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단순한 기성세대의 투정이나 세대 차이에서 비롯된 잔소리가 아니다. 오늘날 교실, 가정, 직장, 사회 전반에서 점점 더 자주 들리는 이 말은, 우리가 마주한 정서적 위기와 인간관계의 균열을 가리키는 신호탄이다. 친구의 기분을 살피지 못해 무심코 상처를 주는 일상, 작은 오해가 큰 갈등으로 번지는 상황들. 이 '눈치 없음'의 저변에는 단순한 예의 부족이 아닌, 비언어적 소통 능력의 저하와 공감력 부재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놓여 있다.
▲ 눈치 없는 세상, 공감력 위기! '사회성 결핍' 시대의 인성교육이란?
데이터로 드러난 ‘공감력 위기’… 그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최근 OECD 사회·정서 기술 조사 보고서(2023)와 해외 연구들은, Z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표정, 말투, 분위기 등 비언어적 단서를 감지하는 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고 경고한다. 쉽게 말해, 눈치가 줄어든 것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비대면 교육과 마스크 생활, 디지털 기반 소통이 일상화되면서 정서적 상호작용의 기회는 급감했다. OECD는 해당 보고서에서 공감, 자기조절, 관계 유지력 등 사회·정서 기술(Social and Emotional Skills)이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임을 강조하며, 이 능력의 결핍이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성과와 사회적 성공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흐름은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Benefits Canada 설문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의 Z세대 근로자 중 24%가 “코로나 시기의 원격 교육 및 비대면 환경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감소했다”고 답했고, Forbes(2024.6.16)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일부 Z세대가 실제 상황에서 타인의 감정을 읽고 반응하는 능력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눈치 부족이 아니라, ‘디지털 감정 단절(Digital Emotional Disconnection)’이라는 심리적 현상으로 해석된다. 감정 교류의 뿌리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등 다수 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스마트폰 과의존도가 높을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확인되었으며, 온라인 중심의 소통이 비언어적 신호 인식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분석도 잇따른다. 이로 인해 오해, 감정 단절, 관계 갈등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학계의 경고: “눈치 없음은 사회적 생존력의 결핍”
눈치 없다는 평은 때때로 “솔직하고 자기주관이 뚜렷한 세대”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공감 부족, 정서적 교류 결핍,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이해 부족이 그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생존 능력의 결함으로 이어진다.
공감력은 단순히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갈등을 예방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정서적 네비게이션이다.
이러한 상관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연구들도 있다. 2025년 발간된 『인성교육연구』 제10권 1호에 실린 「청소년 인성역량과 비언어 공감감지력의 상관관계 연구」는, 비언어적 감지력과 공감 능력 간의 상관계수가 r = .74에 이른다고 밝히며, 공감 감수성이 학교폭력 예방과 자아존중감 증진에 실질적으로 기여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청소년의 공감능력과 친사회적 행동의 관계에서 정서표현의 매개효과」 연구는, 공감 능력이 높을수록 친사회적 행동이 증가하며, 자기 감정 표현 능력이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두 연구는 공통적으로 말한다. 타인의 정서를 감지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가 갈등을 예방하고 건강한 또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눈치 없음은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사회를 살아갈 생존력의 결핍 신호인 셈이다.
인성교육의 진화: ‘공감은 생존의 기술이다’
공감력 저하는 단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의 정서적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구조적 징후로 해석해야 한다.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은 사라졌고, 가정의 대화는 줄어들었으며, 디지털 환경은 감정을 텍스트로 단순화시켰다. 결국 공감이 자라날 심리적 토양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성교육은 예절과 도덕 교육을 넘어, 공감력, 감정 표현력, 정서 소통력 등 사회·정서 역량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교육 현장에서는 이러한 역량을 실제로 훈련할 수 있는 체계적 접근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감정 인식 → 조절 → 표현 → 소통으로 이어지는 전인적 인성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뇌 기반 자기조절력과 공감 회로를 활성화하는 실천적 교육, 즉 뇌기반 인성교육, 뇌교육 중심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감정이 끊긴 시대를 회복시키는 교육의 본질적 진화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인성교육연구원 신재한 원장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아이들이 눈치 없어진 건 감정 소통의 위기입니다. 상대의 표정, 말투, 분위기를 느끼고 조율하는 능력은 공감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공감은 생존의 기술’이며, 뇌를 기반한 학습과 훈련을 통해 길러질 수 있는 역량입니다.”
눈치, 다시 배워야 할 감정의 언어
눈치 없는 세대는 곧 공감 없는 사회로 이어진다. 이제 ‘눈치’를 단순히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읽고 내 감정을 조율하는 능동적 ‘감정 언어’**로 재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감정 언어는 인성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눈치는 단지 ‘보는 기술’이 아니라, **‘느끼고 반응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고,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감정 기반의 생존 센서다.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먼저 ‘눈치’를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은 아이들보다 우리 어른들일지도 모른다.
글. 장인희 객원기자 heeya71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