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알고리즘의 파도 속, 뇌가 닻을 내리는 법

[칼럼] 알고리즘의 파도 속, 뇌가 닻을 내리는 법

AI너머, 뇌가 전해주는 답

▲ 사진=Unsplash


AI는 이제 우리보다 먼저 답을 내놓는다. 냉장고 속 재료를 입력하면 저녁 메뉴를 추천하고, 자녀의 학습 계획을 세워주며, 복잡한 보고서와 이메일도 몇 초 만에 작성한다. 길 찾기부터 일정 관리, 정보 검색과 문장 작성까지 일상의 많은 부분을 AI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뇌까지 여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알림이 도착하고, 짧고 자극적인 영상과 뉴스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AI는 하나의 질문에도 수많은 답을 제시한다. 우리는 더 빨리 정보를 얻지만, 무엇이 정확한지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지 판단하느라 오히려 더 쉽게 지친다.

AI가 생각을 대신할수록 인간에게 사고가 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직접 판단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더 높은 수준의 생각이 필요하다. 이런 시대에 중요한 능력이 바로 ‘회복하는 뇌’다.

'회복하는 뇌'란 단순히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뇌가 아니다. 정보의 파도 속에서 흩어진 주의를 되찾고, 자동으로 제시되는 답 앞에서 잠시 멈추며, 실패와 변화 이후에도 새로운 방법을 배우는 뇌다. AI가 속도를 높여주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뇌에는 방향을 선택하고 의미를 찾으며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의 뇌에는 위험을 빠르게 감지하는 편도체가 있다. 편도체가 경보를 울리면 몸은 위협에 대응할 준비를 한다.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이 긴장하며 걱정과 불안이 커진다. 반면 전전두엽은 상황을 차분하게 판단하고, 충동을 조절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하도록 돕는다. 해마는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고 현재 상황을 과거의 경험과 구별하는 역할을 한다.

짧은 스트레스 반응은 위험에 대처하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긴장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뇌의 경보장치가 지나치게 민감해질 수 있다. 별 뜻 없이 온 메시지도 비난처럼 느껴지고, 작은 실수를 큰 실패로 받아들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계속 걱정하게 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방금 하려던 일을 잊으며 간단한 결정도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가정과 직장, 지쳐가는 두 얼굴

가정에서 살림과 돌봄을 맡은 사람은 이런 피로를 자주 경험할 수 있다. 아침부터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고, 자녀의 일정과 학습을 챙기며, 단체 대화방과 각종 생활정보를 확인한다. 잠깐 쉬려고 휴대전화를 열었지만, 화면에는 다른 가정의 정돈된 집과 자녀의 성취가 이어진다. AI는 완벽한 식단과 이상적인 학습 계획, 효율적인 살림법을 제시한다. 도움받기 위해 시작한 검색이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라는 압박으로 바뀐다.

아이에게 짜증을 낸 뒤 “나는 왜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까?”라고 자신을 책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짜증 아래에는 오랫동안 쌓인 피로와 “모든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불안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완벽한 계획표가 아니라 뇌의 경보를 잠시 낮추고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직장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AI가 보고서와 회의록, 이메일을 빠르게 작성해 주면서 업무가 줄어들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처리해야 할 일의 양이 더 많아지기도 한다. 여러 문서와 AI 창, 메신저를 동시에 열어놓고 일을 하다 보면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는데도 무엇에 집중했는지 기억하기 어렵다.

AI가 만든 자료를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채 사용했다가 오류를 발견하면 “나는 이제 AI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라는 불안도 생긴다. 그러나 문제는 AI를 사용했다는 데 있지 않다. 속도를 높이는 동안 질문하고 확인하며 판단하는 인간의 과정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다행히 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뇌는 반복되는 경험에 따라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을 바꾸고, 자주 사용하는 회로를 강화한다. 이를 신경가소성이라고 한다. 걱정과 회피, 자기 비난을 반복하면 그 반응이 익숙한 길이 될 수 있지만, 감정을 알아차리고 생각을 검토하며 몸을 움직이는 경험을 반복하면 새로운 대응 방식도 배울 수 있다.

회복은 상처가 없던 과거의 뇌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길은 거창한 결심보다 일상의 작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일상에서 뇌를 회복시키는 법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곧바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 좋다. 우선 화면에서 눈을 떼고 발이 바닥에 닿는 감각을 느껴본다. 편안한 범위에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조금 더 길게 내쉬면서 현재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본다.

“나는 지금 화가 난 것보다 무시당했다고 느끼는구나.”
“일이 어려운 것보다 실패할까 봐 두려운 것이구나.”
“아이의 행동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너무 지쳐 있었구나.”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정과 행동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에서 우리는 자동으로 반응하는 대신 어떻게 행동할지 선택할 수 있다.

