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족이나 친구 대신 인공지능(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2026년 3월 발표한 ‘AI를 활용한 정신건강 정책 현황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2025년 11월 수도권에 거주하는 15~49세 1,0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8%가 AI를 활용한 정신건강 상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5~19세 55%, 20~29세 46%로 젊은 층의 이용률이 높았다. 응답자들은 AI 상담의 장점으로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와 ‘주변의 부정적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를 꼽았다. 이는 AI가 정보 검색이나 업무 보조를 넘어, 인간의 정서와 판단 영역까지 빠르게 들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AI는 이제 정보를 찾거나 업무를 처리하는 도구를 넘어 인간의 감정과 고민을 나누는 영역으로까지 들어오고 있다. 실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7%가 정서적 지원을 위해 AI를 이용해 본 경험과 상관없이 앞으로 AI로 고민 상담을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경기연구원은 AI가 정신건강 서비스에 접근하는 심리적 문턱을 낮출 수 있지만, 최종 판단과 돌봄은 사람이 담당하는 ‘하이브리드 케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질문 하나를 AI에게 던지면 몇 초 만에 수십 개의 답이 돌아오는 시대다.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능력에서도 인간이 기계와 경쟁하기 어려운 영역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더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능력을 길러야 할까.
《브레인 리부트》는 그 답을 ‘감각하고, 몰입하고, 성찰하고, 사유하고, 연결하고, 공생하는 뇌’에서 찾는다. 책은 이를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여섯 가지 뇌 역량으로 제시한다.
쏟아지는 자극 속에서 ‘나’를 되찾는 힘
감각하는 뇌 & 몰입하는 뇌
스마트폰과 알고리즘은 우리의 시선을 끊임없이 외부로 끌어간다. 그래서 먼저 필요한 것은 내 몸의 감각을 되찾고, 수많은 자극 가운데 내가 선택한 대상에 주의를 머물게 하는 능력이다.
‘감각하는 뇌’는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정신과 전문의 강도형 원장은 감정을 단순한 생각이나 마음의 반응이 아니라 몸과 뇌가 함께 만들어내는 리듬으로 설명한다. 그는 장, 심장, 피부, 호흡 등 몸의 내부감각이 감정 형성에 중요한 신호를 제공하며,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감정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특히 명상을 ‘생각을 없애는 행위’라기보다 호흡과 체온, 맥박, 자세 등 몸의 리듬을 감지하는 훈련으로 바라본다.
이 관점은 AI 시대에 더욱 의미가 있다. 정보 처리와 계산 같은 영역은 갈수록 AI가 대신할 수 있지만, 인간이 자신의 몸을 통해 느끼고 경험하는 감각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강 원장 역시 초지능 시대에는 더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보다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감지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감정은 뇌가 아닌 몸이 보내는 신호 (기사 보러가기 클릭)
몸의 감각을 되찾았다면 다음은 주의력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일이다. ‘몰입하는 뇌’는 무엇을 볼 것인지, 무엇에 정신을 쏟을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이다.
한국뇌과학연구원 양현정 부원장은 잡념이 많고 마음이 방랑하는 상태에서는 뇌의 여러 영역이 산발적으로 활성화되는 반면,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면 불필요한 활성은 줄고 주의집중과 관련된 영역이 선택적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은 실제로는 주의를 빠르게 전환하는 과정에 가깝고, 반복적인 전환은 정보 처리 속도와 수행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잡념을 없애고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 (기사 보러가기 클릭)
결국 AI 시대의 첫 번째 인간 능력은 더 많은 정보를 입력받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주의를 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답이 넘치는 시대, 나만의 질문과 방향을 찾는 힘
성찰하는 뇌 & 사유하는 뇌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I는 답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을 던질지, 그 답을 어떻게 해석할지, 그리고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성찰하는 뇌’는 바깥으로 향했던 시선을 다시 자신에게 돌리는 힘이다. 의식성장 조력자 알렉스 룽구는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가 곧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감정과 내적 저항을 바라보고 삶의 중심을 스스로 세워가는 데 있다. 그는 의식이 성장할수록 개인적인 감정이나 문제에 덜 휩쓸리고,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삶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완벽하게 행복할까? (기사 보러가기 클릭)
성찰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묻는 힘이라면, 사유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능력이다.
