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북스] 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

[브레인 북스] 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

기후변화는 어떻게 몸, 마음, 그리고 뇌를 지배하는가


그동안 기후변화가 ‘자연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던 이들에게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례들은 적잖은 충격을 안겨다 줄 것이다. 

“기후변화의 증거가 폭염, 산불, 태풍, 가뭄이 아니라 ‘우리 몸’이었다고?” 기후재난을 근미래에 발생할 일이랄지, 종말론적인 스펙터클로 여겨왔던 안일한 사고방식을 뒤집어 이 책은 현재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재난의 실체를 폭로한다. 

뇌과학자이자 환경 저널리스트인 저자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이 우리 뇌부터 몸, 마음에 걸쳐 기후변화가 어떻게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는지 신경과학‧데이터과학‧인지심리학을 동원하여 설명한다. 기억력 감퇴, 폭력성 촉발, 신경퇴행 질환의 증가, 감염병의 역습, 트라우마 및 우울 증상의 폭발에 이르기까지 소리 없이 찾아와 인간을 수족처럼 부리는 ‘기후 괴물’의 모습이 낱낱이 드러난다.

고장난 뇌가 기억, 인지, 행동 측면에서 일으킨 변화

매해 ‘역대급 폭염’이라는 뉴스를 듣고, 갈수록 변화무쌍한 날씨를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기후변화의 현실을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기후 망각’은 뇌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이다.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예측 가능성이 줄어들면 뇌에서 망각이 일어나는 비율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마치 집단적인 ‘기억상실’에 걸린 것처럼 평균 온도의 한계선(기후평년값)을 계속 갱신하면서 과거를 잊고 현재에 순응하려는 인간의 태도가 지구와 인간 사이에, 그리고 신경 회로 안에서도 끊임없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 같은 ‘기억력 감퇴’부터 ‘인지능력 저하’와 ‘폭력성 증가’에 이르기까지, 1부에서는 기후변화가 우리의 인지적인 행동에 일으킬 다양한 이상 증상을 파헤친다. 각종 실험과 데이터, 인터뷰를 통해 기온 상승이 우리의 판단 및 업무 능력뿐 아니라 학교 성적까지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폭염 속에서 생존을 위한 신진대사에 열을 올리면서 멍청해진 뇌가 작은 스트레스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발생한다. 뇌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이 급감하면서 충동성이 오르고 보복 행위가 증가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기후 공감’과 ‘역사’, 그리고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고 미래의 자신을 인지할 수 있는 ‘자제력’이라는 힌트를 제공한다.

뒤틀린 몸은 어떻게 신경퇴행, 감염, 트라우마를 낳는가

병코돌고래 800마리는 왜 플로리다주 근처 해안에서 집단으로 떼죽음을 당했을까? 지구의 역사에서 모든 생명에게 영향을 끼쳐왔던 시아노박테리아(남조류)의 대증식은 오늘날 기후변화와 함께 더욱 폭발하고 있고, 이것이 배출하는 아미노산은 치명적인 신경독소로서 떨림, 마비, 치매 등의 신경학적 장애를 낳는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버빗원숭이의 뇌와 비슷하게 병코돌고래의 뇌도 벌집이 되어 있었고, 플로리다주 사람들의 뇌에서도 비슷한 물질이 발견됐다. 사막과 물가를 가리지 않고 증식하는 시아노박테리아와 근접한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루게릭병, 알츠하이머병, 수은 중독 등의 질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2부에서는 이처럼 끔찍한 ‘신경퇴행 질환’ 외에도 기후변화가 우리 몸에 일으킬 ‘감염 질병’ 및 ‘트라우마’ 사례를 상세하게 다룬다. 앞에서 소개한 ‘수막뇌염’ 외에도 더욱 증가할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에볼라출혈열, 황열병, 소두증 등이 얼마나 위험한지 밝히고, 기후재난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이 시달리는 PTSD 증상을 소개하며 이를 치유할 해법을 모색한다. 

저자는 공중보건 정책의 혁신을 통해 신속하게 질병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개인으로서는 ‘명상(마음챙김)’과 ‘이야기하기’ 등이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어떻게 ‘자연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낄 것인가

저자는 전 사회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기존 환경 책의 막연한 결론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해법을 모색한다. 이 책이 단순한 데이터 보고서를 넘어 유려한 ‘과학 에세이’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저자의 예리한 논조가 각 장의 마지막에 이르면서 우리에게 뜻밖의 위안을 주는 사려 깊은 문체로 바뀌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후변화의 거대한 영향력으로서 ‘자연의 무게The Weight of Nature’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밝히는 동시에, 그 무게를 우리가 함께 느끼고 짊어지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감’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후변화의 피해가 막심한 낙후된 지역 공동체부터 살피는 저자의 섬세한 태도는, 미래에 대한 거대한 예측이나 섣부른 대안보다 ‘지금’ 나 자신과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 

비록 당장 많은 것을 바꿀 순 없겠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명상, 이야기하기, 역사, 회복력, 적응력, 언어 다양성 등의 해법은 기후변화의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치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정남 기자 insight15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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