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이미도 씨가 4일 건국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2012 하반기 리더스 콘서트' 첫 번째 연사로 나섰다. 두 시간이 넘게 이어진 300여 명 청춘들과의 만남을 통해 오간 질문과 대답을 정리해 보았다. 

--지금 부산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다. 

"내년이면 번역가로 20년째가 되는데, 나에게 남은 노동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부자인가.'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부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 부자'가 되고 싶었다. 불필요한 시간을 떼어내고 나면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 많아질 테니까. 그리고 필요한 시간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노동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에서 더 창의적인 작업을 많이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부산에서 살고 있다. 일종의 유배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좌중 웃음)"

-- 사인이 독특하다. '또 보고 싶은 영화처럼'이라고 쓰여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내 인생의 영화 한 편쯤은 다들 있지 않나. 그 영화가 또 보고 싶은 영화처럼 미래가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 사람의 미래가 다시 보고 싶은 영화 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인과 함께 쓰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생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 3권만 추천해 달라.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질문을 지금 받았다. (웃음) 나름 각자의 독서 취향들이 있을 테지만, 지금 질문을 받고 떠오르는 책을 추천하겠다.

큰 틀에서 인문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쉽고 재미있는 문학부터 말이다. 이를테면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이 약 300권 정도 나와 있다. (좌중 웃음) 졸업 전에 다 읽어보겠다는 목표를 세워보는 것은 어떻겠나.

그 외에도 시오노 나나미가 쓴 역사서들, 사마천의 <사기>, 그리고 <조용한 사람들이 세상을 이끈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여행 혹은 여행처럼>,  <책은 도끼다>.

매주 토요일마다 종이 신문들은 '북 섹션'을 선보인다. 그 주에 새롭게 나온 책들 중 엄선한 책들을 소개하는 코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책을 읽고 싶은데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흥미를 갖고 책을 읽을 수 있나.

"우선 내가 좋아하는, 내가 재미있어 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너무 심각하거나 어려운 책보다는 재미있고 쉬운 책부터 시작하라. 글보다는 사진이 많은 책부터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가 독서의 첫 단계로 제안하는 것은 바로 신문읽기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정말 감동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매일 빼곡히 담겨서 배달되는 것이 바로 신문이다."

-- 앞으로 통ㆍ번역 일을 하고 싶다. 우리말과 영어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가.

"나는 우리말을 더 잘 구사해야 한다는 쪽에 한 표를 행사하고자 한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통ㆍ번역이다. 우리말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다 보니 요즘은 미국 회사에서 중간에 국내 회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인터넷을 통해 나에게 대본을 보내준다. 언어를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한다면 누구든 외국 영화 번역 일을 시작할 수 있다."

-- 어감이나 문맥을 살려 번역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즐겨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나는 언어감각을 유지하고 또는 더 키우기 위해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집에 배달되는 조간신문 3종을 들고 커피를 마시면서 하나하나 다 읽는다. 그리고 평소에는 고전을 즐겨 읽는다. 신문과 책을 통해 언어적 상상력을 키우고 창의적인 어휘력을 쌓고 있다. 다양한 재미를 즐기는 소재이기도 하다.

번역하다가 영어가 막히면 바로 국제전화를 건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이해가 잘 안 되는 표현이 있으면 물어본다. 대개 당시 미국에서 뜨는 유행어인 경우가 많다."

--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중에도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힘들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확신을 가지려면 '자기계발'이 아니라 '자기발견'을 위해 책 읽기를 계속해야 한다. 

<쿵푸팬더> 1편의 핵심 주제가 바로 '자기발견'이다. 주인공 팬더 말고 친구 5인방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다섯 친구가 가진 권법들을 연마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은 다 실패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다. 팬더의 주특기는 바로 배치기, 엉덩이로 뭉개기라는 것을. 자기를 발견한 것이다.

살아생전 스티브 잡스가 누누이 하던 이야기 중 하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직장인 60%가 현재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을 못 한다고 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래서 더 강조하고 싶다. 'Do what you love'를 실천해보길 바란다." 

글. 강천금 sierra_leon@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