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뇌 우호적 환경을 제공하는 캠프 (이미지_게티이미지 코리아)
캠프 진행자로 들어간 첫날 경험한 비상 상황
뇌교육 선생님이 되고 동기 선생님들보다 조금 빠르게 캠프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지점에서 소그룹의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2박3일 캠프에 참가한 100여 명의 아이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올라왔다.
10명으로 구성된 우리 조는 소심한 모습의 두세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일부러 이렇게 모아놨나 싶을 정도로 말썽꾸러기들이었다. 캠프장이 소란스러워서 보면 우리 조 아이가 다른 조 아이와 다투고 있거나, 무대 위에 올라가서 멋대로 구는 등 캠프장 전체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감정조절이 어렵거나 산만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뺀 첫날, 내 머릿속에는 ‘비상이다’ 하며 경광등이 켜졌다.
긍정적인 경험은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
그런 아이들이 프로그램이 하나씩 진행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집중해야 하는 순간에 집중하며 조원들과 함께 협력해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표현이 적었던 한 아이는 표현지를 작성하는 시간에 평소 꽤나 말썽을 부리던 아이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쟤 처음 왔을 때랑 달라요.”
아이들이 서로의 변화를 인정해주고 그걸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충만함을 느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의 마술처럼 아이들은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발표하려고 앞으로 뛰어나가 차례로 줄을 서고, 자신이 느끼고 성장한 점을 조심스럽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전체 아이들 앞에서 발표했다. 2박 3일간 이어진 프로그램을 마치고 캠프장을 퇴소하는 날, 버스에 탄 아이들이 끝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은 뭉클하게 가슴에 남았다.
캠프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몸을 통해 뇌를 깨우고 마음을 여는 활동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은 같다. 자기 안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선택하면 이루어진다는 원리를 체험으로 깨닫게 함으로써 자신감을 키운다.
또한 다양한 뇌교육 활동과 미션을 통해 도전하고 성취하는 경험을 하고, 협동 게임과 신뢰 게임 등을 통해 공감 능력, 소통 능력, 리더십을 기른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긍정적인 정보로 바꾸고, 자신감을 바탕으로 친구와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를 키우면 그것이 세상을 향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어떤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중요한 순간에 영향을 주듯이, 캠프에서의 긍정적인 경험들이 아이의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지나온 아이들이 처한 상황
캠프에서 만난 모든 아이를 감동의 순간과 함께 기억하는데,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그 아이는 심각한 공격성을 보여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도전 미션으로 장애물을 통과하는 신뢰 게임을 하던 중, 아이는 눈을 가리고 있는 파트너가 책상 아래를 지날 때 부딪칠까봐 파트너의 머리 위에 자기 손을 올리고 무사히 통과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평소에 공격적이던 아이가 친구를 위해 스스로 배려하는 모습이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캠프 이후, 아이의 부모님이 학교에서 아이의 생활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지나온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에 시행착오를 겪는다. 다른 사람과의 정서 교류 경험이 적어서 소통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학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느라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의 기질적 특성도 작용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또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아이들에게 캠프의 경험은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캠프는 두뇌 우호적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캠프에 참가한 아이 중에는 평소 지점에서 수업할 때는 관찰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우리 지점에서 참가한 서연이가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선생님들을 잘 따르며 늘 의젓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가 막상 캠프장에 도착해서는 엄마를 찾으며 집에 가고 싶다고 울면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 당황한 적이 있다.
서연이는 오빠와 어린 동생 사이에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고, 의젓한 모습을 보이며 주변 어른들에게 인정받는 사랑을 선택했던 것 같다. 캠프에서 관찰된 이 같은 행동은 서연이의 내면에 억압돼 있던 정서적인 불편함을 들여다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렇듯 가족과 분리된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아이 안에 숨어있던 정보가 드러나는 것도 캠프의 이점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아이와 부모가 캠프 참가를 결정하는 모습이다. 이전에 아이들은 캠프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모는 어느 캠프가 좋을지 선택만 하면 됐는데, 최근에는 사회 변화의 영향인지 아이들이 캠프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며 결정을 어려워한다.
오래도록 캠프를 진행하며 보아온 대부분의 아이는 보통 캠프를 마치고 마중 나온 부모를 만나는 순간 ‘나 다음에 또 갈 거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를 캠프에 가게 하려면 아이가 왜 힘들어하는지 들어주고 용기를 내어 선택할 수 있도록 끌어줘야 하는 단계를 하나 더 거쳐야 한다.
부모와 분리되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도 숙소에서 본인의 소지품을 챙기고, 주변을 정리하고, 혼자서 샤워하고,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캠프에 와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프로그램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고 자신도 사랑을 표현하며 두뇌 우호적인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캠프는 아이들의 의식을 거인처럼 키우는 축복의 순간이다.
글_선세희 BR뇌교육 서울교육국 교육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