우리는 검색창에 몇 글자만 입력해도 수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정보가 많아졌다고 해서 반드시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니다. 전은애 수석기자는 영화 <돈 룩 업>을 통해 수많은 정보와 자극 속에서 정작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를 놓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짚었다. 정보의 가치보다 조회수와 관심을 끄는 정도가 중요해지고,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우리의 주의를 차지하는 환경에서는 정보를 찾는 능력 못지않게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오래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검색만 하고 사색은 하지 않는 시대의 딜레마 (기사 보러가기 클릭)
《브레인 리부트》 역시 ‘검색만 하고 사색은 하지 않는 시대의 딜레마’를 사유하는 뇌의 핵심 문제로 제시한다.
AI가 수많은 답을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답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어떤 답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삶으로 이어질지를 판단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앞서 경기연구원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77%가 향후 AI를 통해 고민 상담을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AI가 인간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다면, 오히려 ‘그 조언을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판단하는 인간의 성찰과 사유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나’를 넘어 ‘우리’로 함께 살아가는 힘
연결하는 뇌 & 공생하는 뇌
인간의 뇌는 개인의 효율과 성취를 높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브레인 리부트》가 제시하는 마지막 두 단계는 ‘함께 살아가는 뇌’로의 확장이다.
‘연결하는 뇌’의 중심에는 공감이 있다. 양현정 부원장은 사람이 직접 통증을 경험할 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볼 때도 전방대상피질과 전방뇌섬엽 등 일부 뇌 영역이 함께 활성화한다는 연구들을 소개한다. 인간의 뇌에는 타인의 상태를 함께 느끼고 반응하게 하는 공감의 신경적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감은 때로 고통을 동반한다.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휩쓸리면 오히려 소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공감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상태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경계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연결은 단순히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공감에 따르는 고통을 줄이는 방법 (기사 보러가기 클릭)
그리고 공감이 개인 간 관계를 넘어 공동체의 문제로 확장될 때 ‘공생하는 뇌’로 이어진다. 공생지능은 타인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능력으로, 개인의 생존과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하는 지능이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수많은 시민이 자원봉사에 나섰던 사례처럼 경제적 보상이나 개인적 이익을 넘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에 이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 자체가 인간이 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그것을 경쟁과 배제에 사용할 것인지, 협력과 공생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는 도구인 만큼, 그 지능을 사용하는 인간의 사고 구조가 함께 성장하지 않는다면 기술의 진보만으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감각과 몰입이 ‘나’를 되찾는 능력이고, 성찰과 사유가 ‘나의 방향’을 정하는 능력이라면, 연결과 공생은 그 나를 타인과 세계로 확장하는 능력이다. ▶인간을 위한 지능, 공생지능 (기사 보러가기 클릭)
감각하고 몰입하는 것에서 출발한 뇌의 여정은 자신을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사유하는 단계를 지나 타인과 연결되고, 마침내 함께 살아가는 공생으로 향한다. 여섯 가지 뇌는 결국 별개의 능력이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AI가 인간보다 많은 것을 알고 더 빠르게 답하는 시대, 인간의 가치는 어쩌면 답을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에 있지 않을지 모른다. 자신의 몸과 감정을 느끼고, 무엇에 집중할지 선택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묻고,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고, 그 능력을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 《브레인 리부트》가 말하는 인간다움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책이 궁극적인 뇌활용의 목표를 단순한 성과나 효율이 아닌 ‘인간다움’에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전은애 수석기자 hspmaker@gmail.com
[기획] AI시대 인간의 가치를 묻다 (클릭)
— AI시대 '브레인 리부트'가 필요한 이유
[1편] 두 권의 《브레인 리부트》가 제안하는 서로 다른 뇌 활용법 (클릭)
— 뇌는 왜 다시 켜야 하는가
[2편]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여섯 가지 뇌
—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의 가치
[3편] 인공지능의 시대, '뇌활용'
— 컴퓨터에 운영체제가 있듯, 뇌에도 운영체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