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를 구하는 휴식의 기술

당신의 뇌를 구하는 휴식의 기술

우리 존재의 뇌과학

브레인 113호
2025년 11월 24일 (월)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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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출판 편집자로서 대학생들을 만나 직업 탐색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1학년 때 전공을 정하지 않고 1년 동안 여러 전공을 탐색한 후에 2학년에 올라갈 때 정한다고 한다.

마침 출판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있어 책 만드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인터뷰가 끝날 즈음, 한 학생이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휴식의 시간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우산도 없이 거리를 걸었는데, 그때 묵은 때가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면서. 

돌이켜 보니 정말 개운하게 잘 쉬었다는 느낌을 받은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한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이었고, 최근에는 정부 차원에서 주 4.5일 근무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휴식의 양적 논의는 진전되고 있는데, 휴식의 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 당신의 뇌를 구하는 휴식의 기술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휴식과 회복은 다르다

김희재(서울대 체육교육과 운동생리학) 박사는 많은 사람이 ‘휴식’과 ‘회복’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휴식과 회복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는 말이다. 

“휴식은 에너지 쓰는 것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면, 회복은 그 이상의 상태를 포함하고 있어요. 회복은 선수들이 단순히 훈련을 중단하고 쉬는 게 아니라, 근육과 정신적 피로를 풀고 체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까지를 포함한 개념입니다.” 

그는 운동선수들에게 마냥 쉬는 게 아니라 가벼운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 충분한 수분과 영양을 섭취하면서 쉬라고 권고한다. 

운동선수뿐 아니라 우리도 휴식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보통은 주말이나 휴가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 휴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쉬면서 뭘 했는지 물어보면 넷플릭스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거나 그도 아니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 보냈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활동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휴식을 취했음에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일할 의욕이 나지 않고 일의 몰입도가 떨어진다면, 그건 단순히 일을 멈췄을 뿐 제대로 회복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넷플릭스 보면서 쉴까? 

실제로 쉰다는 건 단순히 피로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선다. 몸의 체력을 끌어올릴 뿐 아니라 정서적·심리적 균형을 되찾고, 삶을 살아갈 에너지와 동기를 다시 채우는 과정까지를 포함한다. 단순한 휴식만 취하고 내적 회복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피로감은 일시적으로 사라질지 몰라도, 삶에 대한 지속적인 동기가 살아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회복 상태에 이르려면 단지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뇌가 완전히 이완되어야 한다.

《멈추지 못하는 뇌》를 쓴 영국의 신경과학자 조지프 제벨리는 그런 관점에서 주말에 넷플릭스 몰아보기는 휴식과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드라마에 집중하느라 뇌가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TV를 볼 때는 주의력과 감각 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한다. 드라마의 복잡한 줄거리를 따라가려면 강한 집중력이 요구되며, 등장인물들이 제시하는 도덕적 딜레마는 우리의 신경을 잡아끌어 과몰입하게 한다.

제벨리는 이런 식의 몰아보기가 도파민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해 뇌의 자연스러운 화학 균형을 무너뜨리고 장기적으로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감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동적 휴식에서 능동적 휴식으로 

그렇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과 뇌가 충분히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를 쓴 김은영(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휴식을 ‘수동적인 휴식’과 ‘능동적인 휴식’으로 구분한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서 어쩔 수 없이 쉬는 것은 수동적인 휴식이다. 

반면 능동적인 휴식은 지쳐 쓰러지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휴식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비워야 할 감각과 채워야 할 감각을 구분한 다음 그에 맞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내가 너무 긴장해서 답답하고 근육통이 느껴지는구나’, ‘누워 있어도 몸의 긴장이 풀리지 않네’, ‘마음이 불안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고 쉽게 화가 나는구나’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몸과 마음을 충분히 이완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적당한 영양분을 채우고,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요가 동작, 심호흡으로 몸과 마음이 긴장 속에 오래 방치되지 않도록 살피는 식으로 말이다. 
 

▲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록 뇌에는 더 좋다

사실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뇌가 이완되는 순간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알았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연구와 집필 중에 틈틈이 낚시를 하면서 긴장된 뇌에 휴식을 주었다. 소설가 제인 오스틴과 버지니아 울프도 창작의 고통 중에 이완과 휴식의 가치를 높이 산 작가들이다. 미국의 시인인 마이아 앤젤로는 일과 중에 긴 목욕과 느긋한 산책 시간을 두었고, 특히 공원 벤치에 앉아 개미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독일의 경제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의 가치를 높게 산 사람이지만, 휴식이야말로 인간의 창의성을 발휘하게 해주는 근원이라고 굳게 믿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떠한가. 그는 하루 종일 그림 앞에 앉아 사색에 잠겼다가 단 한 번의 붓질만 하고 자리를 뜨곤 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뇌가 휴식하는 순간은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바쁘디바쁜 현대사회에서는 게으르고 무능한 태도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효율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이 시간이 우리를 회복에 이르게 하고, 더 풍요로운 삶으로 이끈다.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앙리 푸앵카레는 방정식이 풀리지 않을 때면, 답답한 책상 앞을 벗어나 숲을 거닐거나 해변을 산책하며 머리를 비웠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 방정식의 해법이 떠오르곤 했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경험에 매료되어 그는 번뜩이는 순간을 더 많이 끌어오려고 목적 없이 버스를 타거나 시골길을 정처 없이 거닐었고, 때로는 거실에 앉아 창밖 숲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그는 1908년 파리 심리학회 총회에서 동료들에게 이 경험을 발표하기도 했다.
 

