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기원 이동섭 원장

[인터뷰] 국기원 이동섭 원장

[집중 리포트] 태권도는 어떻게 ‘K-보육’이 됐나

브레인 91호
2022년 04월 19일 (화)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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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예로 원조 한류를 만들어낸 태권도가 국내외 유아·청소년 교육 시장에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체력 단련을 위한 운동의 측면보다 인성 발달을 돕는 교육적 측면이 더 부각된 것인데, 세계태권도본부인 국기원의 이동섭 원장에게 전인교육의 새 모델이 되고 있는 태권도의 현황을 듣는다. 
 
▲ 국기원 이동섭 원장(태권도 공인 9단·20대 국회의원)


IOC 회원국이 206개인데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한 나라가 210개국이다.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는 태권도 종목에 61개국이 출전했다. 이제 태권도는 명실공히 세계인의 스포츠로 발돋움했을 뿐 아니라 국내외 유아·청소년 교육 시장에서도 환영받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태권도장은 필수로 보내야 하는 학원이 됐는데,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 문화유산인 태권도는 한류의 원조이고, 전 세계 2억 명이 수련하며 축적한 태권도의 저력이 오늘날 BTS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태권도 인구 2억 명이면 우리나라 인구의 네배인데, 왜 그 많은 사람들이 태권도를 할까? 태권도에는 인격도야라는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인성교육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1000여 개교에서 태권도를 정규 교과로 가르치고, 자국 무술 전통이 강한 중국도 2000여 개교에 태권도가 교과과정으로 들어가 있다. 유교의 나라 중국이 태권도장 10만 개, 사범 50만 명, 태권도 인구 5000만 명에 이른 것은 태권도를 하면 뭔가 달라진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성품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게 하는 태권도의 특성이 요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성교육으로 특화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무술로서의 정체성이 다소 약화된 반면, ‘K-보육’으로 불릴 만큼 인성 측면이 부각된 것인데, 태권도에서 가르치는 인성교육의 핵심은 무엇인가?

‘태권도 정신’이 그 핵심이다. 태권도 정신이란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의 기본 정신 소양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홍익인간 정신을 함축해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문장에 담았다. 태권도의 덕목은 경건, 성실, 용기이고, 이를 좀 더 보편적인 용어로 풀면 열정, 인내, 용기, 겸손,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열정과 인내는 성실을 세분화한 것이고, 겸손과 예의는 경건을 풀이한 것이다. 홍익인간 정신은 단군 이래로 강조돼온 우리의 정신인데 이를 태권도 수련과 연관지어 열정, 인내, 용기, 겸손, 예의의 다섯 가지 덕목으로 구체화했다. 

경건, 성실, 용기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수양 정신에 그 맥이 닿아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경건은 퇴계 사상의 핵심이고, 성실은 율곡 사상의 핵심이다. 퇴계 사상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전해져 그들 철학의 기초를 이뤘고, 일본 무사도 정신의 토대가 됐다.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정신문화가 태권도 정신의 근간이 되고, 또 세계인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태권도 정신이라고 하면 지금도 ‘예의, 염치, 인내, 극기, 백절불굴’의 다섯 가지 덕목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태권도 초창기에 한 개인에게서 비롯된 것이어서 이후 대한민국의 전통 철학 사상과 태권도인의 문화를 연구해 다시금 태권도 정신을 정립했다.  

현재의 태권도 정신은 ‘열정, 인내, 용기, 겸손, 예의’이다. 태권도 정신이 역사와 철학적 전통을 바탕으로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철학, 윤리, 역사, 문학, 전통문화 분야의 학자들과 함께 ‘태권도 헌장’을 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2021년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태권도 명예 9단증을 수여했다.
 

태권도를 통해 사회성이 개선되고, 인지 능력과 학습 능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보고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태권도를 통해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태권도를 수련하는 목적은 단순히 기술 전수만이 아니라 수련 과정을 통해 체력을 향상시키고 바람직한 품성을 갖도록 이끄는 것이다. 특히 태권도는 무도 정신과 스포츠 정신이 함께 어우러진 무도 스포츠로서 강한 체력과 판단력, 자신감을 길러준다.  

태권도 수련을 통해 얻는 효과는 수련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신체적 효과로 튼튼한 몸과 자세를 갖는다. 둘째, 심리적 효과로 자기 자신을 수양하며인내심을 기른다. 셋째, 사회적 효과로 운동에서의 경쟁자는 적이 아닌 우리라는 의식을 갖는다. 넷째, 도덕적 효과로 신체 단련과 정신 수양을 통해 윤리적인 기준을 갖춘다. 이러한 효과들에 비춰볼 때 태권도의 목적은 신체와 정신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초등학교에서 태권도 수련을 도입한 이후 아이들의 생활 태도가 달라지고 숙제를 해오는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는 보고가 있다. 또 태권도 수련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공격성을 낮춘다는 연구 보고도 있는데, 이 연구의 흥미로운 점은 13~17세 비행 청소년 34명을 대상으로 실험집단을 3개로 나눠 비교한 것이다. 집단1은 전통적인 태권도 수련을 하고, 집단2는 무술 훈련만 할 뿐 정신적인 부분은 지도하지 않았다. 집단3은 태권도가 아닌 조깅, 농구, 미식축구 등의 운동을 코치의 지도하에 정기적으로 수행했다.

