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적생활의 방법》, 와타나베 쇼이치 지음, 김욱 옮김, (주)세경멀티뱅크, 1998.ㅡ 저자가 일본 극우쪽에 속하는 인물이라 꺼림직한 점이 없지 않다. 와타나베 쇼이치 교수의 사상을 접어두면 『지적생활의 방법』은 독서하는 데 여러가지도 도움을 준다. 1976년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 후 오늘날까지도 판을 거듭하여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이며 고전(古典)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지적 생활'이란 어떻게 하면 내적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넓은 의미에서 학문의 생활화를 말한다. 앞으로는 누구나 지적 생활을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고 이 책은 이를 위한 안내서로 어울린다. 이 책에서는 '지적 생활'의 태도, 독서 방법, 책 구입의 필요서, 카드 활용법, 도서관 활용법, 자기만의 도서관 만들기, 수면, 자투리 시간 활용, 음식, 음주, 산책, 결혼 생활 등 지적 생활과 관련하여 거의 모든 것을 저자의 체험과 임뮤누엘 칸트, 레오 톨스토이, 괴테, 월터 스콧, 데이비드 흄과 같은 유명인사의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지적 생활은 기본이 책을 읽는 것ㅡ독서, 독서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리하기로 한다. 우리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책을 읽지만 내적인 충만감이나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도 읽는 일도 많다. 독서의 즐거움을 내적인 충만감, 희열을 느낄 때 커진다. 지적 생활에는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 매우 중요하다.
지적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되풀이하여 읽는 것이다. "책을 두세 번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은 밥을 되씹어서 먹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34쪽).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은 "책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되풀이해 읽는 것이므로, 재미있게 서술된 방법에 매료돼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는 독서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명작은 내용을 알아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예를 들어 '삼국지'같은 소설은 서너 번 읽었고, 황석영의 '장길산'도 네다섯 번 읽었다. 언제든지 읽고 싶을 때 꺼내보게 지금도 이런 책들은 책장을 한 곳에 꽂아두었다.
고전이란 흔히 '시대를 초월해서 길이 남게 되는 책'이다. 이 고전을 스스로 선정해 볼 수 있다. 지적 생활을 하는 데는 자기만의 고전이 꼭 있어야 한다. 나만의 고전을 어떻게 뽑는가.
"2, 3년 전에 읽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책들을 다시 한 번 모조리 읽어보도록 한다. 그 중에서 여전히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책 몇 권을 골라내는 것인데, 이렇게 골라낸 책을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반복해서 읽도록 하라. 이렇게 해서 당신의 '고전'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당신의 독서 취미는 예민해진다."(39~40쪽)
'고전'이 없다면 아무리 책을 광범하게, 그리고 많이 읽는다 해도 진정한 독서가가 아니다. 누구나 애독서 한두 권은 있는 법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겠다. 애독서가 없다면 지금 시작하면 된다. 이미 읽었던 책 가운데 다시 읽어보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두고두고 볼 책을 골라보라.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어라
자기만의 '고전'을 만들려면 책을 구입해야 한다. 저자는 자기 돈으로 책을 사야 한다고 강조한다. 돈을 내고 음식을 사먹을 때는 맛이 좋다거나 나쁘다든가 하는 판단을 철저하게 내리는 것처럼 자기 돈을 들인다는 것이 판단력을 확실하게 향상시키기 때문이란다. 수입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때그때 자기 돈으로 책을 조금씩 사들여 자기 주위에 책을 쌓아가는 것은 지적 생활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렇게 나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요즘처럼 책이 쏟아지는 시대에 좋은 책을 만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정보의 홍수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기 쉽지 않은 것처럼. 서점에서 잠시 서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그 책이 좋고 나쁨의 진가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것을 미리 알 수 있게 '직감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읽어보기를 잘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 책을 언제나 자기 주위에 두고 때때로 책장을 훌훌 넘기며 읽어보도록 하는 것이다.
책은 읽고 싶을 때 읽어야 한다. "어떤 책이 문득 읽고 싶어졌을 때 바로 그 책이 자기 곁에 없어서 읽을 수 없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튿날, 또 다음 기회에 도서관 등에서 빌려 보려고 했을 때는 이미 그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감흥을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을 구입하면 좋은 점이 내 마음대로 책에 표시를 하거나 느낌을 적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줄을 치는 것은 기본, 중요한 낱말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간단하게 감상을 써넣을 수 있다. 이렇게 마지막 쪽까지 읽고나면 '정복감'이나 완전히 내것이 됐다는 '충만감'을 넘치게 된다. 이런 습관에 익숙해지면 남에게 빌려서 보면 완전히 독파하고 나서도 완전히 내것이 덜 된 느낌을 갖는다.
능동적인 지적 생활자라면 나만의 장서를 갖출 일이다. 수동적인 지적 생활이란 주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눈 것 등을 말한다. 이 경우 책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된다. 능동적인 지적 생활을 하는 이는 책이나 논문을 쓰거나, 신문, 집지 등 매스미디어에 의견을 종종 발표하는 사람을 말한다. 책 한 권을 쓰려면 50배, 100배의 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장서가 풍부하면 은퇴하고도 지적 생활 가능
왜 그토록 책이 필요한가. 능동적으로 지적 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애독하는 것과 달리 참조하거나 또는 알고 있어야 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장서ㅡ소장하는 자료가 많다면 그만큼 지적 생활을 오래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비전문가라도 책을 모으는 방법을 연구하면 전문가가 쓴 것에 뒤지지 않을 만한 책을 쓸 수 있다. 저자는 '독일참모본부'라는 책을 펴냄으로써 이를 증명해보였다. 자기 집에 도서관을 서재 외에 갖게 된다면 그것은 지적 생활의 향상을 의미하게 된다. 백과사전이 없던 시대에 혼자서만 백과사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적으로 단연코 유리한 입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개인 장서를 소유하지 못하면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 알만 하지 않는가.
저자가 영국에 체류중에 경험한 일이다. 60세 이상 되는 학자는 눈매와 태도가 부드러웠으며 대화할 때 늘 미소가 그치지 않았고 얘기에 유머가 있었다. 그보다 젊은 55세 이하 교수들은 눈매가 매서웠다. 유머가 없고 고지식했다. 영국인 교수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도서관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던 세대와 그렇게 하지 못한 세대와의 차이에서 빚어진 세대차라고 저자는 해석했다. 젊었을 때부터 연구용 기본 도서라든가 애독용 도서 등을 한 권씩 사모으는 과정 자체가 지적 생활이 됨을 알 수 있다. 자기 돈을 들여 책을 사는 동안에 공공 도서관에서 볼 수 없는 개성이 풍부한 조그마한 도서관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가령 작더라도 라이브러리가 자기 연령과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는 실감을 사생활 속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노교수들이 보여주는, 연제나 미소를 머금은 눈길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저자는 말한다.
신문이나 잡지를 두고두고 되풀이하여 읽는 일은 드물다. 책은 읽고 또 다시 읽는다. 곁에 두고 늘 읽어보는 책이 얼마나 많느냐에 따라 지적 생활이 달라진다. 저자는 강조한다ㅡ학자들 중에는 정년 후에 크게 뻗어나는 사람과 정년이 되면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이 있다. 자기 라이브러리가 없으면 정년으로 대학 구내를 떠나면서부터는 무엇보다 조사할 일을 못하게 된다. 나이 70, 80넘어서도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장서, 자기만의 라이브러리를 충분히 갖춘 덕분이다.
학자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독서 삼매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자주 책을 사모은다.
글. 정유철 선임기자 npns@naver.com
전 전남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