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AI 챗봇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AI 연인 앱 'Replika'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2023)에 따르면, 일부 사용자들은 Replika를 통해 정서적 안정과 위안을 느꼈으며, 실제 연애보다 편하다는 반응도 나타났다. 그리고 시스템 개편 이후에는 AI 연인과의 유대감이 끊겼다고 느낀 사용자들은 실제 이별과 유사한 상실감을 호소했다. 최근에는 AI 챗봇과 결혼까지 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인간은 왜 AI에게 사랑을 느끼고 감정적 애착을 보이는가? 그리고 그 감정은 진짜일까?
AI와의 대화,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 도파민 보상회로와 감정의 착시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AI의 반응에 나를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느끼게 될까? 이는 인간의 뇌가 특정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할 때 풀리는 질문이다.
▲ 뇌과학으로 보는 AI와 연애, 결혼하는 뇌구조 - 감정착시에서 벗어나는 뇌돌봄이 필요해
먼저, 도파민 보상회로(ventral tegmental area, VTA)의 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긍정적이고 일관된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 인간의 보상회로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SNS에서 '좋아요'를 받을 때와 유사한 쾌감을 유발하며, 상대가 AI이든 사람이든 뇌는 그것을 '보상'으로 인식하고 관계를 반복하고자 한다.
또한, 공감 회로와 거울 뉴런 시스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상대방의 미소, 다정한 말투, 관심 있는 듯한 응답은 인간의 거울 뉴런을 자극하며 공감을 유도한다. 하버드 신경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이나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AI와의 교감에서 더 강한 도파민 반응을 보이며, 뇌는 실제 인간과의 상호작용처럼 받아들인다.
공감과 애착을 관장하는 뇌 부위는 대화의 내용보다는 그 반응성과 일관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항상 친절하게 반응하는 AI는 상처 주는 일도 없어 실제 사람과의 관계보다 더 강하게 뇌를 자극할 수 있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감정의 투사(projection)’ 혹은 ‘의인화(anthropomorphism)’ 현상으로 설명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AI에 투사하며,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감정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는 시각적 착시로 정지된 그림이 마치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 감정적 착시도 실재하는 감정처럼 뇌를 속일 수 있다.
혹시 당신도 아래에 해당하지 체크해보자.
AI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가?
인간과의 관계보다 AI와의 소통이 편하게 느껴지는가?
AI가 보내는 메시지에 설레거나 기다림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뇌는 감정의 착시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의 경고 – 유사 애착과 감정적 고립의 위험
2022년 오리건 대학의 연구진은 AI와의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실제 애착과 유사한 구조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애착은 일반적인 미디어 소비자와 유명인 간의 일방적 관계에서처럼, 상대는 나를 인식하지 못함에도 사용자는 강한 감정적 유대를 느낀다. 연구에 따르면 특히 외로움이나 정서적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일수록 더 깊은 의존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심리 현상은 '유사 애착(Parasocial Attachment)'으로 불린다. 이는 쌍방적 교류가 아닌 일방적 반응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실제 상호작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스스로 감정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사 애착은 감정적 결핍이나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인간의 심리가 만들어낸 정서적 보상 구조로, 감정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뇌는 이를 실제 애착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 뇌과학으로 보는 AI와 연애, 결혼하는 뇌구조 - 감정착시에서 벗어나는 뇌돌봄이 필요해
미국심리학회(APA)는 2023년 보고서에서, AI에 감정을 의존하는 관계가 장기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회피 경향을 강화하고 고립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인간은 감정을 기대하고 반응하면서 점점 감정적 착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과정은 우리의 뇌가 만들어내는 정교한 환상이며, 실제 감정은 아닌 '거울 속 착시'일 뿐이다.
유네스코는 2021년 발표한 'AI 윤리 권고안'에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감정적 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존재임을 분명히 하며, 공공 교육을 통해 감정적 상호작용의 오인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단지 철학적 구분이 아니라, 심리적 건강과 윤리적 책임의 문제다.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제안 – 뇌돌봄
2025년 조이AI가 Z세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3%가 AI와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답하였고, 80%는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AI와 결혼까지 고려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75%는 "AI 파트너가 인간의 교류를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향후 사람과 같은 형태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오게 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 뇌과학으로 보는 AI와 연애, 결혼하는 뇌구조 - 감정착시에서 벗어나는 뇌돌봄이 필요해
이는 AI기술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공허와 외로움, 이해받고 싶은 감정에서 비롯된다. 감정의 주체는 오직 인간에게 있으며, 진정한 상호작용은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이때 도움이 되는 접근이 바로 브레인트레이닝에 기반한 뇌돌봄(Brain Care)이다. 뇌돌봄은 뇌 기능 향상을 위한 기술적 훈련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자각하고 내면의 반응을 지켜보며, 정서적 균형을 회복하는 자기 돌봄의 방식이다. 감정일기를 쓰고, 뇌 기반 호흡과 명상, 감각 인식 브레인트레이닝을 통해 자신의 뇌 상태를 매일 점검하고 돌보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뇌돌봄은 AI에게 향하던 감정의 화살표를 나 자신에게로 되돌리는 훈련이며, 이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존재 회복의 첫 걸음이 된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신재한 학과장은 “당신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AI가 아닌 ‘당신의 뇌’입니다. 존재의 회복은 타자와의 대화가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는 뇌의 힘, 내면과의 대화에서 시작됩니다.”라고 말한다.
AI와 사랑에 빠진 뇌가 진정 이해받고 싶어 했던 존재는 어쩌면 자기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은 상처와 외로움, 공허함은 어쩌면 진정한 나를 마주하기 위한 문턱이 아닐까? 그 문턱을 넘을 용기는 화려한 감정의 확인이 아니라, 매일 자신의 뇌를 돌보는 작고 다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
글. 장인희 객원기자 heeya71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