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 지 10년이란 기간 동안 글로벌 셰프를 꿈꾸던 한 한국인은 중국 톈진 쉐라톤그랜드호텔 총주방장을 거쳐 ‘세계 유일의 7성급 호텔’로 불리는 두바이 버즈 알 아랍에서 4백여 명의 요리사를 지휘하는 수석총괄조리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처럼 화려한 성취를 뒤로한 채, 또 하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온 에드워드 권 셰프. (주)휴넷 골드명사 특강에서 진행한 ‘열정을 요리하다’라는 주제 강연은 그가 자신의 일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는지를 느끼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열정만큼 실천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나보고 성공했다고 얘기하는데, 난 가야 할 길이 멀다. 왜 나를 모델로 삼느냐고 반문한다. 난 항상 함께하는 요리사들에게 얘기한다. 열정 없는 사람은 없다고. 열정은 누구나 있지만 그 열정이 불타오를 수 있도록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의 문제다. 노력해도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다시 얘기한다. 더 노력하라고.”
에드워드 권은 2000년에 결혼하자마자 달랑 5백 달러를 들고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5년 동안 머물면서 찍은 사진이 겨우 두 장밖에 안 될 만큼 미친 듯이 일했고, 매일 퇴근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이른바 ‘생식 훈련’을 하며 온전히 뇌에 그 맛을 기억시켰다고 한다. 6개월쯤 하고 나서 수많은 식재료와 가공식품에 대해 대략 지식을 갖춘 후에는, 수입의 70%를 온전히 ‘먹는 데’ 탕진했다고.
그러다 부족한 형편에 일일이 다 먹어볼 수 없어 2년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서점에 들러 요리책을 섭렵했다고 한다. 두바이로 이사할 때 6백여 권이나 되는 요리책 때문에 항공 이사 견적이 1천만 원 이상 나와 호텔 담당자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 일화를 들으면 그의 열정에 대한 노력의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하루 16시간씩 호텔 주방에서 사는 그를 동료와 상사들은 ‘독종’이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그 일을 계기로 한국인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과도한 정보를 뇌에 지속·반복적으로 입력해야 하는데, 에드워드 권 셰프가 미국에서 보낸 그 시간은 맛과 음식에 관한 뇌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의 형성을 강력하게 만들어준 신경망의 성장기였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창의성이란 그런 시기를 거친 이후에 일어나는데, 고된 시간이었던 만큼 든든한 창조의 버팀목을 형성한 셈이다.
자신의 일에 최고 가치를 부여한다
“외국에서 10년을 거치면서, 특히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에는 세계적인 명사들이 숱하게 찾아왔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 느낀 공통점은 그들이 요리와 셰프에 대해 존경과 예의를 갖춘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셰프는 아티스트였다.”
그는 우리에게 묻고 싶다고 한다. 만약 성인이 된 당신의 딸이 요리사를 사윗감으로 데려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하루에 70~80통씩 전자 우편으로 편지를 받는데, 이 중에는 요리사의 꿈을 품고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의 사연이 특히 많다고 한다. 간혹 그들의 부모에게서 편지가 오기도 하는데, 그들에게 요리와 요리사에 대한 직업적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묻고 싶단다.
“무전기같이 커다란 휴대 전화기를 들고 다니던 시절을 지나 이제 손 안의 휴대폰으로 텔레비전 방송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의 먹을거리 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양한 우리 음식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본다. 서양 음식은 가치 있게 보면서 한국 음식은 무조건 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지 않은가. 한식의 세계화를 이루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음식을 존중하고, 높은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강연 내내 든 생각은 그가 자신의 직업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치 부여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나아가 당당한 신념을 형성하게 한다. 성공하는 이들의 공통점인 ‘가치 창조’는 바로 뇌를 쓰는 면에서 보면 최고 동력원이 된다. 그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셰프에게 음식은 자신의 얼굴이자 마음이며, 음식을 담는 그릇은 거울이다. 어느 누가 자신의 얼굴을 못생기게 보여주고 싶겠는가?”
더 커다란 꿈을 뇌에 입력하다
“기술 산업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만 의식주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음식 산업은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에도 요리사가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한국에서도 셰프를 아티스트로 인식하는 날이 머지않을 것이라 믿는다.”
두바이 호텔에서 일하던 시절, 한 직원이 일을 끝내고 퇴근 직후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때 삶의 허무함을 많이 느꼈고, 돈을 좇기보다는 명예를 위해 살리라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세계 최고의 호텔 수석총괄조리장이라는 자리를 놓고, 모두가 만류하던 한국행을 택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막대한 연봉과 10년의 해외 생활을 뒤로하고 그가 고국을 찾은 까닭은 또 다른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가치를 창조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단련해온 시간을 지나, 이제 그는 더 큰 꿈을 자신의 뇌에 입력한 듯 보인다.
“내 이름을 건 ‘셰프 브랜드’ 사업을 추진해 새로운 음식 문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 학교를 한국에 세울 것이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돈을 많이 벌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거부할 수 없는 ‘당당함’을 본다.
글·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 사진·김명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