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좌뇌는 주요 내용만 간추려져 있는 책과 같다.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12가지 것들’류의 제목이 달린 책 말이다. 그것은 좌뇌의 성향을 묘사하는 가장 완벽한 비유다. “좋아, 대충 계획을 세우고 확정짓자고. 이걸 이렇게 하고, 저걸 저렇게 하면 완벽할 거야!” 좌뇌는 늘 이런 식으로 말한다.
나는 내 책 전체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어떠한지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형태와 가치, 의미,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나름의 계획, 생각 또는 신념이라는 획일적인 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며, 그로 인해 세상을 더 복잡하고 편협하게 만든다.
진정으로 현명한 태도는 어떤 것에 대해서든 확신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 책이 가진 또 다른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 태도야말로 진정으로 창조적이다. 어떤 것에 대해서든 더 세세하게 파악할수록 실제로는 더 많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일은 세상을 창조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일들을 멈출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미 거기에 도사리고 있던 다른 멋진 가능성들이 발전해나갈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감춰진 진실이기도 하다.
당신은 심리학자이자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어떻게 조언하는가?
나는 심리학자로서 삶에서 문제를 겪는 환자들을 무수히 만난다. 환자들의 마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고집하는데, 그 고집이 얼마나 센지 나는 환자들에게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다. 환자들은 그 말을 들을 여유가 없다. 치료는 언제나 그런 식이다.
나는 종종 환자들을 볼 때, 그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환자에게 그런 사실을 말해준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환자들 스스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올바르지 않은 방식이라는 사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깨달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오는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이러한 처방을 하곤 한다. 어떤 일이든 자기가 바라는 방향으로 몰아붙이려고 하지 말고, 그러한 의도를 최대한 버린 채 일이 되어가는 그대로를 포용하고 내버려두라고 말이다. 이 치료법은 상당한 효험을 발휘하고 있다.
당신이 말한 그 치료법은 어떤 철학적인 관점에 바탕을 둔 것처럼 보인다.
맞다. 나는 명상법을 치료에 응용하고 있다. 명상은 자신의 경험을 가로막는 모든 일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게 한다. 사람들은 바꾸지 못할 과거의 나쁜 기억을 떠올리느라 분주하고, 예측하지도 못할 미래를 좇느라 허둥댄다. 그 때문에 정작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명상이 우측 반구의 광범위한 신경망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뇌파를 측정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명상을 하는 사람의 좌뇌와 우뇌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조화로운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도 드러났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다른 일을 멈추고 명상을 해, 자신의 삶에 여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나 종종 소란스러운 마음의 기계를 끄고, 현재에 머물며 명상 수행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뇌를 단순히 인지능력을 수행하는 기관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호흡과 근육 움직임, 감각과 감정까지 모두 뇌에서 조절하고 통제한다. 인간 뇌의 궁극적인 활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주 좋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흔히 뇌를 기능적으로만, 이를테면 ‘통 속에 담긴 뇌’ 식의 이미지로 연상하는데, 당신의 질문은 우리 몸 전체가 뇌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뇌를 단지 인지능력을 수행하는 장치로 받아들이는 관점은 기계적이다.
그것은 마치 밸브와 펌프, 온도 조절 장치들의 스위치가 열렸다 닫히는 복잡한 시스템처럼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이다. 그런데 대뇌반구에는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것은 우뇌의 특징 중 하나인데, 우뇌는 뇌의 깊숙한 부위, 즉 비교적 초기에 형성된 뇌의 심부나 몸으로부터 전달되는 정보를 좌뇌보다 훨씬 잘 감지해낸다는 것이다.
앞서의 얘기로 돌아가면, ‘인지 모델’로 뇌를 이해하다 보면 자칫 잘못된 해석에 빠질 수 있다. 마치 뇌를 컴퓨터인 양 생각하게 되고. 기억을 데이터뱅크인 양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의 뇌나 기억은 전혀 그렇지 않다. 먼저 기억은 인간의 세계 가운데 일부분이며, 그것은 몸 전체로 분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육도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기억은 데이터뱅크처럼 언제나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맥락에 따라 움직이며, 그런 점에서 약하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로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오랜 연구를 통해, 심장조차도 뇌에서 명령을 일방적으로 하달받는 게 아니라 서로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을 하면서 뇌에 많은 정보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가슴 한가운데의 묵직하고 답답한 느낌을 잘 알 것이다. 물론 몸에서 느끼는 감각은 뇌에서 보내는 정보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분명히 현상학적으로 몸에서 느껴지고 경험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몸과 뇌는 기계처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지과학이 매우 실용적이고 유용하다손 치더라도 데카르트의 이성주의를 ‘덜’ 따르고, 철학의 현상학적 전통을 ‘더’ 따라야 한다. 특히 메를로-퐁티Maurice Merlo-Ponty의 철학에 주목해야 하는데, 그는 몸과 마음의 관계에 몰두한 지난 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명이다.
이후 당신의 지적 항로는 어디인가?
나는 현재 《산미치광이는 원숭이다Porcu-pine is a Monkey》(옮긴이 주 : 산미치광이는 쥐목 포유류 동물로 고슴도치와 비슷하게 생겼다)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살아 있는 미국인 신경과학자 중 가장 뛰어난 학자인 마르셀 킨즈본Marcel Kinsbourne이 그의 동료 데글린Deglin과 함께한 실험에 대해 소개할 생각이다.
그들은 피실험자들의 한쪽 대뇌반구를 둔화시킨 다음 인터뷰를 진행하는 실험을 한 바 있다. 킨즈본 박사는 피실험자들의 좌뇌나 우뇌, 또는 필요에 따라서는 양쪽 반구 모두를 둔화시킨 다음 실험을 진행했다. 피실험자들은 학자들이 설계한 ‘거짓 삼단논법’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 삼단논법이란, 두 개의 전제로 한 개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삼단논법에서 그 전제 중 하나가 틀린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 됐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이런 책을 쓰는 이유는 그 실험이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에 대한 엄청난 진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기술을 아는 똑똑한 사람들은 어떤 것들이 세상에 먹히리라는 걸 알고 그것을 판다. 세상에는 온통 그런 직업이 난무한다. 교사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학생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아이에게 자신의 열정을 전염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은 점점 본질에서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것은 “학생은 이 과정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고, 여기에 적힌 것들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라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런 태도는 마음에 감옥을 만들며 상상력을 차단한다. 이러한 태도로 살아간다면, 궁극적으로는 우리 문명도 쇠퇴와 파국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글·마거릿 에모리 Margaret Emory | 번역·구승준
이 기사는 국제뇌교육협회(IBREA) 발행 영문지 《BrainWorld》와의 기사 제휴를 통해 본지에 게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