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리뷰] 숲에서 트라우마를 만나다

[뇌과학 리뷰] 숲에서 트라우마를 만나다

신체지각을 활용한 산림치유

▲ 최근 트라우마 치유의 동향은 언어 중심의 심리치료에서 신체 중심의 심리치료로 이동하는 추세이다.(사진_게티이미지)



트라우마는 스트레스의 용량을 초과하는 데서 비롯된 심리적 위기상태 

외상(Trauma)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용량을 초과하는 데서 비롯된 심리적 위기상태(Everly, 1995)이다. 또한 아동·청소년기에 겪은 사건으로 인해 성인기에도 정신적 고통을 겪거나 자신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을 지칭한다(Haller &Miles, 2004). 

트라우마는 정신분석과 신경과학의 시각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핵심적인 문제다. 신경과학은 트라우마의 메커니즘을 억압에서 분리로, 트라우마의 장소를 정신에서 신체로 그리고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이동시켰다. 그렇다면 신체의 기억으로 무의식에 저장된 트라우마가 유발하는 증상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언어화되지 못한 무의식적 신체 기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외상적 상황에서 겪은 자극을 후에 다시 경험하게 되면 의식적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외상에 대한 서술(외현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무의식적 기억을 담당하는 편도체는 ‘위험에 대비하는 신체 반응의 표현’을 유발한다(LeDoux 239). 

반 데어 콜크는 서술(외현적) 기억이 사실과 사건의 정보를 언어적 형태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일반적인 기억이라면, 비서술(암묵적) 기억은 무의식적 기억으로 이미지와 감정의 형태로 저장된다고 주장한다.

스트레스는 해마가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를 통제하는 능력을 훼손해 ‘외현적 의식적 기억 기능’에 장애를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외상 환자의 해마는 수축된다(LeDoux 242). 심각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신체는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내인성 오피오이드(opioid peptide, 엔케팔린이나 베타엔돌핀 같이 모르핀과 유사한 진통 작용을 보이는 펩티드)를 분비하고 오피오이드의 과도한 분비는 ‘경험이 서술 기억에 저장되는 것을 방해한다’(van der Kolk,“Body” 227).

뇌 구조의 관점에서 외상 환자는 인지와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의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의 활동이 저하되어 있다.따라서 외상적 경험의 감각에 대한 기억 흔적이 재활성화하면 ‘감정을 말로 옮기는데 필요한 부위를 포함한 전두엽이 정지되고’, 이 순간부터 의식적 통제를 벗어난 ‘감정적 뇌(변연계와 뇌간)가 감정적 각성, 신체 생리, 근육 행동의 변화를 통해 활성화된 신체 반응을 나타낸다’(van der Kolk,Body 178)

따라서 환자들이 외상 기억을 경험할 때 “외상적 경험의 감각적 요소들을 느끼고 보고 들을’ 수 있지만 ‘이 경험을 소통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생리적으로 제어된다”(van der Kolk, Body 234).


언어 중심에서 신체 중심으로 트라우마 심리치료의 경향이 바뀌다

최근 트라우마 치유의 동향은 언어 중심의 심리치료에서 신체 중심의 심리치료로 이동하는 추세이다. 신체 감각을 쉽게 알아차리게 해주는 치료적 개입은 트라우마 치료 분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문가 대부분은 내담자가 자신의 감각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그리고 서서히 경험하도록 돕는 일이 트라우마 증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Aposhyan, 2004; Bakal,1999; Ogden & Minton, 2000). 왜냐하면 정동조절(기분 조절)이 되지 않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외상적 기억에 접근하면 공포 자극을 느끼게 되고, 편도체가활성화되면서 사건을 경험했던 당시의 고통스러운 정서나 신체 감각, 생각들이 물밀듯이 넘쳐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라우마 치료는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안정화라는 기본 단계의 치료를 거친 다음에 기억을 노출하고 통합하는 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보건복지부 국립서울병원, 2015).

