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북스] 기억을 비울수록 뇌가 산다

[브레인 북스] 기억을 비울수록 뇌가 산다

뇌를 젊게 만드는 습관


추리 소설 『셜록 홈스』 시리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천재 탐정 홈스는 뛰어난 추리력과 집중력을 가진 천재지만, 건망증이 심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요? 그런 건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 뇌의 다락방은 더 중요한 생각으로 채워야 하거든요.”

셜록 홈스가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기억을 지우개로 지우는’ 일은 소설 속 설정이지만, 그 안에는 뇌 과학에 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실제로 현재 학계에서 가장 앞선 연구를 하는 뇌 과학자들도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력보다 더 중요한 건 망각력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억력이 좋을수록 더 똑똑하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시험, 입사, 승진까지 모든 삶의 국면이 얼마나 잘 기억하느냐에 달린 듯 보였다. 그러나 AI 시대에 도래한 지금은 어떠한가. 검색 한 번이면 무엇이든 즉각 알 수 있고,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제2의 기억 창고가 됐다. 기억력의 역할은 줄어들었고, 필요한 정보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꺼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이 책의 저자인 뇌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인지과학자 이와다테 야스오 교수는 이 전환점을 정확히 짚어 내며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그는 망각이 단순한 노화나 뇌의 실패가 아니라, 뇌가 의도적으로 실행하는 ‘정보 정리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뇌는 불필요한 정보, 감정이 약한 기억, 오래된 사건들을 스스로 지우며 뇌 속의 다락방(용량)을 사고와 창의의 공간으로 채워 간다. 한마디로 기억을 비울수록 뇌는 건강해지고 수명이 길어지며, 망각함으로써 우리는 사고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책은 망각의 과정을 신경 세포와 단백질 등 인체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일상 속 사례로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다. ‘옛 친구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냉장고 문을 열긴 열었는데 뭘 꺼내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등 일상에서 흔히 겪는 망각의 경험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이며 오히려 뇌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 책은 단순한 뇌 과학 해설서를 넘어서 정보 과잉의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생존 전략서다. 과거의 통념을 부수는 통쾌함과 함께 ‘자꾸 무언가를 까먹는 나’를 다정히 이해하는 따뜻함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이렇게 묻는다.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 더 나은 삶일까? 중요하지 않은 사실은 잊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닐까?”
 

잘 잊는 뇌가 더 똑똑하다: 기억 중심 사고의 전환

우리는 대개 기억력이 좋을수록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잘 보고, 약속을 잊지 않고, 오랫동안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는 능력은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이와다테 야스오 교수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오히려 “잘 잊는 뇌가 더 건강하고 똑똑하다.”라고 말한다. 뇌 건강을 관리하고 뇌 수명을 늘리고 싶다면 망각이 뇌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당연시해 온 ‘기억 중심의 뇌 사용법’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기억은 뇌의 기능 중 하나일 뿐이며, 뇌는 실제로 불필요한 기억을 스스로 지우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제시된다. 최신 뇌 과학이 밝혀낸 사실은 이렇다.

“뇌는 기억을 적극적으로 지우기 위한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의 기억을 적절히 지우지 않으면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일 수 없고, 기억을 바탕으로 한 사고 역시 깊이 있게 확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중요한 대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며칠 전 했던 고민조차 가물가물해지는 현상은 건망증이 아니라 뇌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걸러 낸 결과일 수 있다.
 

뇌의 생존 전략: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우는 것!

어릴 때부터 우리는 ‘망각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주입받아 왔다. 이제 이러한 인식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칠 때가 되었다. 뇌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망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뇌는 기억을 남기는 것보다 ‘잊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뇌 속에서는 신경 아교 세포가 끊임없이 시냅스를 청소하고 회로를 정돈하면서 오래된 기억이 점차 사라진다. 

이러한 뇌의 작동 방식은 복잡한 정보를 단순화하고, 사고력을 보존하기 위한 전략이다. 기억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이 넘치면 사고에 잡음이 일고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특히 뇌는 감정과 연결된 정보는 강하게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경험은 쉽게 지워버린다. 기분 좋은 대화, 충격적인 사건, 자기 존재와 직결되는 경험은 잘 남는다. 그러나 점심 메뉴나 어제 본 뉴스의 세부 내용은 빠르게 사라진다. 이것은 뇌가 중요도를 평가해 정보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여 작동하는 기전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뇌 과학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뇌가 기억을 지우는 이유를 삶의 맥락에서 풀어낸다는 점이다.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경험과 감정을 선택적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놓아 버림으로써 더 유연하게 사고하고 적응해 왔다. 이는 생존을 위한 진화적 결과이기도 하다.

이와다테 야스오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저하되는 현상을 ‘노화’나 ‘질병’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거두기를 권한다. 나이 들수록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실제로는 나이가 들면 단기적인 일화나 자잘한 기억은 줄어들지만, 감정적인 통찰이나 의미 중심의 기억은 더 깊어진다. 즉, 나이 듦은 단순히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삶을 정리하고 본질에 집중하도록 뇌가 바뀌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잊는 능력=지적 자산: 뇌 과학이 말하는 기억과 망각의 균형

이 책은 기억의 정체와 망각의 과정을 통해 망각이 뇌 기능을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잊어도 되는 기억’은 어떻게 빨리 잊고,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은 어떻게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를 뇌 과학적 방법론으로 소개한다. 이와 더불어 수면, 운동, 생활 습관이 기억과 망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며, 더 건강한 뇌와 삶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법도 알려 준다.

현대 사회는 과잉된 정보, 끊임없는 자극,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며 뇌를 지치게 만든다. 저자는 ‘기억을 지키는 법’이 아니라 ‘정보를 덜어 내는 법’을 배우기를 권한다. 수면, 운동, 예술 활동 등 뇌를 정돈하는 습관이 기억력보다 망각력을 강화하고, 정서적 안정과 창의적 사고를 회복시키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은 기억을 덜어 내는 것이 삶을 더 잘 살아가는 방법이며, ‘잊는 능력’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적 자산임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설파한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