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00억 스마트폰 연구보다 더 중요한것은?

한국, 2000억 스마트폰 연구보다 더 중요한것은?

[대한민국, 인성에서 길을 찾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 인터뷰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모인 사람이 단 몇 명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지금까지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어 왔다.”

여기 파란 눈의 미국인이 있다. 그는 예일대, 동경대, 하버드 대학원을 거쳐 대만국립대, 서울대까지 세계에서 손꼽는 명문대에서 두루 공부하며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한국인도 잘 모르는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의 철학을 꿰고 있으며, 홍익인간 정신이 한국인은 물론 인류를 위한 큰 지침이 될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비롯해 세 권의 책을 내며 대한민국 사회에 ‘변화’의 들불을 키워가고 있다.

▲ '대한민국, 인성에서 길을 찾다' 세 번째 주인공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경희대,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 교수(경희대,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를 지난 10월 17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났다.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큰 키의 그가 만나자마자 건넨 명함에는 ‘李萬烈(이만열)’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한자로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본명보다 한국식 이름이 먼저 있다고 했더니 그는 능숙한 우리말로 "장인어른이 지어주셨다”며 웃으며 말했다. 


-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에게 “같이 연구해보자”며 먼저 제안해왔다. 인연이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한국에 산 지 거의 8년이 다 되어간다. 원래 중국, 일본 고전문학을 오랫동안 연구했었다. 미국에서 일본 문학 전공교수를 10년 정도 했었고. 그런데 그 나라(일본)에서는 내게 “같이 연구해보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웃음) 

한국과 잘 맞다. 어머니는 강대국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왔고, 아버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헝가리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다가 100년 전 미국에 이민 온 유대인이다. 두 분 모두 미국에서 살아왔지만 강대국 사이에서, 그리고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한국인처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점이 내게도 있는 것 같다.

학문적으로 보자면 중국과 일본 문학을 공부하면서 왠지 나도 모르게 뭔가 좀 허전하고 비어 있다는 느낌이 문득문득 들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창 공부할 때 한국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음…정확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웃음) 사고방식도 한국 사람들과 비슷하고 편하다.


- 지난 9월 22일 서울 경기고에서 진행된 ‘인성영재포럼’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역사와 철학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말하는 것인가.

홍익인간 정신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삼국유사》에서 읽었다. 위대한 정신이다. 또 꼽자면 선비 정신이다. 특히 내가 감동 받은 것은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이다.

나는 학자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 그저 연구하고 논문 쓰는 것으로 역할이 끝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식인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갖고 역할을 하는 사람, 언행합일(言行合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모델이 내게는 다산과 연암이다.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항상 서민의 생활에 관심 두고 국가 정책을 고민했다. 이를 책으로도 남기고 교육도 하며 실천했다. 사회에 대한 큰 사명감으로 정확하게 세상을 보고 지식인으로서 실천적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내가 큰 영감을 받았다. 이런 인물들이야말로 홍익인간의 전통을 계승한 것 아니겠는가. 

홍익인간, 선비정신, 언행합일. 꼭 이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지금도 한국 사회에는 면면이 이런 유산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도 문제가 많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런 문제들이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물질적인 소비문화가 무척 심해졌다. 


- 최근 몇 년이라 하면 한국어 저서(일반서 3권)를 낸 시기와도 겹친다. 
(그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2011), 《세계의 석학들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2012),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013)을 썼다)

인문학자로서, 한국의 고전에 감동 받은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보통 외국인 교수는 그런 책 안 쓴다. 주로 영어 논문을 쓴다. 그리고 이런 일반서는 학교에서도 연구업적으로 치지 않는다. 논문을 써서 학술지에 등재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낸 것은 돈이 되거나, 연구에 도움이 되거나 그런 이유로 한 것이 아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이고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일이다.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경희대,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

- 저서를 통해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프랑스 18세기 소설을 즐겨 읽고 잘 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아니다. 영국이나 미국 18세기 소설은 쉽게 읽는데 연암이나 다산의 책은 읽지 않는다. 번역이 부족한 것도 한 이유다. 번역된 것도 재미없는 것이 많고. 연암의 작품이 책으로 나와서 성공했지만 그것은 한국 전통 사상의 일부일 뿐이다. (연암의 작품 몇 편의 번역으로 한국의 전통 철학, 사상을 모두 알 수는 없다)

한국은 역사적으로는 근대화 과정에서 식민지를 겪으면서 일본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전통에 대한 나쁜 점만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전통문화에 대한 심각한 단절이 생겼다. 남북 분단으로 지리적으로도 단절되었다. 분단된 나라는 어쩔 수 없이 문화적인 왜곡을 갖게 된다. (평소에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북한은 항상 있다. 한국인의 의식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같은 민족이지만 타자(他者)인 존재가 있다.

