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유머를 들은 적이 있다. 한때 유아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끈 텔레토비 중 하나인 ‘ ‘나나’가 지구에 왔다’를 다섯 글자로 줄여보라는 것이다. 답은 ‘지구온나나(지구온난화)’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나나가 지구온난화의 소재로 등장한 것을 보고 그만큼 지구온난화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화석연료는 언젠가 바닥날 것이므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는 이미 당위가 되었고, 대도시에서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지만,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사람들 속은 더 답답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마 ‘인간동력’을 개발한 사람들도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인간동력이란 인간이 근육을 사용해서 만든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 등으로 전환해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젊은이들이 몰리는 댄스클럽의 바닥에 에너지 발전 장비를 설치해 손님이 춤을 추면 전기가 생산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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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자전거 발전기로 생산한 전기 에너지를 사용해 선풍기, 믹서 등의 전자제품을 작동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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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발전 마루, 홍콩의 헬스클럽
성인 남자가 걸음을 내디딜 때 발뒤축과 바닥 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격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면 60와트 전구 하나를 반짝 켤 수 있다. 그렇다면 전기를 많이 쓰는 대도시에서 사람들의 걸음을 이용해 전기를 가장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인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곳, 지하철역이다. 실제로 일본의 도쿄역에는 ‘발전 마루’를 만들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지하철역 바닥에서 전기를 얻는다.
또 홍콩의 한 헬스클럽에서는 자전거에 발전기를 달아 전기를 얻는다. 손님들이 운동하면서 낭비해버리는 에너지를 전기로 만들어 쓰는 것이다. 만약 서울 시민 모두가 하루 한 시간씩 인간동력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면 하루 시간당 30만 킬로와트, 즉 화력발전소 1기분의 전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놀라운 발전량이다. 한 사람이 1년 동안 매일 1시간씩 인간동력 운동기구로 운동하면 1시간당 총 1백82 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총 4천3백80 리터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만약 그렇게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면 참 멋진 일이 될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사람들이 페달을 돌려서 바퀴를 굴리는 자동차가 있다. 바로 버스사이클. 14인승 인간동력 버스인 버스사이클에는 브레이크는 있지만 엑셀러레이터는 없다. 승객들이 폐달을 동시에 돌리기 시작하면 이 힘이 바퀴로 모여 버스가 움직인다. 승객들의 다리는 자동차의 엔진에 해당한다. 자전거 페달 하나가 내는 힘은 약 1백 와트 정도다. 버스에는 페달이 14개 있으므로 약 1천4백 와트짜리 엔진을 단 셈이다. 7백45와트가 1마력이므로 버스사이클의 엔진은 2마력쯤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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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는 개미 발전 군단이 있다
그럼 우리나라 사정은 어떨까? 주로 시민단체나 공공기관이 중심이 되어 에너지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자가발전을 도모하는 ‘개미 발전 군단’이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새만금 간척사업 등으로 논란과 갈등이 심했던 지역, 부안. 상처 난 자리에 새 살이 돋듯, 부안 주민들이 직접 출자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주민에 의한 시민발전소를 세웠다. 집집마다 백열등을 고효율 전구로 바꾸고, 멀티탭을 이용해 대기 전력을 아끼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재생 가능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건국대학교는 학교 건물 두 곳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해 선풍기, 라디오, 조명 따위에 쓰는 에너지를 얻고 있고, 포스코는 제철 공정 중에 발생하는 가스를 전량 회수해 발전용 연료로 활용한다. 이로 인해 총 전력 소요량의 78퍼센트인 1백70만 킬로와트를 자가발전으로 충당한다. 또 무주에 있는 대안학교인 푸른꿈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자전거발전기와 풍력발전기를 만들어서 설치했다. 소형 풍력발전기는 나무를 직접 깎아 날개를 만들고, 코일과 자석을 손수 감아 붙여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전기에너지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 수 있다.
인간동력이나 대체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양은 아직 매우 미미하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시도와 실천하는 힘이 모여 결국은 에너지 소비 패턴을 바꾸고, 마침내 인류의 운명을 바꿀 것이다. 당신은 지금부터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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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인간동력 놀이기구 "태양전지 기차". 태양전지를 이용한 전기에너지를 사용해서 기차를 달리게 한다. 아이들이 기차에 직접 탈 수 있어서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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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jpg) 어린이에게 에너지 소중함을 알리는 황성순 씨(신재생에너지 연구동호회 운영자) |
전기를 만들어 쓰는 재미 MBC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는 프로 성격에 맞게 엉뚱한 상상력을 실제로 선보여서 시청자를 즐겁게 한다. 한 예로, 언젠가 방송 중에 인간동력 버스가 나온 적이 있다. 25인용 버스를 석유 없이 페달만 밟아서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당시 나온 인간동력 버스를 만든 이가 바로 황성순 씨다.
엔지니어이자 신재생에너지 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는 황씨는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다. 자전거 발전기를 만들어 거기서 생산된 전기로 앰프를 작동시켜 음악이 나오게 하고, 텔레비전을 켜고, 분수를 솟아오르게 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이유도 아이들이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가 전시나 행사를 위해 직접 개발한 교육용 기자재만도 1백여 종에 이른다.
“어린이들에게 자전거발전기나 태양전지를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방법을 보여주면 서로 해보겠다고 나섭니다. 발전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전기에 대한 개념도 생기고요. 전구를 켜는 과정을 아이가 직접 체험해보면 전기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사실 이런 장비를 통해 생산하는 전기가 가정의 전기요금을 크게 절약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기가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고 얼마나 쉽게 소모되는지를 경험하고 나면 에너지를 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죠.”
앞으로는 발전 장치와 놀이기구를 접목해서 아이들이 전기를 좀 더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황성순 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도 그가 만든 자전거발전기를 탔다. 두 다리로 페달을 돌리면 기차가 레일 위를 달리고, 페달을 멈추면 기차도 멈췄다. 스위치를 누르는 가벼운 손동작 하나로 형광등을 켜고 끌 때는 느낄 수 없는, 근육을 사용해서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체험은 분명 전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을 비롯해 신재생에너지에 관한 정보는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www.cafe.naver.com/hssoon)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
글·김보희 kakai@brainmedia.co.kr | 사진·김명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