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17편] 제3의 정서, 통증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17편] 제3의 정서, 통증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16편 환상사지 치료적 접근에서는 환자들이 고통을 나누고 공감하며 서로 지지하는 역동의 힘, 고통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직면하고 그것을 통한 두려움의 완화, 또 내 안의 건강한 나를 찾아감으로 환상사지 통증에 도움을 주는 미술치료 역할에 대해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통증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미술치료가 환아들에게 어떤 역할이 되는지 측면에서 다루려고 한다. 화상 전문병원에서 임상 경험을 통해 치료사로 강렬했던 체험 중 하나가 환아들이 느끼는 통증의 주관성이었다. 미술치료 한 세션을 마치면서 통증이 완화되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것에 대해 ‘미술치료는 소아 환아들을 위한 탈출구다’ 생각했다. 


소아 화상[burn]의 개념 

병원에 입원한 영유아, 아동 청소년, 18세 미만의 모든 연령대가 소아 화상에 속한다. 병원학교에 오는 연령대는 주로 5세부터이다. 아이들은 피부가 얇아서 쉽게 깊은 상처를 갖게 되고 짧게 또는 오랜 기간 병원에서 입원한다. 

입원한 소아 화상 환자는 불안기, 통증기, 탐색기, 노력기, 수용기, 재통합기의 심리적 단계를 거치는데, 미술치료는 불안기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소아 화상 환자가 자신의 감정을 명료화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한데(Cresci, 1982), 미술을 통해 표현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환아들은 감정이나 생각의 언어적 표현이 서툴다. 통증은 더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감정이다. 그래서 소통의 방법으로 마냥 울거나 떼를 쓰거나 소리 지르는 등 행동으로 통증을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제 3의 정서, 통증

통증은 신체가 느끼는 아픔의 감각이지만 주관적이고 경험적이며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했다. 지극히 개인적 느낌이어서 없는 증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Snyder(1977)은 통증을 ‘제3의 정서’라고 했다.
 

환아들의 통증 체크는 시각 통증 척도[visual analog scale; VAS]를 사용한다. 왼쪽 ‘통증     없음, 0’에서부터 오른쪽 ‘극심한 통증, 10’까지, 또 표정이 그려져 있어 통증 정도를 표시     하기 용이하다. 환아가 직접 표시함으로써 주관적 통증 정도를 객관적 수치로 평가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병원 안에서도 주요 이슈를 만드는 환아들이 있다. 많이 울거나, 밤에 시끄러운 환아, 떼를 쓰며 물건을 던지거나 스스로 자애를 하는 환아 등 함께하는 병실 생활에서 다른 환아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이다. 

그 환아 중 미술치료를 받겠다고 신청한 환아가 있었다. 너무 밝고 인사 잘하는 5세의 남자 환아였다. 머리 쪽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지방에서 올라와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많은 것들이 낯설고 불안하였을 것 같고 또, 치료가 시급해서 환아에게 상황에 대한 소통이나 설명이 부족했었을 것도 같았다. 

첫 시간 만남에서 활동 전과 후의 통증 척도를 체크하고 이야기 그림을 구성하게 하였다. 그림 왼쪽 사전 이야기는 “산에 불이 났는데 소방차가 도착하지 못했어요. 산도 많고, 길고 구불구불하고 산이 다 탔어요.” 통증 척도의 수치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10이었다. 미술치료를 마치고 이야기 그림에서는 “산불이 났지만, 이제는 괜찮아요. 소방차가 도착해서 불을 다 껐어요. 산은 이제 괜찮아요” 그리고 통증 척도의 수치는 통증 없음, 0이었다.
 

▲ ▲ 5세 남아의 미술치료 전과 후 이야기 그림

감정을 다뤄줌으로 통증 완화에 도움을 주었고 병실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통증은 3의 정서라 할 만큼 감정과 연관이 깊고 미지의 정서이다. 그 원인이 의학적이기도, 심리적이기도 하고 신체와 마음이 하나라는 접근으로 풀어내야 함을 늘 깨닫는다.


플라시보 효과의 미술치료 

국제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듀크 대학 연구팀이 편도체(amygdala) 안에 통증을 관장하는 영역이 있고, 상황에 따라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을 연결하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통각을 차단하여 고통을 제어하기도 하다는 연구를 하였다. 이는 통증이 마음, 감정, 학습 등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신체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생각, 느낌 등의 심리 요인에 영향이 큼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음은 병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치료하기도 한다. 없는 통증을 만들어내기도 하고(노시보 효과, Nocebo effect), 있는 통증을 없앨 수도 있다(플라시보 효과, Placebo effect). 미술치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이 마음먹기를 활용하는 것으로 실제 존재하는 신체 통증을 더 아프게, 또 덜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위 도표는 10명의 환아를 대상으로 8회기 미술치료 전과 후 통증의 변화를 연구한 그래프이다(2013, 어수경). 각 회기에서 통증이 완화됨을 보여주고 있다. 

병원 안에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먹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에 제약이 있다. 그런 환아들의 마음은 관심받지 못하고 하루에 마쳐야 하는 치료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미술치료 공간은 환아에게 규칙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표출할 수 있는 놀이터와 같은 장소이다. 그래서 소원, 위약 캡슐, 마음 밴드, 인형 친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불안, 두려움 등의 감정이 해소될 수 있게 그리고 유쾌한 감정이 생성되도록 돕는 것이 치료의 큰 목표이다. 

미술치료가 통증의 완화를 위해 환아에게 엉켜있는 감정을 소화하게 함으로 환아의 체한 마음에 위약, 플라시보 효과 역할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고통에 대해 알아주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지만, 막상 그렇게 못하기도 하고 그런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내 가까이에 그러한 사람은 없는지 관심을 가지고 잠시 둘러보며, 그들에게 플라시보 효과는 무엇일지 고민해본다.

글. 어수경

임상미술치료학 박사, 미술치료수련전문가로 EO심리상담교육개발원 대표이다. 한국융합예술심리상담학회 상임이사, 학술위원을 맡고 있고, 서울대, 경희대, 차의과학대 출강 중이며, 공동저서로 『컬러플마인드 미술치료워크북』, 『아동상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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