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승당(制勝堂)’, 뇌의 잠재된 역량을 높이다

[두뇌의 힘] 지혜로 계책을 세우다

브레인 103호
2024년 04월 11일 (목)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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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시 한산도의 제승당


뇌는 그야말로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따라서 존재의 가치는 뇌 안의 정보의 양과 질에 비례한다. 밝고 긍정적이어서 생산적인 뇌를 힘 있는 뇌로 파워브레인이라고 한다. 반면에 어둡고 비관적이며 파괴적인 뇌는 어두운 뇌로 다크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480여 년 전에 태어나시어 7년 전쟁의 지옥에서 나라를 구하고 그 자리에서 산화하셨다. 근세조선은 이순신 장군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수도 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지독한 사대적 풍조로 패배적이고 퇴영적인 왕과 조정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도망치기에 급급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스스로 자강불식의 삶을 쥐어짜듯이 만들어 가신다. 그분의 승리의 큰 원인은 장군 자신이 문인과 같은 높은 철학적 지성과 무인으로써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와 리더십으로 일관된 파워브레인의 소유자였다는 점이다. 


소통의 공간, 지혜로 계책을 세우다

청년 이순신은 애당초 문과 과거를 준비하다가 돌연 무과로 바꾸었다. 무인이었던 장인 방진의 권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본인도 어려서부터도 무반의 기질이 다분하였다고 마른 내에서 같이 자란 서애 유성룡은 기록하고 있다. 

장군이 되어서도 통영 한산도 진중에서 서재를 두고 공부도 하고 작전회의도 짜던 운주당(運籌堂)을 설치하고 운영한다. ‘운주’란 ‘지혜로 계책을 세운다.’는 뜻으로 후일 제승당(制勝堂)이 된다. 장군과 조선수군은 그곳에서 수많은 승리를 만들어 내었다. 

어떻게 해야 백성들의 목숨과 나라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서 ‘승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휘관의 자신과 주변에 대한 ‘소통력’에 달려 있다. 리더와 조직원들의 물샐 틈 없는 소통만이 승리의 길이며 살길이다. 

최고 지휘관뿐 아니라 여러 장군, 고위 군관들, 병졸일지라도 군무와 전투에 좋은 지혜와 꾀가 있다면 상하 밤낮없이 누구나 운주당을 출입하여 의견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다. '난중일기'에는 운주당의 모습을 이처럼 그리고 있다.

"모든 일을 같이 의논하고 계획을 세웠다(同論畫計)."

"온갖 방책을 의논했다(百爾籌策)."

"밤낮으로 의논하고 약속했다(日夜謀約)." 

그렇다고 늘 엄숙하고 어렵기만 한 곳은 아니다. 운주당은 계급에 따라 딱딱한 격식이 차려진 회의장소가 아니었다. 관병, 의병, 백성이 수직적인 관계로 굳어진 곳도 아니었다. 장군의 서재 ‘운주당’은 집무실이자 회의실이자 휴게실이었다. 

군무에 바쁘지 않으면 부하들과 바둑도 두고 술도 마셨다. 크게는 군사전략을 논했고, 조선 수군에 대하여 이야기했으며, 군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들었다. 작게는 부하들의 고충과 아이디어를 들으시고 백성들의 삶이 어떤지 마음으로 경청하신 격의 없는 소통공간 이었다. 

조선 수군의 앞길과 백성들의 생활, 임금과 나라의 안위를 밤낮으로 걱정했던 진실한 지도자의 방이었다. 운주당은 항상 열려 있어 일반 병사들도 찾아올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었고 ‘23전 23승’을 잉태한 공간이었다.


올바른 뇌활용의 중요성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불려가 고문을 당하매 원균이 조선수군의 지휘관이 되었고 당연히 운주당도 그 휘하에 들게 되었다. 

연전연승, 불패의 막강한 조선수군의 수장이 된 원균은 먼저 이순신 장군을 따르던 수하 장군들을 미워하며 멀리하였다. 다음 운주당의 출입을 막아버리고 그곳에서 술에 빠지고 여색에 탐닉한다. 서애 유성룡 대감은 '징비록'에서 한탄한다.

 "처음에 원균이 한산도에 부임하고 나서 이순신이 시행하던 여러 규정을 모두 변경하고 이순신을 보좌하던 모든 장수와 사졸들과 신임을 받던 사람들을 모두 다 쫓아버렸다. 특히 이영남은 자신이 전일 패전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더욱 미워하였다. 

-중략- 

원균은 자기가 사랑하는 첩과 함께 운주당에 거처하면서, 이중 울타리로 운주당의 안팎을 막아버렸다. 여러 장군들은 그의 얼굴을 보기가 드물게 되었다. 술을 즐겨먹고 날마다 술주정을 부리고 화를 내며 형벌을 쓰는 일에 법도가 없었다. 군중에서 자기들끼리 가만히 수군거리기를 만일에 왜놈들을 만나면 이 상황에서 우리는 달아날 수밖에 없다. 여러 장군들도 서로 원균을 비난하고 비웃으면서, 또한 원균이 두려워서 군사 일을 제대로 아뢰지 않게 되므로 그의 호령은 부하들에게 시행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운주당이자 제승당은 승리가 아닌 불통과 패배를 잉태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법도와 무기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끝)

글. 원암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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