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정신문화 자산인 명상은 서구로 넘어가 스트레스 관리를 비롯해 정서 지능과 창의성 계발 등 역량 계발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명상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명상 전통은 선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명맥은 현대에 이르러 한국식 명상, K-명상으로 해외에 전해지고 있다.
한국의 명상은 심신 수련법으로서의 전통이 강하다. 심신 수련의 기본이자 핵심을 이루는 원리가 ‘수승화강’이다.
전 세계의 검색 엔진을 장악한 기업 ‘구글’에는 또 다른 검색 프로그램이 있다. ‘Search Inside Yourself’, 구글 엔지니어이자 명상가인 차드 멍 탄이 2007년에 시작한 명상 프로그램 ‘내면검색’이다. 2013년, 차드 멍 탄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필자는 《브레인》 편집장으로 그와 만남을 가졌다. 차드 멍탄이 먼저 내게 물었다. “한국에서는 명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종교적 수행이나 건강법으로만 생각하나요?”
자신도 구글에 명상을 처음 도입할 당시 직원들이 명상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이와 다르지 않아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구글 직원용 프로그램의 이름을 ‘내면검색’이라고 붙인 이유도, 개발 과정에 뇌과학자와 CEO를 비롯해 감성지능(EQ)을 창시한 다니엘 골먼 교수가 참여한 것도 명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 구글의 내면검색 프로그램은 스트레스 관리를 넘어 정서 지능 계발과 리더십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멘탈산업 부상에 따른 서구의 명상 붐
명상을 대부분 종교적 수행법이나 건강관리 차원에서 인식하는 동양과 달리 서구에서의 활용 범위는 점차 역량 계발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구글을 비롯해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트위터 등 글로벌 기업이 즐비한 실리콘밸리의 유명 콘퍼런스 ‘위즈덤 2.0’의 단골 소재 역시 명상이다. 스티브 잡스도 유년 시절부터 명상을 접하고 생활화한 덕에 이것이 애플의 혁신적 사고와 제품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뉴욕에 등장한 ‘명상 버스’가 해외 뉴스로 오르내리고, 최근 3년간 출시된 명상 애플리케이션만 2000개가 넘으며, 모바일 명상 앱 선두 주자 중 하나인 캄Calm은 유니콘 기업으로 부상했다. 삼성, LG, SK 등 국내 대기업에서도 연수원 및 힐링센터 개원, 직무연수 등 명상을 기업 경영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혁신적이고 숨 가쁘게 변화하는 빠른 디지털 시대와는 반대로 느린 내면 성찰을 통해 영감과 통찰을 얻는 명상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은 창의성의 열쇠가 밖이 아닌 내면에 있음을 반증한다.
과거 1960~1970년대가 동양의 철학과 사상에 매료된 시기였다면 지금의 명상에 대한 관심은 21세기 물질문명에 따른 피로감, 삶의 질 향상, 디지털과 감성이 결합된 역량 계발 등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미국 내 명상 열풍은 정보통신기술, IT와 만나면서 더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빗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등 자연이 만들어내는 오디오와 영상을 보는 명상 앱부터 종류도 다양하다. 명상 앱 이용자들은 ‘보통 운동 시작 전에 명상을 하는데, 정신적·심리적으로 안정을 얻는 준비 단계’라고 말한다.
▲ K-명상 원격 과목은 신경과학자 양현정 교수의 뇌과학에 기초한 체계적인 명상 원리와 효과를 담은 이론 편, 명상 트레이너의 실습 편으로 구성돼 있다.
명상의 효과 연구에서 인적 자원 계발을 위한 활용 단계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업들이 명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면에는 서구가 주도한 과학적 접근과 연구 성과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서구 물질만능주의에 따른 정신적 가치의 하락, 정신과 물질의 상호관계 규명, 멘탈 헬스 증진을 위한 비약물 치료 증대,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에 따른 자연지능 회복 등 복합적 요소가 담겨 있다.
미국에서는 1993년 국립보건원(NIH) 산하 대체의학연구소(OAM)가 명상 연구에 공식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해졌고, 매년 1000여 편의 명상 관련 논문이 학술지에 발표되고 있을 정도이다. 서구에서는 명상에 대한 효과를 연구하는 차원을 넘어 인적 자원 계발 등 명상을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선 셈이다.
국내에서의 명상 연구는 1990년 한국인체과학연구원(현 한국뇌과학연구원) 설립 이후 2017년 대한명상의학회가 출범하고, 2018년 KAIST 명상과학연구소를 개소하는 등 최근 들어 의학계와 과학계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요가의 나라, 인도 대학생들이 한국의 명상 수업을 듣다
서구에서는 대부분의 심신 수련을 ‘요가’로 통칭한다. 이는 인도가 정신문화의 대국으로 인식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히피들의 여행은 인도의 아쉬람이 최종 목적지였고, 비틀즈가 1968년 초월명상을 창시한 마하리시 마헤시를 만나기 위해 인도를 방문한 것이 인도의 정신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증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런 요가의 나라 인도 대학생들이 한국의 K-명상 과목을 수강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작년 12월, 인도 동남부 첸나이에 위치한 사립 공과대학인 인도힌두스탄공과대학(HITS)과 한국의 글로벌사이버대학교가 국제 교류 협약을 체결했다. 학점 교류를 포함해 한국과 인도의 문화 교류, 글로벌 산학 협력 촉진, 이러닝 시스템 협력 등 실질적인 대학 간 협약으로 실제 현재 힌두스탄공과대학 학생들이 글로벌사이버대학교의 3학점 K-명상 수업을 듣고 있다.
