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면 나쁜 습관을 고치겠다고 다짐한다. 매일 마시던 퇴근길 맥주 한 캔을 끊겠다거나 스마트폰 스크롤 내리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결심이 그렇다.
우리가 ‘습관의 개선’을 말하는 선 안에서, 누군가는 인생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중독(Addiction)’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중독을 그저 ‘심각한 수준의 나쁜 습관’ 정도로 취급하며, “나약해 빠져서 의지가 없어.” 혀를 차곤 한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독은 습관과 본질부터가 다르다.
습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동을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나 버릇이다. 신경과학적 정의는 대뇌피질과 기저핵(Basal Ganglia)의 협업으로 형성된 '효율적인 자동화 시스템'이다. 뇌는 자주 반복되는 행동을 최소한의 에너지로 처리하기 위해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루틴으로 저장하는데, 이를 습관이라고 하며, 내 의지에 따라 행동을 수정하거나 그만둘 수 있는 통제력이 남아있는 상태를 뜻한다.
중독은 영어의 ‘에딕션(Addiction)’을 뜻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아디케레(Addicere)’로, 고대 사회에서 ‘빚 때문에 타인에게 몸을 양도하다, 노예가 되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즉, 의학적·사전적 의미의 중독은 단순히 무언가를 좋아해 자주 탐닉하는 상태가 아니다.
어떤 물질이나 행위가 주는 쾌감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며, 해로운 결과가 초래됨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조절 능력을 완전히 상실(Loss of Control)’하여 그 대상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어버린 만성적인 뇌 질환, 이것이 우리가 직면해야 할 중독의 진짜 얼굴이다.
‘불편한 버릇’과 ‘비자발적 생존’의 차이
일상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무심코 TV를 켜거나 스마트폰 숏폼 영상을 한 시간씩 보는 것은 ‘습관’이다. 뇌가 무의식적인 자동화 루틴을 돌리는 것이다.
비록 시간을 낭비했다는 후회는 남을지언정, 내일 중요한 면접이 있거나 가족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언제든 리모컨을 내려놓고 화면을 끌 수 있다. 이성적 브레이크를 담당하는 전두엽이 멀쩡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독과의 핵심적인 차이는 "이성적 브레이크(전두엽)가 작동하여 스스로 멈출 수 있는가?"에 있다.
반면, ‘중독’은 결이 완전히 다르다. 매일 밤 술을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으려 할 때,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손이 덜덜 떨리며 초조해지는 현상은 단순한 버릇이 아니다. 내일 당장 직장에서 해고당할 위기에 처해 있고, 가족들이 눈물로 호소하며 말려도 술병을 향해 손을 뻗는다.
뇌의 보상회로(Reward Pathway)가 완전히 고장 난 ‘뇌 손상’이다.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독 물질이 없을 때 찾아오는 지옥 같은 고통(금단 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뇌가 ‘이것이 없으면 당장 죽어.’ 비자발적 생존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즉, 습관은 ‘내가 원하면 언제든 조절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중독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장 난 뇌의 강박에 끌려가는 비자발적 노예 상태’다. 중독환자에게 물질을 갈구하는 행위는 물에 빠진 사람이 숨을 쉬려고 허우적대는 처절한 몸부림과 같다. 이를 두고 “의지가 부족하다.” 말하는 것은, 산소가 부족해서 숨을 헐떡이는 사람에게 “숨을 참아낼 이성적 의지가 없네.” 비난하는 것과 같다.
경계를 넘어선 진화: 습관도 중독이 되는가?
한 가지 짚고 들어가자면, 습관과 중독이 완전히 단절된 개념인가? 그렇지 않다. 둘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선 대신, 언제든 넘어갈 수 있는 위험한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처음에는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었던 단순한 습관이, 어떤 임계점을 지나면 뇌의 사령탑이 대뇌피질(이성)에서 보상회로(강박)로 넘어가며 중독으로 진화한다. ‘퇴근 후 맥주 한 캔’이 초기에는 고된 하루 끝에 느끼는 소소한 보상적 습관으로 건강검진이 있다면, 며칠쯤 쉽게 참아낸다.
그러나 일상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나 정서적 고립, 상실감을 겪으며 뇌의 방어선이 무너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뇌는 일상의 평범한 즐거움을 잊고 오직 알코올이 주는 강한 자극에만 도파민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양은 두 캔, 세 캔으로 늘어나고, 어느새 알코올이 공급되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불안해지는 신체적·정신적 의존 상태, 즉 ‘중독’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심심할 때, 주말에 재미 삼아, 출퇴근 길에 무심코 스마트폰 앱을 켜서 주식이나 코인 차트를 확인하는 습관이 형성된다. 우연히 큰 수익을 보거나, 반대로 큰 손실을 만회하려 할 때 강한 자극이 발생한다. 차트를 보는 빈도가 일하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까지 침범하고, 1분마다 차트를 보지 않으면 일상이 불가능해지며,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멈추지 못하는 ‘중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 습관의 고리는 단서(습관을 유발하는 계기), 행동/루틴(행동 그 자체), 보상(어떤 행동을 통해 얻는 이점)의 과정이 뇌세포, 기저핵 영역에 고속도로처럼 자동화된 경로를 만들고 하나의 덩어리로 습관을 형성한다.
결론적으로 중독은 통제할 수 있는 나쁜 습관이 아닌 통제권을 잃은 손상된 뇌 상태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든 끊을 수 있어”, “이번 한 번만 마시고 안 마시면 돼”라며 스스로 속인다. 뇌 회로가 망가져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말문이 막힌 이들에게, 붓을 쥐여주고 선을 그리게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언어는 거짓말을 하고 방어벽을 칠 수 있지만, 마비된 뇌가 손끝을 통해 캔버스에 쏟아내는 색채와 거친 질감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미술치료는 통제력을 잃고 오작동하는 뇌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말보다 먼저 가닿는 강력하고 정직한 치유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글. 어수경
임상미술치료학 박사, 미술치료수련전문가로 EO심리상담교육개발원 대표이다. 한국융합예술심리상담학회 상임이사, 학술위원을 맡고 있고, 서울대, 경희대, 차의과학대 출강 중이며, 저서로 『멈추는 연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