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14편] 선 그리기(line drawing)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14편] 선 그리기(line drawing)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미술치료는 미술 활동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의식 세계가 의식으로 드러나는 것에 놀라움이 있다. 그것을 선 그리기(line drawing)의 운동성과 연결하여 알아보고, 뇌 구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접근 단계를 살펴보려 한다. 

먼저, 드로우(draw)는 펜이나 어떤 도구를 이용하여 표면 위에 표시를 남긴다는 의미로 끌다(drag)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Edward Hill(1966)은 그리기(draw)는 손과 팔의 직접적인 반응이며, 그리기 도구를 손에 쥐고 자신의 느낌, 생각을 표시하는 행위이며, 몸 자체의 일부가 연장되는 것으로 보았다. 


# 선 그리기의 운동성

하나의 점이 일렬로 나열되었을 때 점들의 선이 생기며, 그것을 따라 이으면 선이 된다. Kandinsky는 점은 휴식이고 선은 휴식의 파괴로 설명했는데, 문장이 끝날 때 점을 찍는 것처럼 점은 마침을 선은 출발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에는 직선, 곡선, 수직선, 대각선, 평행선, 구불구불한 선 등 종류가 다양하다.

선은 시작에 의미가 있으므로 출발과 함께 위, 아래, 좌, 우 공간 위치에 따라 방향성이 주어지고, 연필과 같은 재료를 이용하여 작게는 손과 팔이 크게는 몸이 사용되므로 동적인 움직임이 수반된다. 반복적인 움직임을 이끄는 선 그리기를 하다 보면, 움직임에 의해 속도감이 생기고 손의 힘을 강하게 또 약하게 조절하며 리듬을 타게 되는데, 그 리듬에 의해 어느새 행위 자체에 몰입하게 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 선 그리기 미술치료
 

얼굴에는 표정이 없고, 만사 귀찮은 듯 의자에 앉아 ‘움직이게 하지 말지’라고 눈으로 말하는 고3 학생들과 선 그리기를 하였다. 에너지가 없으면 앉아서 작은 동작으로 천천히 시작해도 좋다는 설명을 해 주고 활동 과정을 지켜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종이와 펜, 그리고 선 활동에만 집중하였고 마무리한 후에는 모두 ‘이건 뭐지 했는데, 하는 동안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신기했다’ 생기를 보이며 밝아진 표정으로 소감을 나누어 주었다. 선 그리기 활동으로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 신체가 변화되는 경험을 하였다. 
 

빠르게 날아가는 제트기를 보면 하늘에 하얀 선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렇듯 종이 위의 선도 물리적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 안에서 무의식이 의식화되어 나타나는데, 좌측 선 활동에서는 네 마리의 새(bird)가 가족을 형상화하여 표현되었고 가슴에 가지고 있는 아픔을 치료사에게만 조심스럽게 전달해주었다.  

우측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심신 상태와 소망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Nancy(2013)은 선은 방출되는 힘을 통해 자극이 주어지고 속도가 생기며, 그 속도를 유지하고 풀어주고를 반복하면서 형태가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선의 동적 특성에 남겨진 형태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된다고 했다. 


# 동적 감각 활동과 우리의 뇌

선을 눈으로 보면서 활동을 하게 되면, 형태가 의식이 되어 생각들이 떠오른다. 머리로 어떻게 그리지? 그리고 어디로 움직이지? 의 생각이 움직임을 멈칫하게 하고 딱딱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눈을 감고 활동을 시작하면, 연필 끝과 종이가 닿는 느낌, 그것이 만들어내는 소리 그리고 몸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이끌리면서 다른 감각들과도 접촉하게 된다. 즉, 이성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감각에 충실하게 이끌려가게 된다.

감각에 의지하는 선 그리기 장점은 의도적이지 않아서 특별한 그리기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하고 못하고의 개념이 없는 알아볼 수 없는 선 활동이 특징이다. 이 활동은 나의 외부적, 내부적 감각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고, 몸이 말하는 데로 따라가 보는 것이며, 그것이 선에 반영되는 것이어서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경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선 그리기 활동을 통해 감각으로 몸이 움직이고, 몸의 움직임으로 다시 감각이 깨어나고 그것에 의해 감정을 느끼고 사고하는 단계로 가는 것이다. 이를 뇌 구조와 연결하면, Cornelia(2018)은 뇌의 가장 아래쪽에 감각을 담당하는 뇌간이 일차적으로 자극되어 감정을 처리하는 변연계를 거쳐 뇌의 가장 위쪽에 있는 대뇌피질에 도달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즉, 마음과 생각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 뇌가 일하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를 상향식 미술치료 접근이라 한다. Pat(2019)은 감각운동 심리치료는 현재 나의 몸이 말하는 경험을 따라가면서 신체 행위와 의미의 접점을 찾는 것이고 그로 인해 호흡 방식, 근육 긴장도의 변화, 자율신경계의 활성화, 생리적 변화가 수반된다고 하였다. 선 그리기 미술치료는 어디에 좋은지, 어떻게 쓰이는지, 어떤 치료적 의미가 있는지 대상과 질환에 연결해서 이후 더 다루어보려고 한다. 

지금 나의 감각을 자극하여 기분 좋은 마음, 기분 좋은 생각을 가지게 해 줄 무언가를 찾아보자. 집 청소, 방 정리, 쓸모없는 물건 모아 버리기, 또는 겨울의 대표적인 과일 귤을 떠올리면, 오감이 자극된다. 오렌지색의 쾌활 발랄함, 상큼한 향, 시큼하고 달큼한 맛, 상상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어떤 것이 떠오른다면, 그것을 잠깐 붙잡고 상상하며 내 몸에 활력을 선물하자.

글. 어수경 

임상미술치료학 박사, 미술치료수련전문가로 EO심리상담교육개발원 대표이다. 한국융합예술심리상담학회 상임이사, 학술위원을 맡고 있고, 서울대, 경희대, 차의과학대 출강 중이며, 공동저서로 『컬러플마인드 미술치료워크북』, 『아동상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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