인도 힌두스탄공과대학은 1966년에 설립돼 국가평가인증위원회에서 A 등급을 받은 유명 공과대학이다. 국제화에 중점을 두고 해외 대학과의 교환학생, 국제 공동 연구 및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고, 미국 NASA와도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글로벌사이버대학교는 세계 유일의 뇌교육 4년제 학위 과정을 갖춘 원격 대학이다. 특히 K-팝을 세계 정점에 우뚝 세우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의 모교이자 가장 많은 K-팝 아티스트가 재학 중인 한류 선도 대학으로 해외에서 ‘BTS university’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년 이 협약은 정부가 ‘신한류 진흥정책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K-드라마와 K-팝 등 대중문화를 넘어 지속 가능한 한류를 모색하는 시점에 글로벌사이버대학교의 K-명상 원격 과목이 13억 인구의 인도 유명 공과대학과 학점 교류를 맺은 사례로, 국내 교육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아난드 제이콥 버기스 인도 힌두스탄공과대학 이사장은 “코로나19라는 지구촌 위기 속에서 이뤄진 한국과 인도의 두 대학 간 협약이라 의미가 더 크다”며, “인도 청년들이 K-팝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 대학의 국제 교류 증진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제 인도 첸나이 지역은 한류 커뮤니티가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 매주 1회 진행하는 실시간 명상 트레이닝 수업에 참여한 인도 힌두스탄공과대학 학생들
한국식 명상의 핵심 원리 ‘수승화강’
인도 힌두스탄공과대학 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은 글로벌사이버대학교가 2019년 교육부 사이버대학 콘텐츠 지원 사업으로 개발한 ‘뇌교육 명상: 스트레스 관리 및 자기 역량 강화(Brain Education Meditation: Stress Management and Self-Empowerment)’라는 원격 과목이다.
‘뇌교육 명상’은 한국 고유의 선도 명상을 뇌과학과 접목해 명상에 대한 과학적·의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이론 및 체험형 교육과정이다. 뇌교육 5단계를 기반으로 스트레스 관리 및 자기 역량 강화를 위한 셀프 힐링 명상 코스로 구성됐다. 해당 과목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통합헬스케어학과장이자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과 겸임교수인 양현정 교수가 맡고 있다. 신경과학자인 양 교수가 이론을 맡고, 미국의 명상 트레이너가 실습 지도를 한다.
뇌교육 명상은 개발 당시부터 해외 대학 수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서구 명상산업에 대한 시장 조사와 요가를 비롯해 다양한 동양 명상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반영한 점이 특징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뇌교육 명상:스트레스 관리 및 자기 역량 강화’ 과목은 건강법 차원을 넘어서는 인식을 담은 것이며, 한국식 명상의 강점을 반영한 결과이다.
총 15주 차로 구성된 이 과목을 관통하는 건강의 핵심 원리는 바로 ‘수승화강’이다. 실제 인도 학생들도 체험 과정을 통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해당 과목은 스튜디오에서 사전 제작한 원격 강의 수강과 별도로 매주 1회씩 1시간의 실시간 명상 트레이닝을 진행하는데, 인도 대학생들이 한국의 사이버대학 시스템에 접속해서 실제 체험을 갖는다.
신입생이 대부분인 인도 대학생들은 동작, 호흡, 의식 3요소를 바탕으로 에너지를 중시하는 뇌체조 훈련과 에너지 명상법인 ‘지감止感’ 훈련을 특히나 좋아한다. 체험 과정이 진행될수록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머리가 시원해지고 아랫배가 따뜻해졌다’라는 후기이다. 훈련이 거듭되고 감각이 깨어날수록 인체 에너지 순환에 따른 수승화강(Water Up, Fire Down) 체험이 깊어진다.
K-명상, 스트레스 관리에서 자기 역량 강화로
한국식 명상의 핵심 원리인 수승화강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치료에서 예방, 관리에서 증진으로 미래 건강 흐름의 시대적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사회의 새로운 건강 흐름을 반영한 키워드로 ‘헬스 프로모션Health Promotion’을 제시했다. 지난 1986년 오타와에서 개최한 제1회 헬스 프로모션 국제회의에서 ‘모두를 위한 건강Health For All’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로 처음 제시했으며, 이후 ‘지속가능 개발을 위한 2030’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헬스 프로모션’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고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건강 증진을 위한 실천적 방법 습득과 생활 습관의 능동적 변화를 강조한다. 이는 인도 힌두스탄공과대학 학생들이 듣는 글로벌사이버대학교의 K-명상 과목의 방향을 ‘스트레스 관리 및 자기 역량 강화’로 설정한 배경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동양의 명상이 심신 안정 및 스트레스 관리 차원을 넘어 정서 지능 향상, 리더십 증진, 창의성 계발 등 인간 고유의 역량을 깨우는 새로운 인적 자원 계발법으로 확산되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요가 문화에 익숙한 인도 대학생들도 한국식 명상을 건강 차원에서 인식하지 않고 뇌교육 5단계에 기반한 ‘자기 역량 강화Self-Empowerment’라는 측면에서 매력을 느낀다.
20대 청년이자 공과대학 학생들인 만큼 명상이 자기 계발의 일환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동양 정신문화의 원형이라는 명상에 대한 이해와 활용은 제각각이지만, 본질은 몸과 마음의 조화이다. 그 중심에는 하늘, 땅, 사람을 하나의 연결된 존재로 여긴 천지인天地人 철학, 사람의 몸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고 자연의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수승화강의 원리가 자리한다.
글_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