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판타지 영화란 오직 '반지의 제왕(The King of the Ring)' 뿐이라 여겼건만…그런 언니가 11월 20일 새로운 판타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극장 나들이를 계획했다. 언니를 움직인 것은 바로 영화 '헝거게임(Hunger Games)'. 수잔 콜린스의 판타지 소설 《헝거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이미 두 편의 시리즈가 개봉했었고 이번이 세 번째 시리즈 '헝거게임: 모킹제이'이다.
전편을 모두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널리고 널린 1, 2편에 대한 온갖 리뷰를 섭렵하며 '헝거게임'의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 것은 한 권의 책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조지 A. 던, 니콜라스 미슈. 한문화)이다. '철학'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뇌가 섹시해지는 듯한 자극을 받는 언니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딱' 아니겠는가.
▲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조지 A. 던, 니콜라스 미슈. 한문화)
우선 영화 '헝거게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 영화는 머지않은 미래, 공간적으로는 북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륙에 자리한 나라의 이름은 '판엠', 독재국가이다. 판엠은 수도 '캐피톨'에 모든 부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12개 구역은 각각 농업, 임업 등 주어진 생산활동만 할 수 있는 식민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독재국가인 판엠, 그 안에서도 캐피톨에 집중된 부와 권력에 저항하여 반란이 일어났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던 것. 그 결과 피비린내 나는 공포 정치가 시작되었고 그 상징으로 각 구역에서 남녀 10대 한 쌍씩 24명이 한자리에 모여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경기 '헝거게임'이 매년 진행된다. 동생을 대신해 이 게임에 자원한 주인공 캣니스를 중심으로 하여 죽음을 오락으로 여기며 즐기는 캐피톨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혁명이 시작된다.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다. 약자이지만 심성이 바르고 곧은 주인공이 역경을 헤치고 악(惡)의 근원에서 영웅이 되어 혁명을 이끌어낸다. 쉽게 예상 가능한 구성의 영화, 그것도 미래의 독재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영화를 통해 무엇을 '철학'할 수 있다는 말일까.
영화 속 캣니스는 허구의 시대, 허구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상황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극히 현실이라 여기는 이 세상에 대입시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락을 위해 아이들이 살육되고, 폭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부자가 웃으면서 굶주린 노동자를 구경하는, 이토록 불의한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당당하게 '인간'이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책은 플라톤, 칸트, 푸코, 부르디외 등 다양한 시대를 사유했던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헝거게임' 속 이야기를 오늘 우리에게 풀어낸다.
언니가 특히 집중한 부분은 바로 지난 몇 년간 미국과 아시아에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헝거게임'은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그 자체이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금과옥조로 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세상인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캣니스가 자신에게 주어진 '헝거게임'이라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듯이, 언니 역시 한번 물어보고 싶어졌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이 세상이 내가 원한 세상인가?'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는 이를 풀어내기 위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등장시킨다. 찰스 다윈은 공감과 배려, 협력, 양심 등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꼽았다. 캣니스가 헝거게임의 승자가 되는 이유 역시 '진화의 산물'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나은 세상, 좀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인성이 그 어떤 능력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화 '헝거게임'의 세 번째 시리즈인 '헝거게임: 모킹제이'에서는 모든 약자의 희망이 된 캣니스가 세상을 구할 반격을 시작한다. 언니와 함께 혁명의 아이콘 캣니스를 통해 내가 사는 세상, 세상 속 나에 대해 묻고 또 답해보는 것은 어떨까. 다음 주 '언니네 책방'에서는 영화 '헝거게임: 모킹제이'와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 이야기를 함께 해보겠다.
글. 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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