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정체성, 국학을 그리는 만화가

민족의 정체성, 국학을 그리는 만화가

웹툰 <단군할배요>의 작가 호연

브레인 35호
2013년 01월 10일 (목)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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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호연은 네이버 웹툰 <도자기>와 <단군할배요>의 작가로 유명하다. <단군할배요>는 연재 당시 ‘정화툰(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웹툰)’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마니아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현재 해운대의 한 명상센터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그는 작품 창작의 비결이 명상과 수행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서울에 온 그는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은 작가답게 인사동에 먼저 들렀다고 한다.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소개할 때 인사동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인사동엔 우리 고유의 문화가 없다고 했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그는 우리 문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학과 국학의 차이부터 알아야 한다고 귀띔했다.

한국학은 고구려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문물이 한국화된 것이지만 국학은 그러한 외래문화가 있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있었던 것,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정신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국학을 그리는 만화가라고 소개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오랜 천착

국학을 강조하는 그에게 언제부터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물었다. 대학에서 고고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그림이나 유물, 유적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늘 화두였다고 한다.

“문화에는 사상과 정신이 녹아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은 무엇인지 늘 궁금했어요. 고구려 벽화 하나를 보더라도 거기에 녹아 있는 정신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우리 문화에 조화로움이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한국 문화의 본류를 ‘조화로움’에서 찾은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웹툰 <도자기>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국 도자기에 대해 공부할 때 세계적인 미술가나 도예가들이 우리 도자기를 본 순간 전율하거나 백자를 보고 울면서 절을 했다는 등의 일화가 정말 많았어요. 외국인들이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우리 문화를 정작 우리는 잘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 문화를 알려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게 됐죠.”

실제로 웹툰 <도자기>는 한국 도자기에 담긴 미적 감각을 일상적인 소소한 정서와 절묘하게 결합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도자기>는 곧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2011년에는 대한교과서와 디딤돌 출판사의 국어교과서 3학년 과정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우리 문화가 가지고 있는 조화로움이 중국 미술이나 일본 미술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답사를 다니면서 직접 접한 우리 문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조화로움과 자유분방함이에요. 그것은 중국 미술의 화려함이나 일본 미술의 섬세함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이죠. 도자기만 봐도 그래요. 가령 중국 황실에 납품하는 도자기가 좌우대칭이 맞지 않으면 아마 그 도공은 처형을 당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왕이 쓰는 도자기도 좌우대칭이 맞지 않아요. 이미 우리 민족은 자연에 좌우대칭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완벽한 좌우대칭은 조화로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니라는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일본 도자기와 조선 도자기를 비교해도 마찬가지예요. 청화백자에 청자유를 찍을 때 조선 도자기는 도장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지만, 일본 도자기는 그걸 용납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보지 못하는 거지요.”


호연 작가는 자신이 접한 우리 문화의 아우라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우리 문화의 원류를 찾고 싶었어요. 분명 공자의 유교나 석가의 불교에서 온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책을 찾고 교과서를 뒤져도 알 길이 없었어요. 저는 천성적으로 지식을 쌓거나 배우는 것보다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문화에 깃든 깊은 정서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유물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체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터득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우리에게 원래 있던 것, 선도라든가 풍류도,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말 안에 그런 의식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 깨달음을, 그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전하려면 단순히 유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녹아 있는 정서를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웹툰 <도자기>는 잔잔하고 오래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단군할배요>도 마찬가지다. 그는 단군할아버지를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친근한 대상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가 저에게 어떤 아이콘이기 이전에 그냥 나의 아버지이듯이 단군할아버지도 역사냐 신화냐를 따지기 이전에 저의 할아버지라고 느꼈기 때문에 애정을 가지고 그릴 수 있었어요. 고고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국학의 가치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만화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느낀 단군할아버지를 독자들에게 잘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수행과 명상을 통해 영감을 얻다

그런 그의 노력은 간혹 국수주의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단군할배요>에서 송아가 천화골에 맡겨지는 것, 꽃향기를 맡으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국가나 민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뿌리를 찾겠다고 하면 그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편협한 국수주의의 틀 안에 가두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는 사물을 접할 때 학문이나 지식보다는 직관에 의존하기를 좋아한다. 우리 문화를 접근할 때도 국가에서 정한 국보냐 보물이냐에 의미를 두기보다 자신이 봤을 때 좋은 것, 스스로 느꼈을 때 아름다운 것에 가치를 두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가치 있다고 인정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 사람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처럼.


“초대 문화부장관이 우리나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 세 가지 독毒이 있다고 했어요. 중독中毒, 왜독倭毒, 양독洋毒, 즉 중화사대주의, 식민사관, 그리고 서구 실증주의 사관이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거예요. 특히 우리나라는 식민사관으로 인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히 왜곡돼 있어요, 그러한 관점을 정화하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일까. <단군할배요>는 작가가 시간에 쫓기면서 그린 작품인데도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고요하고 고즈넉한 가운데 쨍 하고 가슴을 울리는 데가 있다. 


형식이나 틀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작품을 구상할 때도 이것저것 많이 알아 지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기보다 수행과 수련으로 체율체득해서 얻은 것에 기댄다고 한다. 그래서 웹툰을 그릴 때 뒷이야기를 미리 구상하고 그리는 법이 없다.

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물음이 떠오르고 해답을 찾는다.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려고 한다. 독자와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수단은 명상과 호흡이다.


<단군할배요>를 그릴 때는 매일 천 배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매일 절 수련을 하고, 뇌파진동을 15분 정도 해요. 마지막에 호흡과 명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귀한 시간이에요. 그 순간에 영감이 떠오르거든요. 평소에는 억지로 떠올리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데, 수행과 수련을 통해서는 저절로 이야기가 정리되는 것을 느껴요.”

글·전채연 ccyy74@naver.com | 사진·박여선 Pys03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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