄을 치거나 표시를 해두는 방법이 더 좋다. 그 다음에는 색인을 참고하면 된다.

읽다보면 시시한 책이 있다. 그런 책은 당장 읽기를 그만두라. 시간 낭비, 머리를 헛되이 써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쉽고 가벼운 책에서 조금씩 어려운 책으로 들어가 읽기 시작하면 피로감이 몰려온다. 이때는 딱딱하지 않은 가벼운 읽을거리에 손을 뻗어본다. 이렇게 머리 속 긴장을 풀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

이런 방법으로 책상 위에 쌓아놓은 책을 하나하나 정복해 간다. 책 읽은 일에만 몰두하여 한 달 정도 지나면 그 학문 분야의 대체적인 개요를 머리 속에 그릴 수 있다. 이보다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

다치바나는 일반 교양을 위한 독서와 관련하여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을 제시했다. 간단히 요약한다.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보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7. 책을 읽는 도중 메모하지 말라. 메모를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관련 서적 다섯 권을 읽을 수가 있다.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11. '아니, 어떻게?'라고 생각하는 부분(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보라.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81~83쪽)

일반 교양을 위한 독서라면 14가지 독서법이 유용하리라. 그런데 문외한이 단시간에 전문가 반열에 오르기까지 다치바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가 말하는 '회화적 책읽기'가 비결이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기 때문에 신호를 연속적으로 들음으러써 비로소 의미 파악이 가능해진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로 책을 읽는다는것은 연속적으로 문자 신호를 따라감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회화는 공간예술이므로 그림을 눈 앞에 놓고 대략 전체상을 파악하면 된다.

키워드 조합과 논리 흐름으로 책 전체 구조를 파악하라

책을 읽는 데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방법이 있고 그림을 보듯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음악적 책읽기, 후자는 회화적 책읽기이다. 다치바나는 회화적 책읽기를 통해 속독을 한다.  다치바나는 책은 단락 하나하나를 벽돌로 삼아 쌓아올린 건축물과 같은 구조로 본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지적 기술의 첫걸음은 그 책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다.

이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키워드를 기호로 연결한 도표를 만들어 전체 구조를 도표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책도 한 장의 도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키워드 조합과 논리의 흐름이 중요하다. 책 전체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그 흐름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장(章)단위로 전체 흐름을 파악한 뒤 절(節) 단위로 좀서 세세하게 흐름을 파악해나간다.  속독을 한다면 문장 하나하나를 읽지 말고 단란 단위로 단락의 첫 문장만 차례로 읽는 것이다. 장이나 절의 작은 표제만 잘 읽어 두고 도표도 어느 정도 훑어본다면 10분에서 30분이면 충분히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쪽씩 모든 쪽을 대충이라도 한 번 훑어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눈이 머문' 곳이 중요

대략적인 책의 흐름을 파악했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다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골라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단락을 단위로 좀더 세밀하게 읽어본다.  이때는 '자연스럽게 눈이 머문'곳이 중요하다. 눈은 정확히 중요한 곳에 머문다. 이단계에서 단락 단위로 키워드가 나타나는 부분을 중심으로 읽는다. 더욱 세세한 것은 세 번째 다시 읽는 방법도 있다.  읽기 어려운 책을 전부 읽어보겠다고 몇 번이고 도전했다가 도중에 그만두는 것보다는 몇 번이고 가볍게, 대략적으로나마 반복해서 읽는 방법이 결국은 그 책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읽을 때도 가볍게 읽겠다면 단락과 단락 사이를 잇는 접속사, 접속구에 주의를 기울여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수시로 찾아가면서 더욱 세세하게 읽어나가는 것을 반복한다. 

대략적인 '파악'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세세한 것을 파악해가는 방법이다. 이것이 회화적인 책읽기 방법이다.

회화적 책 읽기가 음악적 책 읽기와 비교하여 갖는 큰 차이점은 책 읽기를 통한 깊이의 자유자재성에 있다. 요컨대 회화적 책 읽기의 본질은 전체상을 항상 눈여겨보면서 책 읽기의 깊이, 책 읽기의 템포를 자유자재로 바꾸어 가는 점에 있다. 다치바나는 전체적인 책읽기 구조 자체는 회화적 책 읽기로 진행하고 음악적인 책읽기(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 읽는 책 읽기)는 깊이 있는 책 읽기가 필요한 부분만으로 한정시켜서 한다.

이를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다. 먼저 책의 전체상을 파악한다. 머리말과 맺음말을 확실하게 읽고 목차를 구조적으로 정확히 파악한 다음 책을 대충 넘기며 훑어보면 개략적인 전체상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음악적인 책 읽기에 알맞는 책이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  아니라면 '전체적으로 회화적 책 읽기, 부분적으로 음악적 책 읽기'라는 새로운 구조로 간다.

대략적으로 개요를 파악하고 조금씩 세세하게 읽으라

다치바나는 강조한다. '전부, 처음부터 차분하게 읽는' 방식은 절대로 시도할 필요가 없는 무모한 짓이라고. 그렇게 하면 꼭 읽어야 할 책을 만나 보지도 못한 채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진정한 가치가 있는 책을 만날 때까지 회화적 책 읽기 방식의 속독을 통해 선별을 거듭해가야 한다고 다치바나는 충고한다.

이 회화적 책 읽기는 인터넷 시대에 더욱 필요하다. 인터넷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정보 공간 속에서 인간 개개인이 정보와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런 시대를 맞아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보 시대 인간상은 끊임없이 정보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정보 신진대사체이다. 인간을 정보 신진대사체로 보는 경우 풍요로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건은 정보 시스템의 효율성을 늘리는 것이다.  입력하고 출력하는 정보의 흐름(시스템의 효율성)을 확장시켜 그것을 계속 선별하고 필요한 정보를 하나하나 찾아내어 이용함으로써 자신을 정보체로서 높여 정보 신진대사량, 정보 이용량이 많은 고도의 정보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살아가는 데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정보 사회 생존기술은 재빠른 정보 선별 기술과 정보 섭취 기술이다. 그 기본이 바로 속독 기술, 즉 '회화적 책 읽기'이다. 정보 신진대사체로서 나는 고도의 정보인간인가? 입력도 없고 출력도 없는지, 입력은 많은 데 허섭스레기라서 출력이 영 시원치 않은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글. 정유철 선임기자 npns@naver.com
전 전남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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