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뇌를 공격한다... '환경 불안 트라우마' 급증

폭염이 뇌를 공격한다... '환경 불안 트라우마' 급증

뜨거워지는 지구, 우리의 '마음'도 병들고 있다 : 환경 불안 트라우마의 그림자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 현상이 심화되면서, 단순히 물리적인 피해를 넘어 우리 마음속에 깊은 불안과 절망감을 심어주고 있다.

32도 이상의 폭염이 지속될 경우, 우리 몸과 뇌의 단백질 변성으로 열사병이나 열탈진같은 온열질환은 물론 열스트레스에 의해 뇌기능 및 뇌건강 이상, 심혈관 질환 등 사망위험도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기후 우울증' '환경 불안(Eco-anxiety)'과 같은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기후 변화가 개인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이제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 지구의 열대화 폭염, 뇌건강 위협은 물론 '환경 불안 트라우마' 일으켜


환경 불안 트라우마, 그 정의와 확산

'환경 불안(Eco-anxiety)'은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로 인해 미래에 대한 만성적인 두려움, 우려, 슬픔, 무력감 등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걱정을 넘어, 일상생활의 기능에 지장을 주거나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유발할 때 '환경 불안 트라우마' 또는 '기후 트라우마'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기후 위기의 장기적인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될 젊은 세대와 청소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여러 연구에서 이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높은 수준의 걱정을 표명하며, 학업, 직업 선택, 심지어 출산 계획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환경 불안 트라우마 학문적·과학적 연구 결과: 기후 위기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환경 불안은 더 이상 막연한 감정이 아닌,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리적 증상 발현
다양한 연구에서 환경 불안이 우울증, 불안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유사 증상, 수면 장애, 식욕 부진, 집중력 저하 등과 연관성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급작스러운 자연재해(산불, 홍수, 태풍 , 가뭄 등)를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서는 직접적인 트라우마와 함께 심각한 환경적 불안이 동반되는 경향을 보인다.

청소년 취약성
2021년 국제 학술지 '더 랜싯 플래니터리 헬스(The Lancet Planetary Health)'에 발표된 대규모 국제 연구(Hickman et al. 2021)에 따르면, 전 세계 10개국 청소년 및 청년 1만 명 중 59%가 기후 변화에 대해 '매우' 또는 '극도로' 걱정하며, 45%는 이러한 걱정이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이는 젊은 세대가 기후 위기로 인한 정신 건강 문제에 특히 취약함을 보여준다.

생태학적 슬픔(Ecological Grief)
자연 환경의 파괴나 상실로 인한 슬픔, 비탄을 의미하는 개념도 등장했다. 이는 특정 생태계나 종의 소멸,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훼손 등을 목격하며 개인이 느끼는 깊은 상실감을 포함한다.


▲ 지구의 열대화 폭염, 뇌건강 위협은 물론 '환경 불안 트라우마' 일으켜


환경 불안 트라우마의 사회적 문제 '불안'을 넘어 '무력감'과 '불신'으로

환경 불안은 개인의 정신 건강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지만, 정부나 기업의 미온적인 대응에 대한 무력감과 불신을 느낀다. 이는 사회적 냉소주의를 심화시키고, 집단행동을 통한 변화의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기후 변화의 영향은 사회경제적 약자나 소수자에게 더 불균형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트라우마 발생 위험을 높인다.

또 환경 문제의 복잡성을 간과하고 개인의 소비 습관 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는 오히려 환경 불안을 가중시키고 죄책감을 유발할 수 있다.
 

환경 불안 트라우마의 국내외 대응 방안

환경 불안 트라우마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공동체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우선, 정신 건강 서비스 확대해야 한다. 환경 불안을 겪는 이들을 위한 전문 심리 상담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이 필요하다. 지자체 및 보건소 차원에서의 심리 지원 강화가 중요하다. 

둘째, 환경 교육 강화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되, 희망과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긍정적인 환경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청소년들이 기후 행동에 참여하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정보 전달의 변화가 필요하다. 미디어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정확히 전달하되, 과도한 공포를 유발하기보다는 해결책과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하는 균형 잡힌 보도 자세가 필요하다.

영국, 미국 등에서는 '기후 심리학자(Climate Psychologist)'와 같은 전문가들이 활동하며 환경 불안 상담 지침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정신 건강과 기후 변화'에 대한 보고서를 꾸준히 발간하며 정책 입안자들에게 정신 건강 영향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 기후 변화 대응 그룹을 만들거나, 자연 속에서 치유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여 소속감을 높이고 무력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기후 활동가들은 단순히 시위를 넘어, 정부와 기업에 실질적인 기후 정책 변화를 요구하며 개인의 무력감을 집단적 행동으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뇌기반 트라우마 심리치료 기법을 개발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오주원 학과장은 "환경 불안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뇌는 고장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위협인 기후 위기 신호를 감지하고 예측하는 뇌신경적 민감성이 뛰어난 것이다.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우리가 환경 위기 속에서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병적인 것이 아니라, 뇌가 더 나은 생존을 위해 위험을 경고하고 대비하게 만드는 중요한 신호체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 교수는 "이러한 민감성은 비극이 아니라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신호탄'이다. 따라서 이 신호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삶의 방식을 조율하고 더 지혜로운 대처를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뇌의 놀라운 적응 능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길"이라며, "신경적 민감성이 압도적인 무력감이나 깊은 절망의 '생태 마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당신의 뇌가 느끼는 불안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뇌가 회복탄력성을 갖도록 뇌를 훈련하고 돌보는 브레인 케어(Brain Care)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환경 불안 트라우마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새로운 정신 건강 도전이다. 개인의 마음을 돌보는 것을 넘어, 사회 시스템과 정책, 그리고 우리 모두의 연대가 기후 위기 시대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 장인희 객원기자 heeya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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