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쓴맛 나는 식물성 화학물질이 뇌와 몸에 미치는 영향 ⓒ게티이미지
우리의 뇌는 맛에 반응하여 정교하게 조절된다. 맛은 혀의 감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분, 사고,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기본 맛에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의 다섯 가지가 있다. 이들 맛의 조합으로 우리는 매일 혀끝의 향연을 경험하며, 삶의 활력을 공급받는다.
맛은 식품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므로 식품 산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식재료에 포함된 다양한 수준의 쓴맛을 없애 소비자들에게 선호도 높은 식품을 만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페놀, 플라보노이드, 이소플라본, 테르펜 및 글루코시놀레이트 같은 식물성 화학물질들이 제거되었다. 그런데 이들 쓴맛을 내는 성분의 유용성에 대한 연구가 점차 심화하면서 쓴맛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활용이 강조되고 있다.
쓴맛 나는 식물성 화학물질들의 재발견
식물은 쓴맛이 나는 화학물질을 생산해 자신을 먹으려는 포식자의 구미를 잃게 한다. 이는 미생물이나 곤충, 해충 등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들의 전략이다. 그런데 이러한 쓴맛나는 식물성 화학물질들이 항산화 및 항암 특성을 보이며 광범위한 종양을 예방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쓴맛이 나는 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상 긍정적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구 기반 연구에 따르면 플라보노이드(아피게닌, 캠페롤, 루테올린, 마이리케틴, 케르세틴 등)의 섭취량이 많을수록 관상동맥 심장질환의 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피게닌은 파슬리, 카모마일, 셀러리, 시금치, 아티초크 등에 많이 함유되어 있고, 캠페롤은 시금치, 케일, 부추, 사철쑥 같은 녹색 잎채소에 많다.
또한 루테올린은 셀러리, 파슬리, 브로콜리, 양파, 당근, 후추, 양배추, 사과껍질, 국화꽃에 많이 함유되어 있고, 마이리케틴은 딸기와 시금치에 많다. 케르세틴은 올리브오일, 포도, 블루베리, 블랙베리에 많이 들어있다.
다양한 종류의 채소와 과일에 플라보노이드가 함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많이 자생하는 황칠나무의 경우도 케르세틴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한국 고유 약용식물로서 활용이 기대된다.
쓴맛 나는 식물과 건강에 대한 또 다른 연구사례로 식물성 플라보노이드와 LDL(Low density lipoprotein, 저밀도 지단백질 콜레스테롤)의 영향 관계를 들 수 있다. 산화된 LDL은 동맥경화의 주범이다. 그런데 식물성 플라보노이드는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활성산소의 피해를 감소시켜 LDL이 산화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식물성 플라보노이드
쓴맛을 포함하여 미각을 자극하는 화학물질들은 혀와 입천장 상피에 미각수용체 세포에 의해 처음 인식된다. 활성화된 미각수용체 세포는 뇌로 향하는 감각신경에 신호를 보내며, 신호는 뇌신경을 따라 이동해 뇌간의 고립로핵에서 시냅스를 형성하여 뇌로 들어간다. 이후 정보는 시상으로 전달되고, 미각피질(뇌섬엽 피질의 중간배측 영역)로 이동하여 미각에 상응하는 신경세포 집단에 도달한다. 즉 쓴맛의 정보는 쓴맛미각피질의 신경세포에 도달하며, 단맛의 정보는 단맛미각피질의 신경세포에 도달한다.
fMRI를 사용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앞쪽과 중간 부위의 뇌섬엽 영역에서 단맛과 쓴맛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설치류에서 연구된 결과와 대조적으로, 연구자들은 각 맛에 대해 뚜렷한 활성화 클러스터를 발견할 수 없었다. 클러스터가 겹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인간은 설치류보다 더 복잡한 ‘맛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단맛과 쓴맛의 농도에 대한 뇌활성화 연구에서 맛의 농도가 높을수록 오른쪽 뇌섬엽 내에서 더 위쪽으로, 왼쪽 뇌섬엽 내에서 더 앞쪽으로 활성화가 이동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 쓴맛의 섭취는 호르몬 분비를 변화시켜 식욕을 감소시킨다. ⓒ게티이미지
쓴맛이 식욕을 억제하는 회로들
쓴맛의 섭취는 호르몬 분비를 변화시켜 식욕을 감소시킨다. 사람의 위장에 존재하는 장내분비세포는 쓴맛 수용체를 발현하는데, 이 쓴맛 수용체가 활성화되면 장내분비세포에서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CCK(Cholecystokinin), GLP-1(glucagon-like peptide-1)의 분비가 증가해 식욕이 억제된다.
