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의 기술] 공생하는 삶을 위한 세 개의 나침반

[공생의 기술] 공생하는 삶을 위한 세 개의 나침반

휴먼 테크놀로지

브레인 96호
2022년 12월 08일 (목)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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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애리조나주 파월 호수, 게티이미지


타들어가는 지구

미국의 북애리조나에 있는 파월 호수는 내게 아주 특별한 장소이다. 그곳에 갈 때마다 시간을 거슬러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고 새로운 에너지와 영감을 받는다. 1998년에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옥빛 물결과 호수 주위를 둘러싼 형형색색의 기암들은 마치 거대한 고대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두어 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면 호수 끝자락에서 강을 가로질러 반원 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돌다리를 만난다. ‘레인보우 브리지’이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자연 다리이자 나바호 인디언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파월 호수와 레인보우 브리지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자연과는 다른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곳에 가면 상반된 두 가지의 느낌을 받곤 했다. 하나는 지구어머니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신비함과 경외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생명에 가슴 아파하는 지구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11년 만에 찾은 파월 호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도 가뭄으로 호수의 수위가 계속 낮아지고 있었지만 최근에 본 모습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수위가 역대 최하인 24퍼센트로 떨어졌다.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인 가뭄과 홍수가 계속되고 그 결과로 담수원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터다. 그런데 막상 내가 마음에 깊이 담아둔 곳이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파괴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형언하기 힘든 고통과 안타까움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 레인보우 브리지. 게티이미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는 분명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지구적 위기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아니다. 현재의 위기상황을 가져온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년 넘게 세상을 뒤흔든 팬데믹,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우크라이나전쟁, 종교나 이념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박해와 그에 대한 저항들. 나는 그것들 속에서 우리의 삶과 지구를 파국으로 내모는 문제의 뿌리를 본다. 근원적인 문제는 사회제도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 안에 있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이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우리가 개인적, 사회적, 자연적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에 있다. 그러하기에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 또한 우리들 자신 속에 있다. 나는 우리가 맞닥뜨린 지구적 문제들을 푸는 열쇠가 ‘공생’이라고 생각한다. 공생은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를 보살피지 않으면 자신도 결국 생존할 수 없다는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공생은 우리에게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다만 달라져야 하는 것은 공생의 범위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공생의 범위를 내 가족, 내 직장, 내 나라,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한정하여 살아왔다. 현재의 지구의 상황은 이제 그 범위를 모든 사람, 모든 생명, 지구 자체로 확장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소리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공생이 어렵게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감각이고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공생을 선택하고 공생의 감각을 깨우고 사용함으로써 이 세상을 살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공생은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삶의 방식들 중 하나가 아니다. 우리가 지구에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생명의 고리

흰동가리는 주황색 몸에 흰색 띠를 두른, 아주 귀엽게 생긴 물고기이다. 귀여운 외모 덕분에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니모’라는 이름으로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흰동가리는 말미잘 주위에서 헤엄쳐 다니다가 큰 물고기가 잡아먹으려고 덤벼들면 말미잘 촉수 사이 숨는다. 멋모르고 덤벼든 큰 물고기는 독이 있는 촉수에 쏘여 말미잘의 먹이가 된다. 


이 촉수의 독은 흰동가리에게는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병든 촉수를 제거하고 찌꺼기를 청소해서 자신을 보호해준 말미잘에게 도움을 준다. 흰동가리와 말미잘처럼 서로 다른 생물 종이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도우면서 살아가는 관계를 ‘공생’이라고 한다. 자연계에는 공생관계에 있는 생물들이 아주 많다.

반면 천적관계도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잡아먹는 먹이사슬로 연결된 관계이다. 작은 곤충은 파리에게 먹히고 파리는 개구리에게 먹히고 개구리는 뱀에게 먹히는 식이다. 그런데 천적관계에서는 일방적인 파괴만 일어날까?

▲ 흰동가리 물고기. 게티이미지
 

청어잡이 어업에서 유래해 경영학에서도 쓰이는 ‘메기효과’라는 것이 있다. 청어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차가운 해역에서 잡히는 어종이라 수송 중에 많이 죽는데, 노르웨이의 한 어부는 잡은 청어를 매번 산 채로 실어 날라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 어부의 비법은 청어가 가득한 수조 안에 천적인 메기를 몇 마리 넣어두는 것이었다. 메기에게 위협을 느끼고 사방팔방으로 도망 다닌 덕분에 청어는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싱싱하게 살아남았다. 천적의 존재가 청어의 생존력을 높인 것이다. 

