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15편] 예술로 풀어보는 보는 중독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15편] 예술로 풀어보는 보는 중독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중독(中毒)은 한자로 ‘포이즌(poison) 안에 있다. 그 가운데 있다.’인데 이렇게 풀어보니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지고 두렵게 와 닿는다.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빠져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렇게 되어버릴 만큼 각자의 이유로 어떤 것이 절실했겠다 생각이 든다. 

잊고 싶은 것, 벗어나고 싶은 것, 무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다른 것으로 메꾸다가 그것에 잠수 된 모습이 그려진다. 스스로 수면 위로 나와 숨쉬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의지력이 점점 약해져 포기하는 단계가 되기도 한다. 어떤 것에 중독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는데 구멍 난 공간에 기본적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센터에도 게임, 알코올, 성 등 물질이거나 행위이거나 중독 관련 의뢰가 들어온다. 요즘 두드러지는 것이 인터넷 관련 중독이고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조용히 스며들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것에 깊숙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 중독 시 뇌 상태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유는 빠져들수록 결과가 부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멈춰야지 하는 생각을 시작하게 되고 하지만 마음처럼 멈춰지지 않는 것에 여러 위협을 느낀다. 그 원인을 우리 뇌에서 살펴보면, 이해에 도움이 되고 또 심각함을 인지하게 될 것 같다.
 

손정우 외(2014)는 “일반 청소년들은 피드백, 칭찬 등에 뇌의 두정엽, 측두엽, 보상중추를 포함한 여러 영역에서 반응을 보였는데, 인터넷 중독 청소년들은 모든 보상 자극에 대해 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연구를 발표하였다. 일반적인 보상에서 뇌 영역 반응이 없었다는 것은 기쁨, 감사의 감정에 자극이 없었다는 뜻으로 그래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최정석(2015)의 연구에서는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뇌는 게임을 하지 않을 때, 집중력과 관련된 베타파가 낮게 나오고, 눈을 감고 쉴 때, 인지 기능과 관련된 감마파가 크게 높게 나타나 뇌가 비정상적 활동을 한다.”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뇌 기능의 이상은 일시적인 수준을 넘어 고착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 도파민과 예술

도파민은 행복, 쾌락, 욕망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래서 의욕과 동기부여에 깊이 관여하는데, 도파민이 과다하게 분비되거나 지나치게 부족하면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 중독은 끊임없이 더 많은 쾌락과 강한 자극을 갈망하는 도파민과 연관된 보상중추 회로가 손상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도파민은 감정 호르몬이어서 예술과 연관이 깊다.

뇌과학자 정재승은 “어떤 예술품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인식이자 경험이며 그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사람들끼리 매우 유사하여 그림을 감상할 때, 음악을 들을 때, 보상중추인 측좌핵(nucleus accumbens)에서 도파민 분비”가 생성됨을 연구 결과로 설명하였다.

뇌과학자 쥴리아 크리스텐슨(Julia F. Christensen)교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free will)를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영향권에 넘겨주고 있다” 말하면서 예술 활동을 통한 쾌락은 오히려 뇌 기능을 강화해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심리학자 폴 브룸(Paul Bloom) 교수는 “예술작품의 경우 온몸에 영향을 미칠 만큼 인간 신경계에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 잭슨 폴락(Jakson Pollock, 1912~1956) 

잭슨 폴록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화가로 액션 페인팅을 처음 시도한 화가이며, 44세의 젊은 나이에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알코올 의존증이었고, 융의 제자였던 조셉 헨더슨(Joseph Henderson)에게 분석심리 미술치료를 받았으며 액션 페인팅 기법을 표현하면서 2년 동안 술을 끊고 정서적으로 안정적 생활을 했다고 한다. 
 

▲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제작 모습 ▲ One: Number 31, 1950 by Jackson Pollock

그는 “작업을 할 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였고 그의 작품을 본 이는 “캔퍼스를 마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격투기 경기장 ‘아레나’로 표현했다.” 한다. 작품 크기에서 표면의 질감에서 그의 액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얼마나 거칠고 강렬할지 느껴진다.

액션 페인팅은 이름 그대로 액션이 가미된 페인팅이다. 위 사진처럼 신체가 움직이면서 동작으로 활동이 만들어지는 뿌리기 기법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액션 페인팅은 행위가 수단이고 그 과정 자체에 의미가 크며,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리기보다 과정에서 나타나는 추상적 이미지를 즐기고 표현해 가는 기법이다. 


# 미술치료의 역할

표현 방식에는 뿌리기, 흘리기, 찍기, 붓기, 쏘기 등 방법이 다양하고 온몸이 도구가 되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 자체에서 부정적 에너지가 외부로 뿜어져 나가고 긍정의 에너지로 환기되며 그 과정에서 또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예술은 힘든 창조의 과정이 있고 시간이 소요된다. 그것을 이겨내고 완성된 작품을 바라볼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쾌의 감정이고, 기쁨과 희열로 만족이 충족된다. 그런데 이 감정 뒤에도 허무함과 공허함은 함께 존재한다. 단지 중독에서의 쾌 감정과 다른 것은 예술에서의 쾌, 짜릿함 안에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있고 피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치료에서의 목표는 예술을 통한 감각자극의 반복적 활동으로 일반적인 보상에 무뎌져 있는 감정을 되살아나게 도와주는 것, 즉 둔감해진 감각을 깨워주는 매체와 활동으로 적절한 보상에 동기가 자극되게 하는 것이다. 이때 내담자가 무엇에 민감하게 자극될 수 있는지 찾는 것 또한 치료사의 역할이며 치유과정에 중요한 요소이다.

부정적 감정을 토해내는 반복적 활동과 내 안의 긍정적 기쁨을 되찾아 주는 지속적 자극은 뇌 가소성에 의해 건강한 뇌 회로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며, 뇌가 효율적 기능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다. 

내 몸인데,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따라주지 않는 중독을 이렇게 뇌 과학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 그래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또 재발이 자주 될 수 있고, 단지 나의 의지가 약해서만은 아닐 수 있고, 그래서 혼자보다 가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겠다 알 수 있다. 따라서 쉽지 않을지라도 서로에게 차가운 시선, 원망의 눈빛을 멈추고 지지와 협력의 눈빛을 주고받는다면 중독을 이겨내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리라 본다.

빠름을 추구하는 일상에서 우리가 모두 어떤 것에 중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미 독(毒) 가운데에 가깝게 다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치료사로서 ‘아!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 너무 빠져 있었구나.’ 깜짝 놀라는 때가 많다. 오늘은 일상에서 빠름을 탈퇴시켜본다. 느림의 미학을 의도적으로 연습하고 감각을 열고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먹고 핸드폰 대신 펜과 종이를 꺼내 소소한 마음을 쪽지에 남기고 전한다. 나에게 또 너에게 행복, 감사의 도파민을 배달해보자. 

글. 어수경

임상미술치료학 박사, 미술치료수련전문가로 EO심리상담교육개발원 대표이다. 한국융합예술심리상담학회 상임이사, 학술위원을 맡고 있고, 서울대, 경희대, 차의과학대 출강 중이며, 공동저서로 『컬러플마인드 미술치료워크북』, 『아동상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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