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교육계가 뜨겁다.
이 논란을 단순히 AI기술 도입의 속도나 예산 문제로만 본다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한 걸음 떨어져 보면,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을 어떤 인간으로 키워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즉 인성(人性)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 계기라 할 수 있다.
▲ [칼럼] AI 교과서 논란, 우리 교육의 ‘인성’을 묻다
효율성의 유혹, 인성을 돌아보다
AI 디지털교과서가 약속하는 세상은 지식 전달의 ‘효율성’이 극대화된 곳이다.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춰 모르는 부분은 반복해주고, 아는 부분은 과감히 건너뛰는 ‘초개인화 맞춤 교육’은 분명 매력적이다. 지식을 얼마나 ‘잘’ 그리고 ‘빨리’ 습득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인성교육의 목표는 다르다. 인성교육은 ‘어떻게’ 지식을 쌓는가를 넘어, 그 지식을 가지고 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고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친다. 친구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때로는 나의 이익을 양보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협업 능력,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용기는 결코 알고리즘이 가르쳐 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AI라는 최첨단 도구의 도입을 서두르는 동안, 혹시 교육의 본질인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을 소홀히 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기술의 효율성이 인간성 함양이라는 교육의 대의를 압도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닌지, 이번 논란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과정이 곧 인성교육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AI 교과서 논란이 전개되는 ‘과정’ 자체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인성교육의 장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
미래 교육이라는 중요한 의제를 두고 충분한 대화와 숙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보다, 정치적 힘겨루기와 갈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일관성 없는 정책 변경으로 학교 현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서로를 비난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그 어떤 교과서보다 강력한 비교육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진정한 인성교육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논란을 우리 사회의 민주적 의사결정 역량과 공동체적 인성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책임이 어른들에게 있다.
AI 시대, 인성교육의 방향을 다시 세울 때
결론적으로, AI 디지털교과서는 그 자체로 선(善)도 악(惡)도 아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손에 쥐여주기 전에, 우리 아이들이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 즉 분별력과 책임감, 따뜻한 공감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AI가 지식 암기를 대신해주는 시대에, 인간에게 더욱 요구되는 역량은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것들이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질문하며, 타인과 협력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능력. 이 모든 것의 뿌리가 바로 인성이다.
이번 AI 교과서 논란을 단순한 정책의 후퇴나 기술 도입의 지연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잃은 채 ‘속도’에만 매몰되었던 것은 아닌지 겸허히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이들의 손에 차가운 스마트 기기를 쥐여주기 전에, 그들의 가슴에 따뜻한 마음과 지혜로운 정신을 심어주는 일이 먼저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기억할 때이다. 이번 논란은 우리 교육의 ‘인성’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이다.
글. 신재한 인성교육연구원 원장 han3645@daum.net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학과장,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자격검정센터장 역임
- 교육부 연구사
-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수학습센터 운영위원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콘텐츠 평가 심사위원
- 한국연구재단 등 국가기관 정부 프로젝트 심사위원
- 한국청소년상담학회 융합상담학회 회장, 수련감독
- 한국상담학회 노인상담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수련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