이런 단절은 국가 차원에서의 변화로 해소될 수 있으리라 본다. 단기적 시각에서 장기적 관점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국가 정책이 아무리 바람직하고 좋아도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실행되기 어렵다면 유명무실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조선왕조는 정책을 100년, 200년 단위로 내다보고 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 바뀌면 다 바뀌어버린다. 정책 하나를 1~2년 지속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한국의 옛 지식인들은 정신적인 자원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했다. 방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잠깐 밖에 나가 산책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지금처럼 비싼 집에 살고 비싼 차에 비싼 옷을 입고 다녀야 즐거운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정신적인 자원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홍익인간 아니겠는가.


- 과거에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며 살았다면, 요즘은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 같다. 이를 두고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고도 한다.

그렇다.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기계화’된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그 속도가 엄청나다. 인간의 발전은 그에 비해 매우 점진적이다. 30년 전만 해도 세상에 컴퓨터는 없었다. 20년 전에는 휴대폰이 없었고 10년 전에는 구글(Google)이 없었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인간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컴퓨터를 안 쓸 수 없는 세상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는 변화다. 예전의 삶을 고수하고 싶지만 중력같이 그 변화에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경희대,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

-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교육에 대한 철학도 중요시한다고 들었다.

좋은 대학에 가면 성공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좋은 대학, 좋은 기업에 취직해도 2~3년 내에 퇴직당할 수 있다. 그동안 공부만 하고 다른 경험이 없다면 이렇게 급속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실적인 변화에 유연하게 맞춰나갈 수 있는 교육, 살아남기 위한 생존 교육이 필요하다. 문제를 푸는 힘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인간에게는 의미 있는 인생이 가장 중요하다. 의미 없는 삶은 허무한 삶이다. 한국 역사, 전통 속에는 의미 있는 인생의 해답을 찾을 좋은 재료가 상당히 많다. 지속가능한 정책, 환경 문제, 100년을 내다보는 결정 등.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당장 돈 벌고 지금 당장 내 몫만 생각한다. 그래서 어렵다.


- 대한민국이 놓치지 않고 유지, 발전시켜 세계적 유산으로 발전시켰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예를 들면 아프리카 마을에서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 “나는 우리 마을의 세종대왕 같은 지도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통적인 정신을 가진 인물들을 널리 알리자.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 세계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게 (인류를 위해) 한국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본다. 

그게 가능해지려면 먼저 한국인이 알아야 한다. 나는 한국의 국학(國學)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이 스스로 역사와 전통을 알고 그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스마트폰에는 2,000억 원을 투자하면서 고전 번역이나 홍익인간 연구에는 2,000억을 투자하지 않는다. 한국의 전통, 고유한 철학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해외에서 한국학은 아주 미비하다. 스마트폰보다 한국의 고유한 역사 문화 철학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리고 이를 널리 알리고 전하기 위해 프랑스인 한국 철학 전문가, 아프리카인 한국 역사 전문가를 지원하고 양성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한국의 유산이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유산이 되고 미래 세대를 위한 귀한 지침이 될 것이다.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Emanuel Pastreich, 이만열) 교수는…

 1964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출생. 예일대 중문학 학사 학위(1987), 동경대 비교문화학 석사 학위(1992),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 학위 취득(1997). 일리노이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조지 워싱턴대 역사학과 겸임교수, 우송대 솔브릿지 국제경영학부 교수 역임. 외교통상부가 운영하는 정책 싱크탱크인 주미한국대사관 홍보원 이사 역임. 현재 경희대학교 국제대학 교수 겸 아시아 인스티튜트 소장으로 재직. 다양한 일간신문에 필진으로 활동.  



글/사진. 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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