국립서울병원에서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안정화 기법을 연구했는데, 치료 과정 중에 ‘현실에 머무르기’, ‘현실로 돌아오기’ 연습과 안전지대를 찾는 심상 유도법이 있다. 안전한 장소를 찾는 데는 시각, 청각, 후각을 비롯해 신체 감각적인 요소를 활용하는데, 이 과정을 숲에서 진행하면 숲의 여러 치유요소와 결합해 더욱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산림을 이루고 있는 녹색은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산림의 계절감은 주의력을 자연스럽게 집중시킨다. 

숲속 공기에 존재하는 휘발성의 피톤치드는 후각을 자극하고,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나 바람에 잎사귀가 부딪는 소리 등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백색소리(white sound) 효과가 있다. 또한 자외선(UVB) 차단 효과가 뛰어난 숲속 햇빛으로 신체의 오감을 통한 자각상태를 높임으로써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게 한다.
 

▲ 숲은 지금-여기의 감각을 깨우는 최적의 장소이다.(사진_게티이미지)


숲은 신체 중심의 심리치료에 가장 적합한 장소

숲은 지금-여기의 감각을 깨우는 최적의 장소이다. 《내 몸을 치유하는 숲》의 저자 우에하라 이와오는 산림요법의 정의를 “산림욕으로 대표되는 숲 레크리에이션을 비롯해 숲속을 산책하며 실시하는 상담과 그룹 치료 등 산림환경을 이용하면서 건강을 증진하는 테라피를 의미한다”라고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에 따르면, 산림치유는 자연환경 가운데서도 숲의 다양한 물리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를 활용하여 인간의 심신을 더 건강하게 하는 자연요법의 한 부분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산림치유란 자연의 산림을 통해 인간이 몸과 마음의 쾌적성과 안정감을 높이고, 각종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과 면역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산림이 제공하는 물리적 자극과 화학적 자극에 따른 건강증진 효과를 이용해 현대인들의 생활습관병과 환경으로 인한 질환 증상 등을 완화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다.


산림치유에서의 안정화 기법

트라우마 증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산림치유는 먼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안정화 하는 기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 자꾸 안 좋은 기억으로 빠지거나 멍해지거나 현실감이 없어질 때 숲의 치유자원(경치, 숲의 소리와 향기, 햇빛, 음이온 등)을 활용해 지금-여기의 감각을 깨운다. 

예를 들어, 주변에 보이는 것 다섯 가지 말하기, 주변에 들리는 것 다섯 가지 말하기, 몸의 느낌 말하기(맨발로 흙을 밟는 느낌, 산소가 풍부한 공기를 호흡하는 느낌, 피부에 바람이 스치는 느낌 등)를 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습관적으로 올라오는 기억에 빠지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면서 몸과 마음을 안정화할 수 있다.

둘째, 안전지대를 찾는 심상 유도법을 활용할 수 있다. “안전한 장소를 떠 올려보세요”라는 말에 따라 눈을 감고 자신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를 찾는다. 이 장소는 상태가 불안정해질 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공간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연이 주는 시각, 청각, 후각적 자극이 풍부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숲은 심리적 안전지대로서도 매우 적합하다.


대부분의 스트레스 반응과 심리질환 치료에 적용 가능한 산림치유

산림치유는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건을 경험한 후에 발생하는 적응장애나 불안장애를 비롯해 정신과 신체에 나타나는 불안정한 반응 등에도 동일하게 사용될 수 있다. 

대부분의 심리적인 문제나 정신질환이 스트레스에 의해 유발되고 악화되고 지속되므로 산림치유의 활용도는 매우 광범위 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신과 질환으로 진단될 정도의 스트레스 반응이나 부적응적인 심리 상태에도 적용 가능하다(보건복지부 국립서울병원, 2015).

산림치유 프로그램에는 숲속 맨발 걷기, 호흡, 명상, 요가 등 오감을 통해 자연과 몸을 연결하고 뇌 감각을 깨우는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다. 이 같은 활동은 스트레스 상황에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내적 안정감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산림치유의 경우처럼 몸을 매개로 하는 체험을 통해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심신의 감각과 지각을 활성화하는 ‘신체지각’은 중요한 치유기제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해 트라우마 치유효과를 증진시키기를 기대한다.


글_박계홍 명지전문대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산림치유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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