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칼럼]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장영주의 파워브레인

▲ 그림 = 원암 장영주


 유월이 되니 애기 빛 연두색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초록이 눈 시리도록 감돈다. 때맞춰 변하기 위해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명의 법도인 듯하다. 

환호작약하는 녹색의 효과 때문인지 ‘노랫가락 차차차’라는 가요가 절로 떠오른다. 이 노래는 얼핏 들으면 ‘힘든 일들은 피하고 늙기 전에 실컷 놀고나 보자‘는 베짱이 심보 같다. 

그러나 우리겨레의 문화패턴에 대입하여 보면 이 가요의 진정한 뜻은 오히려 거룩하다. 비록 유행가이지만 신명나는 그 가락 속에 삼라만상의 변화를 깨우친 우리겨레의 오묘한 비의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 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는 “내려놓으세, 내려놓으세. 늙기 전에 내려놓으세.”란 의미이다. 구름 같은 내 안의 욕망이나 DNA속에 굳게 뭉쳐 공간과 대를 이어오는 슬픔, 외로움, 고정관념 등등 어두운 정보를 자유롭게 내려놓자. 

늙어가면서 뇌의 유연성이 떨어지면 정보의 양과 질에 휘둘려 내려놓을 수도, 선별할 수도 없는 법이다. 

그러니 젊어서부터 정보의 주인이 되어 쓸데없는 것은 과감하게 내려놓는 힘을 키워보자. 그러면 신명이 밝아지고 기운이 차오른다고 ‘차차차!’ 기세를 북돋아 준다. 

 “화무(花無)는 십일홍(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붉은 꽃도 단지 열흘뿐이고 보름달도 곧 이지러지니 세상만사 때에 따라 변하지 못하고 굳은 것은 주검이 될 뿐이다.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얼은 어울림이고 얼 씨는 생명의 조화로운 핵이다. 생명의 핵인 얼의 씨를 구하니 ‘얼씨구’이며 저마다의 얼 씨를 구하니 ‘절씨구’이다. 

까불(리)지 않고 하늘, 땅, 사람의 어울려 조화를 이룬 사람은 자신의 ‘얼의 씨앗’을 구하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그러면 땅에 피는 꽃마다 스스로 아름다울 지니 ‘지화자 좋~다’ 절로 무릎을 친다. 

’지화자(地花子)‘는 예로부터 ’사람‘의 별칭이다. 하늘의 법과 땅의 큰 덕이 어울려 조화롭게 피어난 꽃이 다름 아닌 ’사람‘인 것이다. ’좋다‘는 ’조화롭다‘의 준말이고 반대로 ’나쁘다‘는 ’나만 알 뿐이다‘라는 뜻이다. 

인간(人間)이 사람과 사람의 교감과 사람과 자연과의 조화를 모르고 오직 자기만 알 뿐인 사람‘은 ’나쁜(뿐) 사람‘이다. 

 나이 든 사람을 지칭할 때 ‘노인’보다 더 나쁜 표현이 ’늙은이‘이다. ‘늙은이’는 왠지 고집스럽고 완고하다고 경멸하는 의미가 겹쳐 있다. 노인들 스스로도 자신을 비하할 때 흔히 ‘이 늙은이’라고도 지칭한다. 

너나없이 늙은이는 왜 싫어하며 피할까? 어른은 ‘얼이 너른 분’이고 어르신은 ‘얼이 신처럼’ 영험한 존재이다. 노인도, 어른도, 어르신도 아닌 채 나이든 늙은이는 대체 누구일까? 

 ‘늙은이’는 ‘늘 그런 이’를 말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화하려는 참신한 의지도 없이 늘 그렇고 그런 사람이다. 

‘늘 그런 이’ 즉 ‘늙은이’가 되면 뇌의 시냅스는 연결이 느려져 굳어지면서 유연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오작동이 잦아지면 치매가 된다. 결국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늙은이는 홀로 내팽겨지는 딱한 처지에 놓인다. 

사람의 뇌는 컴퓨터 본체의 하드웨어라고 볼 수 있고, 삶에서 얻고 터득한 지식과 지혜는 소프트웨어에 비할 수 있다. 컴퓨터를 잘 제어 하면 본체의 ‘주인’이 될 것이고 방대한 정보에 이리저리 휘둘리면 ‘껍(깝)데기’가 될 뿐이다. 

‘생명의 본체’가 아닌 ‘정보에 불과한 껍(깝)데기’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 이에 선조들께서는 ‘까불(리)지 말라’는 경구를 내려주셨다. 

 늙은이와 젊은이의 구분은 생체적인 나이와는 큰 상관이 없다. 젊어도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오갈 때 없는 ‘늙은이’이다. 

생체나이는 높지만 늘 변화하려는 사람은 오히려 ‘완숙한 청춘’을 구가하는 분들이다. 예술계의 정상급 노대가들을 자주 뵙고 있다. 90세가 턱밑이지만 하심, 여유, 번뜩이는 유모어, 능히 이웃을 다정하게 기억하는 총기,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익어가는 청춘의 빛’을 볼 수 있다. 절로 행복한 분위기가 이루어지니 당연히 따르는 분이 많다. 

그런 경지에 오른 분들이야말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의 주인공이다. 젊은이처럼 늘 유연한 뇌의 소유자로 정보의 주인이 되면 신명이 “차차차!” 차오른다. 

더 기쁜 것은 ‘누구나 선택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깊은 뜻은 우리 선조들의 오랜 선도문화에서 잉태되고 전래된 것이다. 

마땅히 지켜야 할 신조는 끝까지 지키면서도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방법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능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정보와 삶의 주인이 된다. 

유월은 국토의 방방곡곡 신록이 익어가는 ‘젊음의 달’이다. 어린이, 어른, 어르신 모두가 나라를 신명나게 기려야 할 ‘현충의 달’이기도 하다. 

“가즈아 - 차차차!”

글.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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