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일 동안의 일기 쓰기

천 일 동안의 일기 쓰기

* 뇌와 마음

브레인 23호
2010년 12월 23일 (목)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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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2일, 천 일 동안의 일기 쓰기가 비로소 끝났다. 천 일 동안 한 가지를 꾸준히 하면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뇌 속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었을 뿐이다.


일기의 진화

내가 천 일 동안 일기 쓰기를 시작한 건 2007년에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그녀는 한복 가게에 하도 손님이 없어서 굶어 죽든지 승부를 보든지 사단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천일기도를 시작했다.

심기일전해서 면벽 수행을 하는데, 명상이 되기보다는 되레 오만 가지 잡념만 일어나고 졸리고 따분하고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명상 대신 노동을 기도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천 일 동안 기도하듯 노동을 하고 나니 눈에 보이는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읽고 자극을 받았다. 21일 기도나 백일 수련, 3천 배 수련 같은 건 해봤지만 천일기도는 생각도 못해봤다. 천 일 동안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면 내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충분히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킬 만한 주제였다.  

처음에 썼던 일기는 이전에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코티지치즈’다. 내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모든 과제를 코티지치즈 목록에 집어넣고 하나하나 실천해나가는 짧은 기록. 그런데 1년 정도 코티지치즈를 작성하다 보니까 슬럼프가 찾아왔다. 스펙 쌓기에 치중한 코티지치즈가 더 이상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지 못했던 탓이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내 일기는 ‘도파민 리스트’로 변모되었다. 도파민 리스트는 안 해봤던 새로운 일을 해야 뇌에서 쾌감을 일으키는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토대로, 가능한 한 새롭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보자는 실천을 담은 기록이다.

해보지 않은 일을 일부러 작정해서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다니면서 고정관념과 목표에 짓눌려 있던 내 뇌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작업, 말하자면 뇌 유연화 하기 과정이었다.

1년 정도 도파민 리스트를 신나게 실행하고 나서 내 일기는 ‘자존감 일기’로 탈바꿈했다. 자존감은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감각이다. 심리학자들은 여덟 살 이전에 부모에게 전폭적인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자라야 자존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말한다.

자존감을 갖지 못하고 성인이 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부모가 되어 자신의 자아를 조건 없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내 뇌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

자존감 일기를 쓰면서 그동안 나 자신을 얽매고 있던 좋지 않은 기억들,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꼈던 순간들, 쓰라린 실패의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나는 내가 정말 좋다’라고 스스로에게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존감 일기는 나의 뇌를 정화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자존감 일기 이후에 내 일기는 ‘스토리 일기’로 진화했다. 최근에 읽은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라는 책을 보고 착안한 것이다. 요즘 소위 ‘88만원 세대’는 어떻게든 스펙을 쌓아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저자 김정태는 이런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변별력이 되지 못하는 스펙 쌓기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가라고 조언한다.

스토리 일기는 성공한 경험(스펙)뿐 아니라 개인의 실패 경험까지 껴안는다는 점에서 내 뇌에 또 한 번의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신기하게도, 스토리 일기를 쓰면서 내 뇌에서 거대한 정보 통합 현상이 일어났다.

그동안 나는 실패를 성공에 이르는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쯤으로 여겼지 그것을 온전히 즐기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스토리 일기를 쓰면서 비로소 실패야말로 나의 정체성을 간파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내 뇌에서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내적 폭발이 일어났다. 성공 기억과 실패 기억들이 뇌 속의 잠재의식을 건드리고 뒤흔들더니 저절로 가라앉고 솟아나 장대한 산맥과 역동적인 바다를 이루는 경험!

스토리 일기를 쓰면서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망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애써 외면해왔던 나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임으로써 나 자신을 좀 더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천 일 동안 내가 한 것은 아주 사소한, 일기 쓰기의 업그레이드뿐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일기 쓰기가 뇌 감각 깨우기-뇌 유연화 하기-뇌 정화하기-뇌 통합하기-뇌 주인되기에 이르는 나만의 맞춤식 뇌교육 트레이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정보처리 기관으로서 내 뇌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작업. 이제 뇌가 반할 만한 목표를 가지고 그 시스템을 쌩쌩 돌리는 일만 남은 건가.

글·전채연 ccyy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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