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대일항쟁기 ‘조선인 강제노동’ 인정을 뒤엎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는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36곳의 유네스코 등재 신청지역에 대한 심사를 진행했다. 일본의 강제징용의 역사가 서린 근대산업시설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는 일본의 주장을 등재 결정문의 본문이 아닌 주석에 포함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수용하면서 세계유산위원회 만장일치로 등재 안이 통과됐다.
이에 대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일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forced to work’라는 영어 표현을 ‘일하게 됐다’고 수동형으로 번역해 마치 강제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자들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의 판결문에도 ‘forced to work’는 강제노동의 의미로 사용됐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스스로의 주장을 뒤엎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ㆍ보상 문제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보는 지적이 많다. 기시다 외상은 “1965년 일-한 협정에서 이른바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 문제를 포함해서 일·한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에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또 스가 장관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 종전(終戰) 때까지 사이에 '국민징용령'에 근거를 두고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이 이뤄졌다"라며 “(이런 동원이) 이른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은 (일본) 정부의 기존 견해"라고 말했다. 스가 장관의 발언은 국민징용령이 합법이라는 견해에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이 과거 한국인과 한반도를 식민지배한 것 역시 합법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그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이 극한 대립을 피하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냈다”라며 “우리의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뤄낸 값진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자화자찬했지만 일본 정부의 말 바꾸기로 뒤통수를 맞은 결과가 됐다.
세계유산에 오른 일본 내 산업 시설 23곳 중 7곳은 조선인 5만 8,000명이 강제로 끌려가 94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는 뜻의 ‘지옥섬’이었다. 이들을 두 번 죽이는 일본 정부의 말 바꾸기는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도 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를 알리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