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말하는 지금, 다시 묻는다 "Who am I?"

인공지능을 말하는 지금, 다시 묻는다 "Who am I?"

[브레인 영화관] 영화 트렌센던스(Transcendence), 그리고 영화 그녀(Her)

브레인 47호
2014년 09월 26일 (금)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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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다루는 영화가 봇물 터지듯 개봉하고 있다. 영화 <트렌센던스(Transcendence)>와 <엣지 오브 투마로우(Edge of Tomorrow)>, <그녀(Her)>, <트랜스포머(Transformer)>까지. 좀 더 거슬러 오르자면 아이언맨(Iron Man)>도 이 중 하나 아니겠는가. 이 중 <트렌센던스>와 <그녀>를 통해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트렌센던스> ㅣ “인류는 늘 신을 창조해왔습니다.”

영화 도입 부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윌 캐스터(조니 뎁 분)는 자신이 연구 개발 중인 슈퍼컴퓨터에 관해 이야기한다. ‘트렌센던스’라고 부르는 이 슈퍼컴퓨터가 완성되면 역사상 존재하는 모든 인류의 지능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객석에서 한 남자가 일어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신(神)을 창조하려는 것인가요?”

그 남자는 모든 것을 초월하게 될 존재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학자에게 약간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윌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답한다.

“인류는 늘 신을 창조해왔습니다.”

영화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켜나가는 과학자들이 등장하고 이러한 기술 발전을 반대하는 반(反) 과학 집단이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 기술에 대한 경계는 언제나 영화계의 좋은 소재거리가 되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렌센던스 >는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간다.  바로 ‘신’의 존재 말이다. ‘신’이란 무엇인가? 신이라 하면 대개 우리는 종교적 대상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면 거의 모든 것이 신이었다. 태양, 바다, 천둥, 바위 등 거의 모든 것이 신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떻게 태양이 뜨고 바다에 파도가 치는지,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지 그 원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토속신앙으로 자연을 숭배하는 경우는 있으나 더 이상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도 이에 대한 부분이 등장한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아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이 미지의 세계를 ‘뇌’로 보고 있다. 인간의 ‘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엄청난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만나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한민족이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한민족의 3대 경전 중 하나인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뇌에는 이미 하늘이 내려와 있다’고 하는 '강재이뇌신(降在爾腦神)’ 사상이 등장한다. ‘신’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미지의 무엇이나, 종교적인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뇌’라는 것이다.


<그녀> ㅣ 내 곁에 있는 당신에게 감사를 

주인공 시어도어(호아킨 피닉스 분)는 부인 캐서린과 별거 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며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해온 캐서린과 별거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캐서린이 없는 일상은 제 것이 아니라 잠시 남의 것을 빌린 듯이, 그저 무료하고 단조롭게, 겨우 숨만 쉬며 살아가고 있었다. 

외로움에 사 묻히던 어느 날, 시어도어는 광고 한 편을 보게 된다. “세계 최초 인공지능 운영체제를 선보입니다.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아는 직관적인 실체죠. 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의식입니다. 소개합니다. ‘OS1’”

무척이나 유능한 ‘비서’를 둔 고용주처럼 시작된 둘의 관계는 서로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이내 ‘친구’가 된다. 직관(intuition)을 갖고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OS1은 스스로를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연기)’라 이름 짓는다. 그가 OS1에게로 다가와 ‘사만다’라 불러주자 이내 꽃을 피워내며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고, 시어도어와 자신의 관계를 정의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돌싱남 시어도어와 호기심 많은 처녀 사만다의 흔하디 흔한 사랑이야기이건만, 사람과 프로그램은 다르다. 제아무리 직관을 가진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몸을 갖고 있기에 유한한 인간과 ‘전기신호’로 이루어진 무한한 프로그램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도어와 사만다는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서로의 ‘다름’은 그들에게 호기심과 배려, 갈등이라는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발현될 뿐이다. 


그 누구도 어제, 1시간 전의 자신이 될 수 없다. 이는 인간도 인공지능도 모두 같다. 계속 진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만다의 진화 속도가 시어도어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는 것. 결국 엄청난 속도로 확장하고 또 진화해나가는 사만다의 ‘사랑’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시어도어는 결국 끝을 맞이한다. 

영화는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그려낸다. 인간의 의식이 전기 신호로 컴퓨터에 업로드 되고 나아가 온라인을 통해 무한 확장을 해낼 일도, 지금은 스마트폰을 통해 날씨나 길을 묻고 답하는 수준인 ‘시리’가 ‘사만다’가 되어 깊은 교감이 필요한 사랑을 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바로 ‘인간’ 자체에 대한 고민이다. 기술 발전은 이미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달려가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 기술을 온전히 인류 공영을 위해 활용하기 위한 작업이다. 바로 정보처리기술 말이다. 

뇌교육은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정보의 질과 양, 특히 질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양질의 정보를 선택할 것인가. 인공지능을 말하는 지금, 다시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가치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Who am I?  

글. 강만금 sierra_leon@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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