6개월에 걸친 실험 결과, 3개 집단 간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집단1은 불안과 공격성이 줄고, 자아존중감과 사회적 기술이 향상됐으며 상식적 삶의 가치들을 더 잘 인지했다. 집단2는 연구 시작 시점보다 공격적 성향이 오히려 증가하고 성격 조절 능력은 낮아졌다. 집단3은 비행 성향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자아존중감과 사회적 기술 점수는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태권도 수련이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에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권도 수련의 생리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효과를 연구분석한 국내외 학술 논문은 1985년부터 2019년에 걸쳐 2000건 이상 쏟아졌다. 국기원에서는 이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태권도를 12주 동안 수련했을 때의 효과’로 한눈에 알기 쉽게 정리해서 알리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경연 프로그램인 <아메리카 갓 탤런트>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의 <갓 탤런트> 경연에서 태권도 시범단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범단 공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평화는 승리보다 소중하다’는 펼침막도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태권도 세계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태권도 세계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의 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확산시키는 것과 함께 선한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개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확산시키는 것은 현대 한류의 세계적인 확산과 맥을 같이하는 것인데, 사실상 태권도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가장 초기 형태의 한류라 할 수 있다.

한류라는 말이 있기 몇 십 년 전부터 태권도는 세계에 한국 문화를 널리 알려왔고, 이후 한류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인들이 대한민국을 다시 보고 한국 문화의 독자적 가치에 대해 존중과 관심을 갖게 됐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하고, 한글을 배우려고 하는 문화적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이런 확산세를 더욱 공고히 해서 태권도의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고, 태권도 분야의 학술적 지식과 문화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 유소년들의 문화를 장악한 시대가 있었는데, 이로 인해 일본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이 실제로 강화됐다.

그와 같이 우리도 태권도를 세계화 함으로써 한국 문화가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행복 증진에 기여해 한국이 세계 속에서 존중받으며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정당한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한다. 

한국의 관광산업이 발전하고, 한국 상품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그에 뒤따르는 효과일 것이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전 세계 태권도인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태권도인들이 태권도 수련을 통해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보다 발전시켜 자아를 실현함 으로써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자신을 이기고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열정, 인내, 용기, 겸손, 예의의 정신으로 수련하는 태권도인을 양성하고자 하는 태권도 세계화의 궁극적인목표이다. 이 같은 노력과 함께 세계 평화도 증진될 것이다.
 

▲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 출연해 공연을 펼친 태권도 시범단
 

세계 태권도 본부 역할을 하는 국기원의 책임자로서 현재 고심하고 있는 태권도의 문제점이나 과제는 무엇인가?

국내 태권도의 위상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해 해외에서는 태권도 지도자들을 마스터로 대우하는데, 정작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북한 태권도 

에 비해서도 매우 낙후된 현실을 타개하려면 태권도에 관한 법률 제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1년 6개월에 걸쳐 여야 국회의원 228명의 공동 발의를 받아 2018년 태권도가 국기임을 명확히 하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 법제화 측면에서 보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고, 무궁화도 국화가 아니다. 그런데 태권도는 법률 제정을 통해 국기로서의 위상을 확보한 것이다.

태권도의 내재적 가치를 강화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이는 태권도의 무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무도성 강화란 태권도를 단지 스포츠가 아닌 수양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태권도의 실전성과 정신성을 높이고자 한다. 호신술로서의 기능과 체계를 갖춤으로 써 실전성을 높일 계획이다.

또 50년 전에 지은 국기원 건물을 재건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 국기원을 찾는 국내외 방문객이 연간 30만 명에 이르는 데 시설이 낡고 협소해서 시범 공연, 수련, 심사, 대회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부적합할 뿐 아니라 안전 문제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국의 소림사, 일본의 국기관과 무도관, 북한의 태권도전당은 규모나 시설 면에서 위용이 상당하다. 국기원이 대한민국 태권도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날을 꼭 만들겠다.


▲ 국기원 제공
 


태권도 공인 9단이다. 태권도와 함께해온 인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 요즘 아이들이 이전보다 체력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공부는 반드시 체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태권도를 하면 체력과 정신력을 기를 수 있고, 키도 크고, 예의범절을 익히고, 지능지수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논문들이 다수 있다.

나 자신도 그 사례 중 하나다. 열 살 때부터 태권도를 꾸준히 한 덕분에 키가 180까지 자랐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는 아주 약골이어서 밖에서 만날 맞고 들어오니까 부모님이 맞지 말라고 태권도를 시키셨다.

태권도를 하지 않았으면 68세인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또 태권도를 통해 백절불굴의 정신을 기른 덕분에 국회의원 낙천과 낙선을 여섯 번 거듭하면서도 숱한 난관을 넘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꿈과 비전을 이룰 희망이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 손에 잡히지 않아도 태권도 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다, 해보자고 도전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어떤 꿈과 비전이 있었던 것인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다. 국기로서 태권도의 위상을 높이고 태권도를 우리 문화 자산으로 발전시키는 데 입법부의 권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오로지 태권도와 관련한 일들에 집중해 국내외에서 많은 성과를 이뤄냈고, 의정 활동에서 늘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2021년 초, 국기원장을 맡으면서 태권도 교본을 50년 만에 새로 발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태권도의 핵심 역량을 담은 실전 호신술 책도 엮어내고, 인성교육 과정도 새로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무도 태권도를 활성화하고 세계화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태권도의 교육적, 문화적, 외교적, 스포츠적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나의 비전이다. 


글_ 방은진 ┃ 사진_ 김경아 ┃ 자료 사진_ 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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