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리뷰] 문어의 뇌에서 발견한 인간의 지능 유전자

[뇌과학 리뷰] 문어의 뇌에서 발견한 인간의 지능 유전자

3개의 심장과 9개의 뇌를 가진 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하여

브레인 95호
2022년 10월 27일 (목)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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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사진.넷플릭스

2년쯤 전,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였다. 이 영상은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중년 남성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남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으로 돌아가 매일 바닷속 다시마숲 사이를 헤엄치다가 우연히 암컷 문어와 만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문어와 주인공 사이의 교감과 치유를 넘어 대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깊은 메시지를 전하며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비롯해 다수의 상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야생동물 중에서 주로 포유류를 위시한 척추동물과 교감을 나누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는 다수 있었으나, 무척추동물인 문어와 인간의 교감을 그린 작품은 드물었다. 

이 희귀한 영상을 보고 있으면 문어와의 교감이 주는 따뜻한 감동을 넘어 문어의 영리함 자체에 놀라게 된다. 과연 문어는 얼마나 똑똑한 것일까? 고차원적 인지나 문제해결 능력을 넘어, 인간이나 고등 포유류가 갖는 정서까지 가지고 있을까?
 

바다의 현자

문어는 기억력이 좋다. 생쥐 이상으로 미로도 잘 찾고, 길도 잘 기억한다. 도구도 잘 다룬다. 유리병의 뚜껑 정도는 쉽게 돌려서 열고, 코코넛 껍질이나 큰 조개껍데기를 들고 다니다가 천적이 나타나면 그 속에 숨기도 한다. 

척추동물 중에서 도구를 다루는 동물은 원숭이나 돌고래, 까마귀 정도밖에 없다. 문어는 지루해지면 주위의 부유물이나 작은 물고기를 가지고 ‘장난’도 친다. 이전까지 ‘놀이’는 고등 포유류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었다. 

문어는 사람 얼굴도 기억할 수 있다. 2010년에 수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2주간 한 사람은 문어에게 먹이를 주고 다른 사람은 까칠한 막대기로 문어를 괴롭힌 결과, 먹이를 준 사람에게는 경계 없이 다가가고, 괴롭히는 사람에게는 멀리 떨어지며 경계의 보호색을 띠었다. 실험자가 매일 옷을 바꿔 입어도 같은 결과를 보였다.

문어는 위장술도 뛰어나다. 복잡한 피부조직을 이용해 주위의 색뿐 아니라 패턴, 질감까지 몇 초 만에 흉내 낼 수 있다. 1시간 동안에 무려 평균 177번이나 색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문어가 놀랍도록 똑똑하고 괴이하다고 생각한 한 과학자는 이 연체동물이 우주에서 온 바이러스에 의해 생겨난 돌연변이이거나, 아예 외계에서 온 생물일 수 있다는 주장을 과학저널에 발표하기도 했다.
 

▲ 문어가 보호색을 빠르게 바꾸는 16초 영상을 12프레임으로 나눈 사진


3개의 심장, 9개의 뇌를 가진 외계 생물체?

문어의 구조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외계 생물체라고 믿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심장이 3개이다. 몸 전체로 피를 보내는 심장 1개, 아가미로 피를 보내는 심장 2개가 있다.

피도 척추동물과 달리 파랑색이다. 척추동물의 혈액 
속 헤모글로빈처럼 이 연체동물의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금속단백질 헤모시아닌이 파란색 구리를 가지고 있어서이다. 

또 온몸의 피부를 통해 빛과 색을 인지할 수 있다. 원래 문어의 눈은 시력이 카메라처럼 정확하지만 색맹인 것으로 알려져 어떻게 주위 환경에 맞춰 몸의 색을 바꿀 수 있는지가 수수께끼였는데, 2015년 연구로 피부 전체에 광수용체가 분포되어 있어 자체적으로 빛과 색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빨판마다 화학수용체가 있어 8개의 팔로 사물을 만지면서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무척추동물 중에서는 뇌가 신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으며, 잠을 자는 패턴도 인간의 렘REM/논렘non-REM 수면과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심지어 REM 수면과 비슷한 상태에서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피부의 색과 패턴을 끊임없이 바꾼다. 

문어의 뉴런 개수는 약 5억 개로 토끼나 올빼미와 비슷하다. 그런데 뉴런 대부분이 뇌에 모여 있는 척추동물과 달리, 문어는 뉴런의 3분의 2 이상이 8개의 팔에 분포한다.

