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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 수석디자이너 김윤희 차장 ●약력● 2006년 키친 바흐Kichen Bach 브랜드 론칭, 오리엔탈Oriental 제품 발표 2006년 코리아디자인어워드 리빙디자인 부문 수상 2008년 그랑 셰프 Grand Chef 제품 발표 2008년 한국 디자인 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디자이너 30인에 선정 |
부엌과 생활가구를 만드는 회사인 한샘의 김윤희 차장은 아파트 부엌이라는 철저히 서양적인 공간을 한국적인 미와 정신으로 새롭게 재창조해낸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다. 부엌가구에 한류 바람을 일으킨 주역으로 평가받으며 올해 초에는 ‘한국 디자인 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디자이너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서양과 동양, 합리적 실용성과 창조적 예술성이라는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자신 안에서 녹여내고 뛰어넘은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들어본다.
브레인(이하 B) 부엌 디자인에 한류 바람을 일으킨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한국적인 디자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윤희(이하 김)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흔히 전통적인 문양이나 형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전통적인 요소나 코드는 잘못 들어가면 촌스럽고 반대로 색깔을 너무 없애면 한국적인 느낌이 사라진다. 완전히 전통을 답습하는 것도 아니고 서양을 모방하는 것도 아닌, 동양과 서양을 넘어서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한국적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디자인이기도 하다. 한샘의 디자인 철학이며 디자인센터의 이름이기도 한 DBEW(Design Beyond East & West)가 추구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라 한국적인 것을 이제 찾아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개발한 제품들이 한국적인 디자인을 찾아가는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B 그런 작업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김 시장이 글로벌화되면서 많은 브랜드가 들어오고 나가고 있다. 비슷한 제품을 내놔서는 경쟁력이 없다. 가까운 중국 시장을 생각해봐도 한국적인 것, 동양적인 것이 디자인과 제품을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이다. 한샘의 디자인 철학인 ‘DBEW’와 디자이너들의 철학이 다르지 않아 ‘그래 맞아, 한번 해보고 싶어’라고 동의를 했다. 어떻게 구현할지가 주된 과제다.
B 구체적인 제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달라.
김 2006년부터 준비했던 그랑 셰프는 디지털적인 것과 아날로그적인 것을 결합시켜보자는 콘셉트에서 출발했다. 공간적으로는 정말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구성이다. 수납을 뒤쪽에서 다 해결하고 앞에는 기능적인 작업공간을 놓도록 했다. 거기에 한국적인 디자인 요소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작업공간과 거실 쪽의 소프트한 공간을 이어주는 것이 필요한데 바로 전통적인 사방탁자에서 아이디어가 나온 나무로 된 오픈 선반이다.
기능적이면서도 뭔가 잘린 듯, 완성이 안 된 듯했던 공간을 자연스럽게, 부드럽고 막히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레인지 후드도 원래 스테인리스 재질로 되어있던 것을 반투명 유리로 바꿔 선비의 갓을 연상시킨다.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선비라는 이미지를 완성시켜주는 갓처럼 전통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디자인 속에 조화시켰다.
B 아이디어가 제품이 되기까지 디자인 작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김 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 즉 고객에 대한 고민이다.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을 보면 먼저 누가 사용하고 그 사람들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의 생각들이 정리되면 아이디어회의를 여러 차례 거친다.
그 후 스케치와 컴퓨터 작업들을 거치고, 내부적으로 ‘이것은 빼자’, ‘이것은 이렇게 하자’ 품평을 해서 방향을 좁혀나가고 실제로도 만들어보면서 다듬게 된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과 과정 속에 빠져 왜 그것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거나 선택이 애매할 때가 있다. 그때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의 경우엔 고객에게 눈을 돌리면서 해답을 찾는다.
B 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이 힘들지는 않은지?
김 쉽지는 않다. 특히 부엌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매번 새롭게 하는 과정이 무척 힘이 든다. 또 공간 배치에 대한 이해, 전통적인 미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그래서 관련된 책들을 구해 보고, 전통건축과 박물관 기행을 떠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항상 공부를 하는 학생 같은 기분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좋아하는 예화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항상 젊게 사는 스승에게 제자가 비결을 묻자 스승의 답이 “나는 지금도 공부하고 성장하고 있다. 내가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것이 젊음의 비결이다”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B 창조력을 키우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김 특별한 건 없다. 다만 여러 방법으로 다양한 정보들을 머리에 담아두고 있다가 필요할 때 그것들을 꺼내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소엔 산만할 정도로 다양한 관심사가 있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도움이 된다.
B 그러한 집중력은 어디서 나오나?
김 무엇보다 성공과 꿈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나에게는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독립해서 디자인 비즈니스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나는 성공이 스스로를 존경하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꿈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당장 내일 나의 미래가 끝이 나더라도 후회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지금 어떤 경험과 계획들이 필요한지 열정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여러 번 좌절하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고 완성을 향해서,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김성진 daniyak@brainmedia.co.kr
사진·김명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