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손島와 다솜島

[칼럼] 비손島와 다솜島


 오월! 송화 가루 눈처럼 흩날리고 밤새 두견새는 울어 옌다. 자연은 언제나 지금에 집중하고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은 당연히 가정의 달이 된다. 

1일 가족 같은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 날, 15일 스승의 날과 부처님 오신 날, 스님은 스승님의 준말이다. 20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등의 기념일이 있다.

 가정은 ‘집’이다. 집은 원시어원으로 부터 파생되어 온 ‘구멍’이란 뜻이다. 가족은 ‘집’이라는 같은 구멍에서 사는 혈거 인들이다. 사람은 성장에 따라 평생 ‘다섯 개의 집’에서 살다 떠난다. 

최초의 집은 마음이 깃들어 사는 ‘몸집’이다. 둘째 집은 내 식구들이 공유하는 ‘가정’이며 셋째 집은 ‘우리 집, 국가’이다. 넷째 집은 모두의 집 ‘사해일가, 지구’이며 마지막은 모든 존재의 고향이자 돌아 갈 곳인 ‘허공 집, 우주’이다. 

다섯 집중에서 현실의 생명활동이 펼쳐지는 뿌리이자 핵심공간이 가정이다. 가정은 가족이라는 인적요소와 정원이라고 공간요소가 합쳐진 말이다. 서양의 홈(home) 역시 패밀리(family)라는 구성원과 하우스(house)라는 공간이 합쳐진 말이다. 

 가장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자연처럼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놀라운 것은 어느 가정이든 그런 존재가 두 분이 계신다는 사실이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평생을 가족을 위해 지금에 집중하면서 자연처럼 생명을 내어주고 이어주는 분들이다. 

한분은 온 가족을 위해 평생 빌고 또 비는 ‘비손 어머니’이시다. 다른 한분은 자신보다 남편과 자식을 더 사랑하고 사랑하는 ‘다솜 아내’이시다. ‘비손’은 두 손을 비비면서 간절하게 소원성취를 간구하는 손이고 ‘다솜’은 사랑의 우리 고유의 옛말이다. 행복한 가정, 스위트 홈에는 당연히 언제나 ‘어머니’와 ‘아내’가 건재 하신다. 

 어머니들은 시집간 딸과, 군대 간 아들과, 분투하는 남편과, 늙으신 부모님의 안녕과 건강과 성공을 위해 늘 빌고 또 비신다. 어머니는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장독대에 정한수 떠놓고 비손하신다. 

여기에는 우리겨레의 과학과 문화, 철학이 깊이 녹아 있다. ‘빌다.’라는 행위는 ‘빛나게’ 하는 모습이다. 두 손 모아 용서를 빌면 어둡던 마음이 밝아지고, 두 손 모아 병이 낫기를 빌면 생기가 빛처럼 전달된다. 

석 달 열흘, 꼭 백일 간 기도를 위해 매일 어머니가 일어나시는 인시(03시~05시)는 자연과 인체의 에너지가 재생되는 시각이다. 그 때, 우물물은 육각수로 복원되어 순수한 에너지를 가장 많이 머금은 생명수가 된다. 

어머니의 우물물은 ‘물의 으뜸인 정한수’로 물맛은 달며 독이 없어 술이나 식초를 담가 두면 변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먼저 목욕재계로 밤새 정체된 기의 순환을 활발하게 하고 정한수를 흰 그릇에 담아 장독대위에 올려놓으신다. 

귀한 음식이 익어가는 우리 집 장독대는 가장 볕이 잘 들며 봉숭아를 심어 뱀과 해충이 들지 못하는 신령스러운 곳이다. 

어머니는 매일 그 시간, 그 곳에서, 그를 위해, 그 기도를 백 일간 손을 비비면서 한 결 같이 읊조리신다. 손을 비비면 열이 나고, 열이 나면 빛이 나고, 그 빛의 파동은 어머니의 가슴 앞에 놓인 정한수에 의해 증폭된다. 

정성을 다한 백일 비손 기도의 공명효과는 시공을 초월하여 상대에게 전달되고 쌓여 이윽고 바람직한 변화를 이루어 낸다. 동일한 행동을 백번을 되풀이하면 습관화가 시작되는 것이 뇌 생리이다. 

우리네 k-어머니의 백일기도는 수련도 학습도 필요 없이 오직 가족을 위한 정성만으로 이루어내는 탁월한 에너지 전달법이다. 

다솜島의 주인인 아내는 방법이야 어떠하던지 간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고, 사랑하는 존재이다. 그런 우리네 k-아내가 건재 하는 가정은 가장 안락한 휴식처요, 가장 행복한 배움터요, 사랑을 익히는 최소단위가 된다. 

 그러나 가끔가끔 망망대해의 무인도 같은 외로운 두 분의 속내를 가족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혹시 어머니와 아내는 그 외로움을 메우기 위해 집착하다시피 더욱 비손하고 더욱 사랑하는 것은 아니실까? 그렇다면 절해고도 같은 그 외로움의 깊이와 크기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머니의 ‘비손島’와 아내의 ‘다솜島’가 피폐한 외딴 섬이 되는가? 아니면 생명이 약동하는 치유의 섬이 되는가? 는 전적으로 가족들에게 달려있다. 

온 가족들의 존중과 격려 속에서 잘 살아온 아내의 얼굴 안에는 이미 어머니의 향기와 골격이 녹아들어 있다. 결국 ‘비손島’와 ‘다솜島’는 크고 풍요로운 섬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행복한 k- 가정, k- 스위트 홈은 점에서 선이 되고, 선에서 면이 되고, 입체가 되어 온 지구촌 가득이 평화가 넘칠 것이다.

글.원암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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