문어의 뉴런은 척추동물에 비해 미엘린 수초가 부족하여 신호전달 속도와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배적인 중앙 신경망을 구축하는 대신 지역 신경망에 더 의존하는 전략을 택했다.

즉 문어의 8개 팔에 미니 뇌가 하나씩 있어 각각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 문어는 마치 머리에 하나, 팔에 하나씩 전부 9개의 뇌가 있는 것과 같다. 
 

문어의 뇌에 있는 인간의 유전자

문어의 높은 지능의 비밀은 유전자 수준에서도 밝혀지고 있다. 2015년 연구에서 캘리포니아 ‘두점박이 어(Octopus bimaculoides)’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유전자 수는 27억 쌍 염기서열로 30억 쌍의 인간과 비슷하고 단백질 코딩 유전자는 3만 3천 개로 2만 5천 개인 인간보다 더 많았다. 

최근에는 문어의 뇌에서 인간이 가진 특정 유전자가 발견됐다. 인간의 게놈에는 점핑 유전자(Transposon)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름에 붙은 ‘점핑’이 의미하듯 어디든지 이동하고 복사될 수 있는 유전자이며, 인간 게놈의 45퍼센트가 이 점핑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돌연변이나 세포의 방어기제 등에 의해 휴면상태를 유지한다. 그중 드물게 활성상태를 유지하는 점핑유전자를 LINE(Long Interspersed Nuclear Elements) 유전자라 하
는데, 인간을 포함한 유인원의 진화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LINE 유전자는 특히 해마에서 강한 활동이 포착되어 학습, 기억 등의 활동에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바로 이 LINE 유전자가 문어의 뇌에서도 발견된 것이다. 캘리포니아 두점박이 문어와 참문어(Octopus vulgaris)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이 문어들의 뇌, 특히 학습과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수직엽(vertical lobe)에서 LINE 유전자의 활동이 강하게 포착되었다.

이 발견은 LINE 유전자가 인지, 기억, 학습 등의 활동과 연관 있을 뿐 아니라 문어의 높은 지능에도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또한 문어가 고등 포유류처럼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고, 상황을 
기억하고 예측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생물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 문어 뇌 각부위에서 발견된 LINE유전자


문어도 우리처럼 고통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기억한다

최근 스페인계 한 기업이 2023년 세계 최초로 양식 문어 판매를 개시한다고 밝히자 동물보호 단체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문어는 고통을 인지하고 지각력이 있으며 독립생활을 하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양식은 문어에게 평생 고통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동물보호법은 주로 포유류를 비롯한 척추동물만이 대상이었으나, 문어처럼 지능이 높은 두족류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어 이들도 높은 지능과 충분한 지각능력이 있음이 
밝혀졌고, 이에 두족류도 동물보호법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을 기르거나 채집하거나 요리할 때 최대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족류의 행동학 전문가인 레스브릿지대학의 제니퍼 매더 교수가 전한 문어가 산 채로 먹힐 때 느끼는 고통에 대한 묘사는 끔찍하다. 

“두족류는 척추동물처럼 고통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런 상황들을 기억한다. 이들은 생으로 조각나서 먹힐 때 고통을 느낀다. 특히 8개의 팔이 ‘미니 뇌’라 불릴 정도로 신경계가 분산되어 있어 강한 고통이 지속된다.

예를 들어 사람이나 척추동물의 경우 신체의 일부가 잘린다면 두뇌와의 연결이 끊겨 그 일부가 먹히는 동안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두족류는 분산된 신경계가 신체 일부에 남아 씹히는 내내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올해 영국에서는 실제로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척추동물인 문어나 게 등을 ‘지각 있는 존재’로 인정하고 보호대상에 포함하는 동물복지법 개정안이 의결되었다.

스위스에서는 바닷가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바로 넣거나, 얼음물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척추동물만 동물보호법의 대상이지만, 앞으로 그 대상이 확대돼 ‘산낙지’ 같은 일부 요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사회적으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동물보호법의 대상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등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문어를 비롯한 무척추동물의 생태, 특히 뇌에 대한 연구성과가 쌓여가면서 이루어졌다. 뇌에 대한 탐구는 비단 우리 인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헤아리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글. 성민규 한국뇌과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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