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잠깐이라도 ‘화면 없는 섬’을 만드는 것이 좋다. 식사하는 동안 휴대전화를 다른 곳에 두고, 10분 정도 걸을 때는 영상이나 뉴스를 보지 않는다. 업무 중에는 일정한 시간 동안 알림을 끄고 하나의 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무조건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의를 어디에 둘지 스스로 결정하는 경험이다.

AI를 사용할 때도 생각의 주도권을 지키는 습관이 필요하다. AI를 켜기 전에 먼저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이미 무엇을 알고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답을 판단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AI의 답을 받은 뒤에는 “이 내용은 사실인가?”, “빠진 관점은 없는가?”, “내 상황에도 맞는가?”, “최종 결론을 내 말로 설명할 수 있는가?”를 확인한다.

가정에서는 AI에 완벽한 일주일 식단을 맡기기보다 “지금 있는 재료로 20분 안에 만들 수 있는 메뉴 두 가지”를 요청할 수 있다. 자녀 교육에 관한 조언을 받았더라도 그대로 적용하기 전에 아이에게 무엇이 어렵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보는 것이 좋다. AI의 답을 지켜야 할 기준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출근 후 처음 20분 정도를 AI나 메신저 없이 보내며 그날 해결해야 할 핵심 문제를 직접 적어볼 수 있다. AI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면 사실, 숫자와 출처를 따로 확인하고, AI의 해석과 자신의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 회의와 회의 사이에는 2분이라도 화면에서 벗어나 어깨를 풀고 천천히 호흡한다. 퇴근 전에는 ‘오늘 끝낸 일’, ‘내일 할 일’, ‘지금은 내려놓을 일’을 한 줄씩 기록한다. 뇌가 모든 미완료 업무를 밤새 붙잡고 있지 않도록 밖에 꺼내놓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일도 뇌 회복의 중요한 조건이다. 처음부터 힘든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식사 후 10분 걷기, 한 시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음악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스트레칭하기처럼 반복할 수 있는 행동이면 충분하다. 규칙적인 신체활동은 뇌의 혈류와 수면을 돕고, 학습과 신경가소성에 관련된 생물학적 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회복은 혼자만의 뇌 안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지금이 안전한지, 도움받을 수 있는지를 배운다.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다. 하루에 한 사람에게 안부를 묻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요즘 조금 힘들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조언이 부담스럽다면 “해결책보다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요청해도 된다.

가정에서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면 “도와줘”라고 막연하게 말하기보다 “오늘 설거지 좀 해줘”, “30분 동안 아이를 돌봐줘”처럼 필요한 도움을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좋다. 직장에서도 업무량과 회복 시간이 계속 충돌한다면 개인의 의지만으로 버티기보다 관리자나 동료와 업무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뇌가 회복할 환경을 만드는 행동이다.

하루 전체를 바꾸려고 하면 회복 습관마저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아침, 낮, 저녁에 짧은 ‘회복의 항구’를 하나씩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침에는 휴대전화를 보기 전 3분 동안 몸과 감정을 살핀다. 지금 몸의 어디가 긴장되어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오늘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묻는다. 낮에는 10분 정도 화면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인다. 저녁에는 오늘 나를 가장 지치게 한 일과 그 순간 나에게 필요했던 것, 내일 바꿀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을 기록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자신의 AI 사용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AI가 실제로 시간을 줄여준 일은 무엇이었는지, 오히려 더 많은 일과 불안을 만든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직접 생각해야 할 판단까지 넘기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직접 판단할지 정한다.

회복은 언제나 곧게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 다시 힘들 수 있고, 잘 지내다가 작은 사건 때문에 과거의 불안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그것은 회복이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다. 뇌가 새로운 길을 배우는 과정에는 멈춤과 흔들림, 반복이 포함된다.

따라서 회복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함보다 자신을 이해하는 태도다. “왜 아직도 이러지?”라고 다그치기보다 “그만큼 힘들었으니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해보자. “오늘 아무것도 못 했다”고 비난하기보다 밥을 먹고, 메시지에 답하고, 하루를 견딘 행동도 인정해 보자.

AI는 인간보다 빠르게 답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소중히 여길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 누구의 마음을 먼저 살필지까지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그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회복하는 뇌는 AI를 거부하는 뇌가 아니다. AI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기 몸과 감정을 살피고, 정보의 근거를 검토하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는 뇌다.

알고리즘의 파도가 높아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노가 아니다. 잠시 멈추어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닻, 지쳤을 때 돌아갈 수 있는 항구, 그리고 삶의 방향을 비추는 인간의 등대다.
 

글. 신재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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