CCK 분비는 식이 지방과 단백질에 반응하여 소장 세포에서 분비되며, 음식 섭취를 억제하는 호르몬으로 작용한다. 임상연구에서 건강한 여성이 쓴맛을 가진 퀴닌quinine을 섭취했을 때 플라시보 섭취에 비해 혈장 내 CCK의 수치가 유의미하게 증가했고, 칼로리 섭취가 감소했다.
GLP-1은 포만감을 증진시키고 위 배출을 지연시키는 기능이 있는 호르몬으로서 장내분비세포에 의해 식사 후 분비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슐린 방출을 자극하며 혈당 수치를 낮추는 중요한 호르몬이다. 최근 실험에서 쓴맛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 특정 물질을 비만 쥐에 투여 시 GLP-1의 방출을 자극하고, 혈당에 대한 인슐린 반응을 향상시키며, 체중 및 체지방 감소, 내당능 향상, 혈장의 지질 수준을 정상화시킨다는 놀라운 결과가 보고 되었다.
반면 쓴맛의 섭취는 식욕을 촉진시키는 위장 호르몬인 그렐린과 모틸린의 분비를 감소시킨다. 쓴맛이 나는 벤조산 데나토늄(denatonium benzoate) 또는 퀴닌의 위 내 투여는 혈장에서 식욕을 촉진하는 위장 호르몬인 그렐린과 모틸린의 수준을 감소시키고, 소화 중의 위 운동과 배고픔을 느끼는 정도도 감소시킨다. 이렇게 쓴맛의 섭취는 위장에서 식욕 억제 호르몬의 분비를 돕고, 식욕 촉진 호르몬의 분비를 감소시킬 뿐 아니라, 다양한 뇌의 영역을 조절하여 식욕을 감소시킨다.
쓴맛을 활용한 뇌기능 향상법
PET, fMRI 연구에 따르면, 건강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쓴맛은 맛이 나지 않는 용액에 비해 편도체, 안와전두피질, 배외측 전전두엽, 이마덮개, 양측 복외측 전전두엽을 더 강하게 활성화했고, 이것은 식욕 감소와 관련이 있었다. EEG 연구에서도 중립적인 맛에 비해 쓴맛이 고열량 식품 이미지를 보았을 때의 식욕을 감소시켰고, 뇌파의 변화를 수반했다.
우리의 혀는 단맛에 비해 쓴맛을 감지하는 역치가 매우 낮다. 즉 인간은 아주 적은 양으로도 쓴맛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쓴맛의 감각은 단맛, 짠맛, 신맛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
이러한 쓴맛의 특징은 뇌기능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집중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질환을 예방하는 것은 일상의 삶에서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불안해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면서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의식에 달려있다. 의식을 현재에 머물게 하는 것은 자신의 호흡이나 손의 온도에 집중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할 수 있다.
쓴맛을 활용할 수도 있다. 쓴맛이 나는 잎을 우린 차를 한 모금 머금고 그 맛을 느끼는 것은 의식을 현재에 머물게 하면서 뇌 기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쓴맛 나는 잎을 조금 씹어도 좋다. 쓴맛의 자극이 침 분비를 유도하고, 이는 심신을 이완시키는 부교감신경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인간은 아주 적은 양의 쓴맛도 즉시 느끼고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바쁜 일상 중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쓴맛을 활용하면 좋은 뇌 휴식법이 될 수 있다. 맛은 쓰지만 그것이 주는 휴식은 편안하고 달콤할 것이다.
글. 양현정 한국뇌과학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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