사자와 영양의 관계도 그렇다. 사자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면 초식동물의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자가 없으면 영양의 개체가 지나치게 늘어 목초지가 파괴되고 결국 영양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자연계에서는 생명체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보면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 게티이미지


인간에게 공생은 선택이다

자연계에서는 각각의 종들이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공생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주어진 조건에서 살아남고 번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균형이 이루어지고 조화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같은 자연의 조화가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인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공생이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자연에 맡겨 둔다면 결국 자멸과 공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자연계에서 공생은 ‘현상’이지만, 인간에게 공생은 ‘선택’이고 ‘창조’이다. 인간이 공생을 선택하지 않으면 지구의 미래에 공생은 없다. 공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공생의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고 공생의 기준으로 행동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다. 우리 자신의 내부로부터 그렇게 변화를 시작하면 삶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친절해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 생활에서 낭비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지구에 주어지는 스트레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없어도 새로운 제도를 만들지 않아도 새로운 인프라를 도입하지 않아도 우리는 작은 노력만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세상을 바꿀 가장 강력한 도구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마음을 먹는 일이다. 인류의 미래를 바꾸고 세상을 살리는 것이 우리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마음이 무엇인지, 어디에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설명을 할 수는 없다. 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는 대부분 마음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뇌의 작용 혹은 뇌의 활동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라고 본다. 반면 영적인 전통들에서는 마음이 근원적인 실체이고, 세상의 모든 일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환영 같은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어느 입장에 서 있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뇌의 작용을 통해서 마음을 인지하고 경험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우리가 마음의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파괴할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의 내면에는 마음의 힘을 좋은 방향으로 잘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자들이 있다. 공감능력과 양심, 그리고 성찰의 힘이다. 마음이 가진 이 세 가지 특성은 우리가 에고의 한계를 넘어 공생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준다.
 

▲ 게티이미지


공감의 힘

음료수 가게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은 공감의 힘 때문이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해양생물 연구팀이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숨쉬기 힘들어하는 바다거북이를 발견하고 바다거북이의 콧구멍을 막고 있는 것을 빼내는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해 유튜브에 올렸다. 바다거북이는 코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플라스틱 빨대였다.
 이 영상은 단시간에 조회 수 1억을 넘기며 전 세계적으로 음식점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하는 캠페인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플라스틱이 환경에 해롭고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이와 빨대를 빼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지적인 이해는 행동으로 즉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느끼면 달라진다. 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목에서 느껴지는 갈증이 물을 마시게 하는 것처럼,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전달되는 느낌이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고 행동하게 한다. 이것이 지적인 이해와 정서적 공감의 차이이다.
 

▲ 게티이미지

양심이라는 거울

진실 편에 서면 자신이 불이익이나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도 왜 어떤 사람은 진실을 선택할까? 양심의 소리를 따르지 않으면 왜 불편하고 괴로울까? 양심은 모든 인간의 속성인 이기주의나 자기중심적 사고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도덕, 윤리, 규범은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양심은 혈통이나 생활환경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성이다. 

양심은 우리가 노력이나 수행을 통해서 얻은 것도 아니다. 그냥 내재해 있다. 양심은 진실을 비추어주는 거울이고, 진실을 향하는 의지이다. 이것은 내 안에 원래 주어져 있는 내면의 순수함, 밝은 빛이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무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양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양심은 모든 사람의 본성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양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특별히 위대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양심에 따르는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 게티이미지


성찰, 나는 누구인가 묻는 마음

양심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그에 귀 기울이는 까닭은 마음이 가진 성찰의 힘 때문이다. 성찰은 마음에 복잡한 생각이나 감정이 없을 때 잘 발휘되는 능력이다.

관찰하는 의식은 생각을 침묵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깨어 있는 의식의 관찰 앞에 생각과 감정은 마치 아침 햇살 아래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생각과 감정이 모두 사라진 곳에 무엇이 남는가? 만져지지도 않고, 형체도 냄새도 없고, 경계가 없어서 크다고 작다고도 할 수 없고,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것, 심지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남는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 순수한 의식이다. 

이처럼 투명하고 열려 있는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관념이나 욕구나 감정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도 바로 마음이 가진 성찰능력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게 여기게 하고 질문하게 하고 삶을 통해 끊임없이 답을 구하게 한다.

성찰의 힘이 우리를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성찰을 통해 일상에서 크고 작은 자각과 통찰을 얻는다. 이 능력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생각과 외면의 행동을 관찰하고 관찰을 통해 얻은 자각을 스스로 피드백하며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공생하는 삶을 위한 나침반

공감능력, 양심, 성찰의 힘은 공생하는 삶을 위한 나침반과 같다. 항상 깨어있는 의식으로 자신의 내면과 바깥을 살피며, 이해득실을 떠나 진실 편에 서고, 고통받는 이들과 다른 생명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질 때 우리는 모두를 이롭게 하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러한 선택이 우리를 공생하는 세상으로 이끌 것이다. 마음이 가진 이 세 가지 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품을 수 있는 희망의 근거이다. 


글.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한국뇌과학연구원 원장. 《오늘을 위대하게》, 《나는 100세 골퍼를 꿈꾼다》, 《타오, 나를 찾아가는 깨달음의 여행》 등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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