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에이전트란 무엇인가? 이는 단순히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는 챗봇을 넘어, 특정 목표를 부여받으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사용자를 대신해 다양한 도구(웹 브라우저, 앱 등)를 사용하여 복합적인 과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지능형 시스템을 의미한다. 바로 이 '자율성'과 '실행력'이 AI 에이전트를 정의하는 핵심이다.
▲ AI 에이전트 시대, 완벽한 비서의 '편리함'과 뇌과학이 말하는 '선택의 즐거움'
"내일 오후 2시 서울 가는 비행편, 가장 저렴한 걸로 예약해 줘."
이 한마디가 불러올 미래는 이제 공상과학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 가능한 구글의 ‘프로젝트 마리너’와 ChatGPT 유료 사용자를 대상으로 점차 확대 중인 OpenAI의 ‘챗GPT 에이전트’는, 인간을 반복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것이라는 장밋빛 약속과 함께 다가왔다.
하지만 이 눈부신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인간 고유의 선택권'이라는 묵직한 철학적 질문이 자리 잡고 있으며, 최신 뇌과학 연구들은 이 질문의 답이 인류의 미래, 나아가 각자의 운명과도 직결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AI 에이전트, ‘지시’하면 ‘실행’하는 시대
2025년 현재, AI 에이전트 기술 경쟁의 핵심은 '얼마나 더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 있다.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던 AI가 이제는 사용자를 대신해 여러 웹사이트를 넘나들며 예약하고, 주문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실행자'로 진화했다. 이는 내부적으로 수많은 '전문가 모델'들이 협업하는 '전문가 혼합(MoE)' 아키텍처 기술 덕분에 가능해졌으며, AI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뜨거운 기대와 함께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WIRED는 AI 에이전트가 친근한 외관 뒤에서 사용자의 구매 행동이나 정보 소비에 미묘하게 개입하는 '사회적 조작 허브'로 기능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기술이 우리의 선택에 미칠 영향력을 경고했다.
Financial Times와 The Verge 역시 구글이 선언한 '에이전트 시대'가 아직은 연구용 프로토타입 단계임을 지적하며, 이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에 대한 논의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학계의 반응은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스탠포드 인간 중심 AI 연구소(HAI)는 AI 에이전트가 인간의 성격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모사해내는 '페르소나 시뮬레이션' 실험 결과를 발표하며, 인간과 AI 에이전트 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다.
여러 연구 논문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주도권(Sense of Agency)'이 침해될 가능성과,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AI에 위임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책임 소재의 불분명함을 심각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산업계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IBM과 같은 기업들은 AI 에이전트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과정을 자동화하기보다는 인간 전문가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인간 협업(Human-in-the-loop)'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기술의 효율성과 인간의 통제권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업계 스스로도 이 기술의 파급력을 신중하게 저울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뇌과학이 말하는 '선택의 즐거움'과 '자유의지'
AI 에이전트가 제안하는 '완벽한 자동화'는 왜 우리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일까? 그 답은 우리의 뇌 구조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선택' 행위는 단순히 최적의 결과를 찾는 계산 과정이 아니라, 뇌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작동하는 생존과 보상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선택, 그 자체가 '보상'이다 (보상 회로와 도파민)
우리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스스로' 고를 때, 우리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며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단순한 쾌감 물질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 행동을 계속하라'고 동기를 부여하는 강력한 신호다.
즉, 우리는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 내가 무언가를 통제하고 있다는 '주도권(Sense of Agency)' 그 자체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AI가 모든 선택을 대신해 준다면, 우리는 이 소중한 '도파민의 보상'을 얻을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선택하는 뇌, 계획하는 뇌 (전전두피질의 역할)
복잡한 상황 속에서 정보를 종합하고, 결과를 예측하며, 최종 결정을 내리는 모든 과정은 인간 지성의 핵심부인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 담당한다. 기차표를 예매할 때 창가 자리를 고집하는 사소한 행동부터, 인생의 중요한 진로를 결정하는 일까지, 이 모든 '선택의 연습'은 전전두피질을 훈련시키고 발달시킨다. 만약 이 모든 과정을 AI에 위임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는 뇌의 핵심 근육을 퇴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효율성 vs 주체성 – 인간의 딜레마
AI 에이전트가 그리는 미래는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선물을 고르는 고민, 휴가지의 숙소를 비교하는 설렘까지 모두 '효율'의 이름 아래 AI에게 넘겨준다면, 우리는 시간을 얻는 대신 삶의 주체성과 소소한 성취감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학계와 언론계에서도 AI 에이전트의 잠재적 위험성을 심도 있게 지적하고 있다.
WIRED는 AI 에이전트가 친근한 외관 뒤에서 사용자의 구매 행동이나 정보 소비에 미묘하게 개입하는 '사회적 조작 허브'로 기능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또한 UC 버클리, IBM 등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AI 에이전트의 윤리, 데이터 보호 문제, 해킹 위험, 설명 가능성 부족, 법적 책임 체계의 부재 등을 지적하며 복합적인 대응 전략과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심지어 보이스 에이전트가 자동화된 사기 수법에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 결과는 이 기술의 심각한 악용 가능성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편리함의 대가로 나의 모든 개인정보와 결제정보를 거대 기업에 넘겨야 한다는 '빅브라더'에 대한 불안감은, 선택권을 상실한 뇌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위험 신호일지도 모른다.
AI와의 건강한 협업: '대체'가 아닌 '지능형 파트너십'
성공적인 AI 에이전트의 조건은 기술의 완벽함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데 있다. 사용자가 원할 때 언제든 개입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인간 협업 모드'가 핵심이다. 즉, 반복적인 생수 주문은 AI에 완전히 위임하되, 여행 계획처럼 '선택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일에는 명확히 선을 긋는 것이다. 결국 AI 에이전트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닌, 우리가 선택의 근육을 단련하도록 돕는 보조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 AI 에이전트 시대, 완벽한 비서의 '편리함'과 뇌과학이 말하는 '선택의 즐거움'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기 전, 우리는 수백 개의 전화번호를 기억하며 자연스럽게 뇌의 인지 기능을 훈련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 대가로 우리의 뇌는 기억 회로를 사용할 중요한 기회를 잃었다. 편리함이 반드시 뇌 기능의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장 신재한 교수는 AI 에이전트 시대의 두뇌 활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AI의 편리함은 근력 운동을 대신해 주는 최첨단 기계와 같습니다. 당장은 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뇌의 CEO라 불리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의 판단 근육을 약화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치매(Digital Deentia, 디지털 디멘시아)'의 가속화입니다.따라서 AI를 맹목적인 '대체재'가 아닌, 나의 두뇌를 더 강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지능형 훈련 파트너'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것을 골라줘'라고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대신, '최적의 선택을 위한 3가지 대안과 각각의 장단점을 분석해 줘'라고 요구하십시오. 정보 수집과 분석이라는 무거운 짐은 AI에게 맡기되, 여러 대안을 저울질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가장 중요한 '두뇌 운동'의 기회만큼은 반드시 스스로에게 남겨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 우리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지키는 브레인트레이닝의 핵심입니다."
글. 장인희 객원기자 heeya71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