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브레인] 인공지능 시대에 교육의 중심은 '케어care'

[파워브레인] 인공지능 시대에 교육의 중심은 '케어care'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 한류학 연구하는 조지은 교수

브레인 112호
2025년 08월 12일 (화)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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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조지은 교수 [사진=김경아]


올해 1월,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어 단어 7개가 새로 등재됐다. ‘달고나dalgona’, ‘노래방noraebang’, ‘형hyung’, ‘막내maknae’, ‘찌개jjigae’, ‘떡볶이tteokbokki’, ‘판소리pansori’. 2021년에도 ‘K-드라마K-drama’, ‘오빠oppa’, ‘누나noona’, ‘한류hallyu’, ‘먹방mukbang’, ‘대박daebak’ 등 26개 단어가 대거 등재된 바 있다.

이 같은 등재 작업에 편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영국 옥스퍼드대 조지은(영국 이름은 Jieun Kiaer) 교수를 만났다. 작년 초 옥스퍼드대에 처음 개설한 ‘한류 아카데미’를 이끌며, 배우 차인표 씨와 작곡가 김형석 씨를 초청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조 교수는 서울대 아동가족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딴 뒤 2007년부터 영국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직을 맡았다. 제2 외국어 습득 연구 분야의 권위자로 옥스퍼드대가 발간하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위원이다. 

조지은 교수와의 인터뷰는 한류를 주도한 BTS의 모교로 잘 알려진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평생교육원 온라인 특강에 이어, 이날 교직원 대상 특강도 진행됐다. 

현재 글로벌사이버대학교는 조지은 교수가 대표로 참여한 한국어 교재 《안녕? 코리안!》을 교과목으로 제작해 운영하고 있다.


Q. 옥스퍼드 출판부가 ‘2024 올해의 키워드’로 선정한 ‘브레인롯Brainrot(뇌썩음)’에 대해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한국어 자문 역할을 맡고 있지만, 해당 키워드 선정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흐름 속에서 가장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단어를 많은 회의를 거쳐서 찾아내는데, 인공지능과 연관된 스마트한 단어를 뽑을 줄 알았더니 역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하는 단어를 뽑더라고요. 

‘브레인롯’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오히려 한 발 더 앞선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 중심 사회에서 브레인롯이 가진 의미를 새겨보자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Q.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 교육에 관한 연구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올 초에 교수님이 낸 장편소설 《서울 엄마들》에도 한국의 교육열을 풍자하는 이야기를 담으셨는데, 세계 최상위의 학업성취도와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양극단의 지표를 가진 한국 교육에 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공부 감각, 10세 이전에 완성된다》에서도 교육 문제를 강조했는데, 그런 부분을 대부분은 도덕적인 메시지로 듣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서울 엄마들》 소설을 쓴 것도 같은 이유예요. 

교육비를 엄청나게 쓰고, 사교육을 너무 열심히 해서 세계 1등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잖아요. 이 모든 게 단지 정책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교육 정책이 답을 주지는 않을 것 같고,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교육을 통해서 정말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행복한가 묻고 싶어요. 
 

Q. 한국은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인성 문제는 더 심화되고 있어요. 홍익인간처럼 한국적 가치를 담은 교육철학에 관해 어떻게 보세요.

매우 큰 주제라서 대답을 어떻게 드릴까 싶네요. 한국이 IMF일 때 금모기운동이 벌어졌었죠. 외국에서는 이런 것에 굉장히 감탄하거든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런 거는 불가능하다고 보죠.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한국의 정서, 공동체 정신 같아요. 이런 것이 지금은 많이 사라진 이유는 한국이 너무 치열한 경쟁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죠. 

제 소설에도 썼지만, 1등과 2등과 3등이 친구가 될 수 없는 사회, 이런 사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아이 3명이 태어나서부터 15년 동안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서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등수를 매기는 것 자체도 굉장히 전근대적이고, 이런 경쟁에 찌든 사회에서 공동체 정신을 가르친다고 해도 아이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거예요.
 

Q. 오늘 특강 주제인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 교육’에서 ‘케어Care’라는 키워드를 강조하셨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케어’라는 키워드가 교육에서 부각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돌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오기 전 홍콩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도 핵심 키워드가 ‘케어’였어요. 어떤 기술의 습득을 돕거나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게 아니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교육의 중심임을 알아야 하죠.
 

▲ 글로벌사이버대학교 교직원 대상 특강하는 조지은 교수

인공지능의 시대가 온 게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기회를 준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이 없었다면 해온 대로 그대로 갔을 거예요. 지금은 인공지능이 답을 가르쳐주니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인공지능에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어떤 문제 상황에서 질문할 수 있게 합니다. 질문을 통해 배우고 성과를 내게 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아이들이 줄고 있잖아요. 각각에 맞는 교육을 하기에 너무 좋은 상황이죠. 인공지능에 너무 의존할 필요는 없어요. 인식의 전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은 지식을 제공하지만 교사는 공감과 신뢰 속에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AI를 너무 많이 접하며 성장할 경우 인간관계 맺기 능력이 약화할 수 있어요. 

