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18편] 비자살성 자해와 공격성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18편] 비자살성 자해와 공격성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자해가 문제가 되어 상담을 신청하기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자해 시도 경험을 알게 되고, 멈추기 어려워하는 모습, 그리고 적극적 치료가 필요로 하는 내담자들을 본다. 지속적인 유혹이 생겨나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까, 내가 내 몸에 하는 것이니까, 나의 스트레스나 아픈 마음을 푸는 방법이니까, 건강한 방식이 아님을 알지만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살아 있다 느낌을 받으니까.’ 였다. 자해는 숨기고 싶은 행동이지만 대부분 그 심각성을 깊게 인지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실패자고 잘못된 선택을 하며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자해는 스스로 책망하는 수단이었고 또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어쩔 수 없는 행동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 말한다.


진단명으로써 비 자살적 자해

DSM-5에서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 비 자살적 자해(Non suicidal Self-Injury: NSSI)를 정신장애로 규정하고 있으며, 진단 기준은 지난 1년간 5일 또는 그 이상, 자신의 신체에 스스로 고의적 출혈, 상처, 고통을 유발하는 행동을 가하는 것, 경도나 중등도의 신체적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자해를 하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라 정의한다.

Fox & Hawton(2004)는 자해가 불안, 우울, 스트레스, 정서적 무감각, 실패감과 자기혐오와 같은 격렬한 감정들, ‘당면한 부정적 정서’, ‘감정적 고통이나 불편함’의 일시적 완화, 경감과 해소를 위한 목적을 가지는데, 그래서 자해를 경험하는 이들은 자해 전이나 자해 도중에 자살 생각이 없고, 자해 행동을 통해 힘든 상황을 견디려 할 뿐이라고 한다(Simon & Favazza, 2001). 


자해의 동기와 형태

자해의 방법은 다양하다. 칼로 긋기, 불로 지지기, 찌르기, 과도하게 문지르기, 칼로 베기, 할퀴기, 신체 때리기, 상처 난 곳 방치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이러한 행동들은 반복되는 경향이 있어서(Muehlenkamp & Gutierrez, 2004) 시작되면, 스스로 멈추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자해를 시작하게 되는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D'Onefrio(2007)는 아동기에 경험된 외상을 위험요인으로 설명하면서 외상에는 아동학대와 방임, 충격적인 신체적/성적 외상, 부모의 이혼/분리로 인한 상실 경험, 비수인적(invalidating) 양육환경이 관련된다고 한다. 자해 상담을 받는 내담자 대부분은 위와 같은 환경에 처한 적 있고, 한 가지 이상의 경험이 있었다.


의식되지 않은 공격성

오랫동안 자해를 시도했던 한 내담자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결별, 학대, 그리고 신체적 외상 등으로 상실과 좌절을 경험했고, 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 안에서 발생 되는 일들로 분노, 화, 후회의 부정적 감정들이 억압되어있었다. 공격성은 분노나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관련되어 높은 수준의 자율신경계 각성을 유발하는데, 표출되지 못한 공격성은 어떻게 될까? 

내담자에게는 무의식 안에 숨어있는 공격성이 나에게는 해로운 방법으로 나타났다. 공격성의 화살, 풀지 못한 화(anger)가 자해로 자신에게 표출하고 있었다. 또, 남에게 해롭지 않지만, 본인도 모르게 공격적 모습이 외부로 표출되고 있었다. 

Berkowitz(1989)는 좌절과 같은 부정적 정서가 유발되면 공격 행위가 나타날 수 있고, Dollard et al.(1939)는 좌절이 어떤 형태로든 공격 행위를 유발한다고 한다. Freud(1933)은 무의식은 의식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불편한 생각, 충동이 억압되어 생긴 결과물이라 말하면서 공격본능은 억누른다고 해소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표출되어야 한다고 했다.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뇌

센터에는 구비 상비약이 있는데, 두통이나 기타 통증에 먹는 약은 빠지지 않고 챙겨두는 편이다. 상담 중 갑자기 밀려오는 극심한 불안과 심리적 정신적 아픔에 두통약을 취하고 진정되는 모습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 
 

▲ 좌: 사회적 고통, 우: 육체적 고통_ 뇌 MRI 영상 출처: UCLA, 2004

우리 뇌는 아플 때 전두엽의 전측대상회가 활성화되는데, 이 영역은 뜨거운 커피가 몸에 쏟아졌을 때 그리고 헤어진 연인의 사진을 보았을 때 비슷한 영역이 뇌에서 반응했다고 한다. 이는 육체적 아픔과 심리적 아픔의 반응 부위가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동일 부위로 해석되는데, 자해를 일으키는 심리적 정신적 고통이 실제 물리적 아픔과 같고, 그래서 진통제를 먹으면 진정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된다.

교감신경계는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신체의 많은 부분과 신체적으로 연결되어 조절되며(Crowell Sheila, 2005), 정서적 고통은 뇌의 같은 부위가 육체적 고통으로 활성화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서적 스트레스가 상당히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Kross, Berman, Mischel, Smith, Wager, 2011). 


존재가 실패, 실패 자체인 나

삶에서의 경험을 나눌 때면, 갑자기 찾아드는 가슴 통증, 답답함, 호흡의 어려움과 함께 두려움이 공포처럼 밀려드는 것을 내담자는 직감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순간 정지된다. 주체할 수 없는 긴장 상태에서 그 상황을 통제하고 제압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자해를 시작하며 안간힘을 쓴다. 

신체에 남을 흔적, 몸이 느끼는 고통에는 신경을 쓸 수 없을 만큼 신체감각의 통제에만 집중한다. 심리적 고통의 완화를 위해 스스로 자신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고 원망하며 또다시 자해로 이어지는 것을 알았다.

눈을 감고 자신을 상상하며 떠올린 이미지를 해바라기로 표현했다. “들판 위에 혼자 서 있는 해바라기예요. 잎이 떨어져 하나씩 바람에 날리고 있어요. 살아남기 위해 버티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요. 해바라기는 가만히 있는데 주위에서 해바라기를 힘들게 해요. 그냥 가만히 두었으면 좋겠는데, 조만간 잎이 다 떨어질 거예요.” 
 

자신의 이야기를 좀처럼 하기 힘들어하는 내담자였지만 상처받는 해바라기 이미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나누었고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함께 나누는 기회를 만들었다. 미술치료는 이미지를 통해 방어를 낮추고 자신을 투영하게 하며 자신의 마음을 보게 하고 열리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마음을 내어놓는 것,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치유되지 않고 고여있는 마음의 상처가 어떤 결과로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된다. 자해는 기분이 나아지고 효과가 있어서 순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그것으로 다루고 또 더 강한 가해의 충동을 일으키게 되므로 중독 성향으로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건전한 방법,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비 자살적 자해라도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위에서 또 스스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심리상담, 미술치료 등의 도움받기를 권고한다. 


글. 어수경

임상미술치료학 박사, 미술치료수련전문가로 EO심리상담교육개발원 대표이다. 한국융합예술심리상담학회 상임이사, 학술위원을 맡고 있고, 서울대, 경희대, 차의과학대 출강 중이며, 공동저서로 『컬러플마인드 미술치료워크북』, 『아동상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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