집행 네트워크 vs 디폴트 네트워크 

아쉽게도 푸앵카레 시절에는 뇌 속 풍경을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없어 이러한 경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뇌과학자들은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해 있을 때뿐 아니라 휴식을 취할 때의 뇌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가 휴식을 취할 때, 뇌까지 쉬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하고 있다. 즉, 휴식을 취할 때 뇌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집중할 때와 다른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가 긴장을 내려놓을 때, 뇌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탁월한 모드로 전환한다. 바로 ‘디폴트 네트워크’ 모드다. 디폴트 네트워크는 뇌의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전반에 걸쳐 펼쳐져 있으면서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 속을 떠다니며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상상할 때 활성화하는 뉴런들의 회로이다. 

반대 개념인 ‘집행 네트워크’와 비교하면 디폴트 네트워크가 더 선명해진다. 디폴트 네트워크가 휴식과 사색의 네트워크라면 집행 네트워크는 일에 특화된 네트워크다. 집행 네트워크는 목표 지향적이고 높은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과제를 담당하며, 본질적으로 정신적 긴장감이 필요한 모든 순간에 작동한다. 

우리가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거나 업무를 볼 때, 서류를 정리하거나 파일을 분류하는 단순 작업에 몰두할 때도 집행 네트워크가 활발히 가동된다. 

집행 네트워크가 활성화하는 동안 디폴드 네트워크는 말 그대로 디폴트 상태에 있다. 우리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집행 네트워크는 디폴트 네트워크 뉴런들을 억제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면서 단기적 성과에 몰두하는 직장인들의 뇌는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약할 겨를이 없다. 

반면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성화할 때, 우리 몸은 심박수를 낮추고 호흡을 안정시키며 긴장을 완화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떨어뜨린다. 지능과 창의력, 사회적 공감 능력이 높아지고 질병과 신경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단순한 휴식을 넘어 몸과 마음과 정신의 회복에 이르려면 디폴트 네트워크가 더 자주 활성화해야 한다. 
 

▲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디폴트 네트워크 모드의 순간들

디폴트 네트워크는 우리가 특정한 일에 집중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긴장 상태에서 아등바등하지 않는 순간에 활동을 시작한다. 마음이 어딘가에 얽매여 있지 않고 자유로이 유영하는 그런 때에.

그렇다면 우리가 바쁘게 일하는 틈틈이 뇌의 디폴트 모드를 자극하는 방법은 없을까? 제벨리는 하루에 최소 20분 정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것을 추천한다.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면서 코로 천천히 깊게 숨을 쉬면서 말이다.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쓸모없다고 주입받으면서 자란 사람이라면 이것을 실천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조지프 제벨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생산적인 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디폴트 네트워크로 진입하는 두 번째 방법은 푸앵카레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근처 공원이나 숲을 산책하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나무를 껴안는 것은 더 강력하다. 나무를 안는 것만으로 코르티솔 수치, 혈압, 심박수가 낮아질 뿐 아니라 옥시토신 분비도 촉진한다. 

이런 신경전달물질은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깨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내 디폴트 모드는 호흡하는 순간에 작동한다. 며칠 전, 밀린 일을 마무리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기 전에 잠깐 가부좌로 앉아 호흡을 했다. 

불을 다 끄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밝은 낮에 하는 호흡과는 사뭇 달랐다. 뇌 속 감각의 스위치가 하나하나 내려가고, 마침내 아무것도 의식되지 않는 깊은 고요 속에 홀로 머문 시간이 어찌나 평화롭고 고요한지, 하루의 스트레스와 피곤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가장 강력한 디폴트 모드의 순간은 고요한 공간에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때 찾아온다. 장시간의 고립이나 외로움은 건강에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주기적으로 홀로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타인과의 경계를 설정하고 아무도 개입할 수 없는 깊은 고요 속에 홀로 머물 때, 비로소 삶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는 회복에 이를 수 있다.

글_전채연 
출판 기획자이자 작가. 쓴 책으로는 《스님의 호흡법》, 《우리 뇌는 그렇지 않아》, 《휴맥스, 다시 벤처 정신을 말하다》, 《박지성처럼 꿈꿔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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