교육은 결국 사람 간의 신뢰 형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영국의 교육은 이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고 균형 있는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 [사진=김경아]

 
Q. 한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어떻게 보셨나요.

이렇게까지 임팩트가 큰 건 처음이에요. 지금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기준이 없는 거예요. 이게 말해주는 바가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사실 엔터테인먼트나 여러 산업도 메타버스에서 돌아가는 게 더 많아요. 

이제 시작이죠. 앞으로 다 가상으로 바뀔 텐데, 경제적으로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요. 인간이 비인간에게 대체되는 상황이죠. 애니메이션에 나온 곡들의 인기가 BTS의 노래를 넘어서고 있잖아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주체가 되는 현상은 문화적 변곡점입니다. 이를 주제로 세미나를 하려고 해요. 사실 되게 슬픈 세미나죠. 

특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는 각 장면의 배경을 이루는 한국의 문화적 요소가 굉장히 세심하게 설계돼 있어요. 깜짝 놀랄 만큼. 한국 사람들은 그 부분을 잘 느끼지 못할 텐데, 외국에서는 이 부분에 매우 열광합니다. 

지금 전 세계 MZ세대한테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국적을 초월한, 다국적의)’한 게 그들의 국적이에요. 그들은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니에요. 

국적 대신 그들을 묶는 끈 중의 하나가 케이팝이에요. 그래서 케이팝의 언저리에 있는 다른 K-컬처들에도 친숙함을 느끼죠. 국가는 20세기의 개념인데, 지금의 문화는 이렇게 변화하고 있어요. 
 

Q. 언어학자로서 뇌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쪽 분야 연구를 하시는지, 최근 관심 주제는 어디에 있는지요.

저는 아시아 언어, 특히 프라그마틱스Pragmatics(화용론:상황과 맥락에 따른 의미를 연구하는 언어학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해 왔고, 한국인의 존댓말 사용 반응을 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 관심 있는 것은 ‘공감능력’ 같은 거예요. 특히 발달 중인 아동이 인공지능에만 상호작용할 경우, 전전두엽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배워야 하는데, 인공지능과의 대화에만 익숙해져서 그것에 반응하고, 옆에서 잔소리하는 엄마보다 늘 친절하게 답해주는 인공지능에 익숙해지는 거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학습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인간과 비인간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디폴트(기본값)가 되고 있어요.
 

Q. 브레인 파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또 지속적으로 잘 발현되도록 하기 위해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람이 단순해서 특별히 하는 건 없고, 잠을 아주 잘 잡니다. 한국에 와서는 좀 바빴지만, 보통 영국에서의 일상은 굉장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저는 잠을 저희 아이들보다도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해요. 모든 사람이 잠든 조용한 시간에 제 뇌가 제일 활발하게 기능해요. 

학교는 걸어서 가요. 어떤 때는 맨발로 걷기도 하죠. 걸어가면서 논문이나 책 관련한 아이디어를 떠올려요. 절대로 아이디어가 컴퓨터 앞에서는 안 나와요. 

저는 쥐어짜기보다는 나오면 그대로 쏟아내는 타입인데, 그렇게 걸어서 산책하며 학교에 가는 시간이 저한테는 프라임 타임이고, 나머지는 그냥 덤이에요.
 

[Box] 조지은 교수, 'Care matters in AI Education: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 교육’
 

▲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서울학습관에서 강의하는 조지은 교수

지난 7월 17일, 방탄소년단(BTS)의 모교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서울학습관 일지글로벌홀에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조지은 교수의 특별강연이 열렸다.

"AI 네이티브 세대, 함께 배워야 할 대상"

조 교수는 강연 서두에서 최근 경험한 AI 네이티브 세대(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의 워크숍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처음엔 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30분 만에 내가 더 배울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며, 교육의 수평적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교육의 역사적 배경을 짚으며, "20세기 교육은 숫자와 글을 가르치는 기능 중심이었다면, 21세기에는 교사의 역할이 ‘지식 전달자’에서 ‘동반자이자 안내자’로 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 조 교수는 자신이 제안한 M.E.R.G.E. 모델을 소개했다.

M (Monitor): 학생의 학습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
E (Evaluate): 발전 과정을 평가
R (Reward): 긍정적 피드백을 통해 동기 부여
G (Guide): 다음 단계를 안내하는 조언 제공
E (Encourage): 지속적인 격려로 자존감 향상

한국어 학습 동기와 K-컬처의 영향력

조 교수는, 한국어 학습자들이 시험이나 부모의 영향 없이 자발적 동기로 공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부분 K-팝 팬덤에서 출발했지만, 1~2년 이상 꾸준히 학습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하며, 이는 온라인 리소스와 팬덤 커뮤니티의 힘이라고 분석했다. 

BTS 멤버 지민이 띄운 노래 ‘크리스마스 러브’에 등장하는 단어 ‘소복소복’ 같은 표현이 수십억건 이상의 디지털 트레이스를 남겼다며, 이제는 문화가 언어를 만드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강연 말미, 조 교수는 AI 시대에도 교사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99%가 교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며, AI가 채울 수 없는 신뢰와 공감이 교육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다. 

그는 특히 요즘 아이들이 디지털에만 노출되어 사회성, 공감능력이 부족해지는 현실을 경계하며, 교사는 이를 회복시킬 수 있는 사회적 안내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_장래혁 | 사진_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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